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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7월호

작당모의 <무릎을긁었는데겨드랑이가따끔하여> 달달한 밀크커피의 웃기게 슬픈 탈주(fuite)

<무릎을긁었는데겨드랑이가따끔하여> 공연 모습(사진 제공 작당모의)

소름 돋게 즐거운 이 상상놀이의 발단은 그 300원짜리 자판기 밀크커피였다. ‘나’라는 예술가는 본래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셔야 눌렸던 감정이 움찔대고 막혔던 상상이 기지개를 펴는 사람이다. 그런데 하필 오늘따라 수중에 있는 동전이 300원이 안 된다. 이 주머니 저 주머니를 뒤진다. 가방 구석구석을 털어보고, 앞에 잔뜩 벌여놓은 작업들 사이에 손을 집어넣어본다. 여기서 50원, 저기서 10원. 그래도 여전히 모자란다. 그 와중에 1,000원짜리 지폐를 넣고 무려 세 잔이나 뽑아 하나는 입에 물고 둘은 양손에 들고 가는 사람이 있다. 부럽다.

그 밀크커피 한 잔이 대체 뭐길래

달달한 커피 맛이 밴 무대에는 어떻게 해서든 그 300원을 만들고자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와 그에 맞춰 진행되는 온갖 이야기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연속적으로 출렁댄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기차가 들어오는 하얼빈 역, 이토 히로부미를 기다리는 안중근이 있다. 이 일촉즉발의 상황에 난데없이 믹스커피가 끼어든다. 안중근은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신사임당이 오만 원짜리 지폐에서 걸어 나와 자기보다 ‘잔돈’인 세종대왕, 율곡 이이, 이순신을 불러낸다. 그런가 하면 100원짜리 동전 앞면의 이순신은 뒷면의 거북선을 데리고 냉큼 한산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 그가 한산섬 달 밝은 밤에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에 잠기는 건 다른 것도 아니고 그 커피 때문이다. 제목 그대로 긁은 것은 분명 무릎인데 겨드랑이가 따끔한, 전혀 앞뒤 맥락에 맞지 않는 뜬금없는 이야기들이다. 이야기와 이야기가 서로 얽히면서 계속해서 사방으로 튀어 나가다 갑자기 방향을 선회한다. 주어도 술어도 서로의 관계를 비틀고, 인물의 경계도 사라지며 공간과 시간도 사방으로 확장된다.
‘자판기’와 ‘밀크커피’ ‘나’ 사이의 은유적 지형이 대충 무엇일지 조금씩 감을 잡는 즈음, ‘나’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세상이란 자판기가 바라보는 나와 내가 바라보는 세상 자판기 사이에서 헤매는 이들이 어디 한둘이랴. 그러나 처음부터 나를 예술하는 ‘나’로 명시하고 출발한 것으로 보아, 이 공연은 애초 보편 인간의 존재론을 운운할 생각은 1도 없었던 게 분명하다. 그보다는 각종 지원서의 ‘300원’짜리 평가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이리저리 째고 다듬느라 고군분투하는 지금/여기의 연극하는 누가 더 명징하게, 절실하게 다가온다. 대체 그 자판기 커피가 뭐라고… 이런 한탄스러운 질문이 나올 것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이들은 본 공연의 안내 전단지에 이렇게 써놓았다.

커피, 프리마, 설탕의 황금비율 1:1이며, 세월이 가도 변함없는 맛의 우직함이며, 시대와 타협하지 않는 가성비, 커피 자판기의 육중한 풍채, 무엇보다 자판기가 오롯이 나만을 위해 내놓았다는 ‘정성’까지.

‘밀크커피’의 숭고한 우아함에 대한 존경과 거기에 닿고자 하는 열망이 정점을 찍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문장이 사실은 맞은편 벽에다가 그 이상으로 밀크커피에 대한 조롱과 냉소를 냅다 날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원금이라는 ‘밀크커피’가 아니면 쉽게 창작의 동력을 만들 수 없게 되어버린 이 땅에서 고단하게 연극하며 살아가는 무수한 ‘나’에 대한 자기 패러디, 연극에 대한 열망만으로 버티기 힘든 연극계의 우울한 지형에 대한 웃기게 슬픈 이 자기 서사. 소름 돋게 공감하는 순간, 그와 동시에 ‘작당모의’의 이 유쾌하게 치밀한 괴물스러움에 화들짝 놀란다.

자판기와 ‘나’ 사이

이 무대는 ‘나’라는 예술가의 창작 공간이며 동시에 사업지원서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무대 한 켠의 ‘자판기’와 이야기 안으로 계속 파고드는 ‘밀크커피’가 무엇을 은유하는 것인지도 점점 분명해진다. 자판기의 그 ‘300원’에 맞추느라 무대의 ‘나(김용희)’는 이미 여러 개의 ‘나’로 분할되어 버렸다. 무대 바닥에 차곡차곡 놓인 조그만 그림판들 위에 모두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 ‘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공연은 밀크커피의 떨칠 수 없는 유혹, 자판기의 300원짜리 그 응시 앞에서 절대 자괴감에 빠지지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밀크커피 맛이 간절하겠지만, 그로 인해 한국에서 연극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여전히 고단하겠지만, 이들에게는 그 고단함을 유쾌하게 절단하고 그 안에 출렁이는 힘을 밖으로 꺼내 새로운 동력으로 삼는 힘이 보인다. 스스로를 탈영토화해 자발적 기표가 된 이들이 생성해 내는 리듬이 어느 순간 커피 자판기를 칫! 하고 비웃는다. 밀크커피에 대한 간절함이 은유를 넘어 환유로 뻗어나갈 힘이 보인다.

이경미_연극평론가. 한 편의 연극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이 극장, 저 극장을 기웃댄다. ‘잘 만든’ 연극보다는 꿈틀대는 파동이 느껴지는 연극을 좋아한다.
※본 원고는 지면 관계상 편집되었습니다. 원문은 웹진 [연극in]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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