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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5월호

침향을 만드는 자세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슬기로운 방식

코로나19 사태를 통과하고 있는 이 시기는 개인과 사회 전반의 각성의 시간이자, 변화의 씨앗을 품고 준비하는 시간이다. 문화예술계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코로나19 시기 이후 예술가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또한 예술은 이전과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문화(culture)’란 단어의 본질적 의미로 다시 돌아가 봐야 한다. 내 안으로 돌아와 텃밭을 일구고, 그것으로 다른 이들에게 닿을 수 있는 확대된 자아가 필요한 때다.

‘자아’의 선한 영향력이 힘을 발휘할 시간

인간이 바이러스? 예술이 바이러스? 극장이 바이러스? 위기에 처한 예술가에겐 죄송하다. 글을 쓰는 나도 거북하다. 그럼에도 여기선 이래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냉정하게 볼수록, ‘포스트 코로나’에 잘 대처할 수 있다.
문화예술의 생태계를 걱정하는 이때, 자연의 생태계는 조금씩 회복돼 간다. 인도의 한 지역에서는 공장 가동을 중단해 매연이 사라지자 30년 만에 히말라야 산맥이 보였고, 출입이 통제된 해변에는 멸종 위기의 바다거북이 산란하기 위해 돌아왔다.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바이러스라는 게 괜한 말은 아니다.
“‘자연과 인간’ ‘환경과 예술’이 어떻게 바람직하게 공존할 것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화두는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21세기의 지난 20년을 돌아본다. 2000년대에는 웰빙을 외쳤고, 2010년대의 키워드는 힐링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시대일수록 예술은 인간의 복된 삶과 심리적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
코로나19의 위기에 대한민국은 오히려 주목받는다. 왜일까? 위기의 상황에서 서구를 따르지 않았다. 코리안 스탠더드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그렇다. 대한민국의 문화예술도 그러길 바란다. 지금은 ‘예술적 글로컬리즘’을 확립할 때다.
세상의 모든 바퀴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팽팽히 맞서야 잘 굴러간다. 예술의 바퀴도 마찬가지. 그간의 우리는 어땠나? 이제 구심력을 회복해야 한다. 서양-외부-타인이라는 ‘원심의 환상’에서 벗어나 한국-내부-자아라는 ‘구심의 현실’로 파고들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되는 이 시기에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에선 ‘자아에 중심 두기’가 진행돼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의 화두는 자아(自我)다. 개별적 자아가 아닌 ‘확대된 자아’를 요구한다. 동병상련(同病相憐)적 자아가 돼야 한다. 세상의 모든 힘들어하는 자아를 향해, 확대된 자아가 돼서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 그게 예술가의 의무이자 권리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예술적 바이블은 어떻게 출발해야 할까? ‘탈(脫)서구’와 ‘탈(脫)극장’을 할수록 ‘범(汎)지구’와 ‘범(汎)예술’은 조금씩 선명하게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지금은 예술에서도 히말라야를 볼 수 있는 시기여야 하고, 바다거북처럼 새롭게 부화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내는 시기여야 한다.

새 시대의 예술, 침향을 만드는 이의 마음으로

침향(沈香)을 아는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다. 원래는 침수향(沈水香)이다. 침향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을 찾아낸다. 거기에 커다란 참나무나 향나무를 잘라 물속에 잠기게 넣는다. 일반 사람의 눈에는 그게 보이질 않는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세상 사람에게 가장 이로운 효과를 주는 향기가 거기서 풍겨 나온다.
침향을 만드는 행위는, 나와 내 자손을 위한 행위가 아니다. 누군지도 모를 먼 후대를 위한 실천이다. 지금은 반성의 시간일수록 좋다. 나를 포함한 지금의 예술인들은 너무 현시적인 결과를 지향하는 것이 아닐까? 과거 침향을 만들고자 한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매우 바람직한 자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예술가는 달라져야 한다. 자신이 부각되는 ‘당대적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훗날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후대적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복잡한 세상일수록, 원론적 화두에 천착해야 답이 나온다. 문화예술이란 무엇인가? 문화는 영어로 ‘culture’. 이 말이 어디서 나왔나? ‘농업’이라는 뜻의 ‘agriculture’에서 유래한 말이다. 우리가 그간 유목 민족처럼 예술을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문화는 경작(耕作, agriculture)이다. 한곳에서 계속 땅을 일구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같은 공간에 계속 있어주길 원하고 있다. 바뀌는 게 바람직하다. 부유(浮游)하는 유목민(nomadic tribe) 같았던 예술관을 버리고, 이제부턴 침윤(浸潤)하는 경작민(agricultural people)이 되자! 문화란 본디 자신이 서 있는 땅을 딛고 파고드는 것이지, 멀리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게 아니다.
코로나19 이전의 예술적 지향은 ‘퍼져가기(spread out)’였다는 걸 자인하자. 예술적 영토 확장의 심리가 내재해 있었다. 그건 타인의 공간에 대한 침입일 수 있다. 내 공간을 지킨 것이 아니라, 남의 공간을 향해서 계속 뻗어가기만 했다. 그렇다. 원심력만 강했다.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슬기로운 예술 생활은 ‘편히 앉기(settle down)’에서 시작돼야 한다. 내가 있는 이곳이 꽃자리라는 믿음으로, 조용히 한곳에 자리를 잡고 정착하면서 계속 땅을 일궈야 한다. 예술적 텃밭을 가꿔야 한다. 그간의 과도한 ‘노마드 기질’이 예술적 바이러스를 전파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극장이 그런 공간이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나 또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예술적 바이러스의 전파자였다는 게 얼마나 섬뜩한 현실인가!
바이러스가 침범을 일삼는 상황에서, 예술과 공연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또 어떻게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까? 여태까진 구호에 가까웠던 ‘웰빙’과 ‘힐링’에 실제 ‘예술을 적용해서,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의 삶을 채워주고 비워주는 효과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먼 훗날을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토대를 구축해 줘야 한다. 침향을 만드는 자세가 지금 우리의 역할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예술의 가치는 크게 둘이다. 첫째, ‘불안한 삶 속에서 안정을 회복하는 기능’이다. 둘째, ‘후대를 위한 바람직한 예술적 기반의 구축’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부합하는 예술가의 의식(consciousness)과 공연의 방식(procedure)은 분명 존재한다. 같이 캐내보자. 함께 일궈나가자. 위기가 기회다.

글 윤중강_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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