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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11만 명이 마음약방 자판기 앞에서 잠시 멈춘 ‘질문’의 시간 마음약방 5년을 마무리하며
‘헬조선’ ‘N포세대’ ‘이태백’ 등 자조적인 단어들이 한국 사회의 주요 키워드로 등장하던 2014~2015년 무렵, 무한경쟁의 무게에 짓눌린 많은 이들에게 ‘치유’가 필요했다. 2015년 2월 시민청에 처음 등장한 ‘마음약방’은 예술적인 상상력과 위트로 치유의 힌트를 제안하는 캠페인이었다. 그간 11만여 명의 시민에게 소박한 처방전을 건넨 ‘마음약방’이 지난 2월 운영을 마쳤다. 함께한 사람도, 우여곡절과 에피소드도 많았던 5년의 소회를 지면에 옮긴다.

대학로 서울연극센터에 문을 연 마음약방 2호점

“마음을 치유하는 자판기. 500원을 넣고 자판기 버튼을 누르면 미래막막증, 사람멀미증, 자존감 바닥 증후군 등 20가지 증상에 대해 저마다 다른 내용의 글과 그림으로 치유한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마음약방’을 검색하면 나오는 내용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도 등록돼 있는 마음약방. 2015년 2월 시민청에 문을 연 마음약방 1호점과 같은 해 12월 대학로 서울연극센터에 생긴 마음약방 2호점이 만 5년간의 운영을 마치고 지난 2월 말에 퇴장했다. 계절이 스무 번쯤 바뀌는 동안 서울문화재단의 수장도 두 번이 바뀌었고(조선희 소설가에서 주철환 프로듀서로, 그리고 김종휘 현 대표까지), 마음약방은 재단 내 다양한 부서(시민문화팀·공공예술센터·문화기획팀·지역문화팀)를 거쳤다.
‘마음약방’이라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곳은 당시 협력사로 함께한 HS애드(김지영 부장). 이를 비롯해 자판기 운영에 시민청과 서울연극센터가 힘을 보탰고, 도브투레빗과 이오노이 스튜디오가 자판기 및 부스의 디자인을 맡았으며, 한일밴딩과 솔공방의 대표가 제작에 참여했다. 또한 처방 패키지 제작에는 이철수 목판화가, 조선희 소설가, 고도원 작가 등 예술가들과 후원 기업이 함께했고, 11만여 개의 패키지를 제작한 인쇄업체 신광섭 부장까지 정말 많은 이들이 수고를 나눴다.

마음약방이 탄생하기까지

무엇이 이렇게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마음약방 운영을 함께하도록 만들었을까? 아마도 마음의 치유·처방이 필요하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당시에 넓게 형성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음약방이 등장하기 1년 전인 2014년은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여러 이유로 온 사회가 어둡고 암담했다. “이게 나라냐?”라는 절망의 목소리가 높았고, 청년들은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이른바 ‘3포 세대’로 명명됐다. 경쟁에 시달리며 쌓인 피로감과 체념의 공기가 한국 사회 전반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2014년 하반기, 무한경쟁·각자도생을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문화예술적인 대안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도시게릴라 프로젝트’ 워크숍이 열렸다. 그리고 새로운 공공예술인 도시게릴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동시대 고단하고 지친 이들의 마음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치유해 보자는 마음 치유 캠페인 사업에 뜻이 모였다. ‘마음약방’이란 명칭과 20종의 증상, 각 증상별로 특화된 처방이 서울문화재단과 실행 파트너 HS애드를 오가며 다듬어졌다. 특히 20가지 증상의 이름은 2014년 12월 시민 849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됐다.

마음약방 1호점 처방 패키지 증상명(20개) 꿈 소멸증, 의욕상실증, 가족남남신드롬, 급성연애세포소멸증, 월요병 말기, 현실도피증, 인생낙오증후군, 유행성 스마트폰 중독, 미래막막증, 상실후유증, 습관성 만성피로, 예민성 경쟁과다증, 마음요요현상, 노화자각증강, 긴장불안 증후군, 자존감 바닥 증후군, 사람멀미증, 후천성 실어증, 외톨이 바이러스, 분노조절장치 실종 마음약방 2호점 처방 패키지 증상명(21개)
경력발달장애, 용기 부전, 급여 상실증, 아르바이트라우마, 작심3ill-ness, 피터팬 증후군, 스펙티쉬 강박증, 과민성 멘탈장애, 상사병, 열정 페이즈, 월요병 말기, 꿈 소멸증, 외톨이 바이러스, 유행성 스마트폰 중독, 분노조절장치 실종, 미래막막증, 자존감 바닥 증후군, 급성연애세포소멸증, 예민성 경쟁과다증, 상실 후유증, 가족남남신드롬

마음약방 1호점

마음약방 1호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20가지 증상의 처방전 중 시민의 호응도가 가장 높았던 것은 ‘미래막막증’ 처방전이었다. ‘유행성 스마트폰 중독’ ‘현실도피증’ ‘의욕상실증’ ‘급성연애세포소멸증’ 등이 그 뒤를 이으며 총 7만 4,251개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한편 청년 세대 버전인 마음약방 2호점의 21개 처방전 중에서는 ‘상사병’ ‘열정페이즈’ ‘현실도피증’ 순서로 호응을 얻으며 총 4만 93개 처방전이 판매됐다. 1호점과 2호점의 판매량을 합하면 11만여 개. 즉 시민 11만여 명이 마음약방을 이용한 셈이다.
그림, 영화, 음식, 명언·명구, 산책 지도 등 각 증상에 따른 처방은 가지각색인데, 각 처방전에도 저마다 사연이 깃들어 있다. 멋진 그림 처방을 가져오느라 당시 담당자들은 목판화가 이철수 화백이 작업하고 있는 충북 제천까지 가서 섭외에 공을 들였고, 서울문화재단 인근에 위치한 동아제약에 찾아가 박카스를 협찬받아 오기도 했다. 영화 처방의 경우 영화주간지 《씨네21》 초대 편집장과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을 지낸 조선희 전 대표가 증상에 적절한 영화를 직접 추천하고 소개 글까지 쓰는 정성을 들였다. 춤 처방에는 당시 서울댄스프로젝트 김윤진 예술감독이 기꺼이 나서서 ‘가라앉는 기분을 춤으로 어떻게 전환할 수 있는지’ 제안하기도 하고, 사진작가이자 재단의 식도락가로 통한 당시 김영호 본부장은 음식 처방을 작성해 줬다.
아울러 재단의 인턴 사원들은 마음약방 캠페인 취지에 공감하며 깜찍한 동영상을 만들어 론칭 홍보를 거들기도 했다. 캠페인 디렉팅을 담당한 당시 HS애드 김지영 부장은 캠페인 기획뿐만 아니라 마음약방 처방 물품을 제공할 수 있는, 비타민하우스를 비롯한 기업들을 섭외하는 데 도움을 줬다.

1 마음약방을 함께 만들어온 이들 (그래픽: 황은아)
2 마음약방 2호점 처방 패키지
3 서울문화재단 마음약방 담당자들 (좌측부터 유민성, 황은아, 오진이, 김지영, 김진환)

치유와 결실의 과정에 함께한 사람들

마음약방의 이용자들을 관찰해 보면, 처방도 처방이지만 마음약방 자판기 앞에 잠시 멈춰 서서 ‘뭘 고를까’ 하며 처방전을 살펴보는 짧은 시간의 소중함을 확인할 수 있다. 마치 코로나19의 감염 예방 대책으로 일상을 잠시 멈추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요하듯, 아무도 자신을 돌보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 같은 감정의 바닥에서 ‘내게 맞는 증상은 무엇일까?’ ‘나에겐 저 스무 가지 증상 중 어떤 증상이 있을까?’ 하고 물끄러미 물어보는 시간, ‘경쟁으로부터 거리두기’ 시간이 곧 치유의 시작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당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HS애드의 김지영 부장은 자살률과 연관성이 높은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을 자판기라는 위트 있는 소재를 통해 접근한다는 메시지로 ‘마음약방 자판기’를 칸 광고제에 출품했고, 건강 부문에서 은상을 받아 전 세계에 마음약방 캠페인이 알려지는 성과를 얻었다. 그뿐만 아니라 2016년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한국광고주협회 주관)의 OOH(Out of Home) 부문에서 ‘좋은 광고상’을, 올해의 광고상(한국광고학회 주관)에서는 ‘옥외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탄생 배경부터 제작 과정, 운영 기간에 일어난 에피소드에서 사회적 반향에 이르기까지, 마음약방은 사업 안의 작은 아이템으로서 거둘 수 있는 성과 그 이상을 거두기도 하고, 사업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협업과 연대의 새로운 모델이 됐다. 한강몽땅축제나 서울거리예술축제에 나감은 물론 제주도립미술관, 대구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마음약방을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에 조건 없이 기꺼이 운영 방법부터 처방까지 공유했다. 처방 패키지가 필요한 곳에는 패키지를 제공하기도 하고, 자판기만 필요한 곳에는 자판기 맞춤형으로 다양한 쓰임새가 만들어졌다. 모금액 중 일부는 2019년 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 개막작이던 구자혜 연출의 연극 <7번국도>의 문자 통역과 수어 통역, 그리고 음성 해설을 제공하는 배리어프리 환경 지원금으로 쓰이기도 했다.
마음치유 캠페인을 하면서 누구라도 마음 다치는 일을 우리 스스로 만들지 않기를, 그리고 내 마음이 한 뼘이라도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마음약방의 결산 원고를 쓰면서 접한, 마음약방 1·2호점의 총 이용 건수 ‘11만’이라는 숫자가 새삼 놀랍다. 너무나 고마운 마음에 그동안 마음약방을 만드는 데 기여한 분들의 이름을 찬찬히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다. 소설가 조해진의 작품 《단순한 진심》에는 그런 대목이 있다. ‘타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인간이 타인을 끌어안는 첫 번째 방법’이라고 말이다.

글 오진이_서울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진 서울문화재단

마음약방과 함께한 사람들의 한마디 황은아(2015~2016년 ‘마음약방’ 담당자, 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사업개발본부 팀장) 마음약방의 탄생에 얽힌 에피소드는 언제 떠올려도 재미있고, 감사한 경험이다. 2014년 겨울에 선정한 20개 증상이 2020년 봄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여전히 불안한 사회이고, 아직 할 일이 많다는 걸 새삼 느낀다. 김지영(2015년 HS애드 부장, 현 브로컬리 대표) 이슈성으로 진행되는 광고 캠페인과는 달리, 마음치유 캠페인이 만 5년 동안 진행된 것은 운영진의 공이다. 캠페인은 아이디어만으로 성공하지 않는다. 아이디어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 재단 운영진에 감사드린다. 김진환(2015년 서울문화재단 공공예술센터 과장, 현 지역문화팀장) 공급자 중심의 기존 공공기관 문화 사업과는 다른 시민들의 호응을 직접 접하는 사례라는 의미도 있다. 마음증상에 대해 진단과 처방 모두 진지한 접근보다는 가벼운 호명과 공감으로 접근한 점이 장점이 아닐까 싶다. 유민성(현 담당자,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팀 주임) 2015년 12월, 서울연극센터에서 마음약방 2호점 론칭 행사 때, 팀원들 모두가 약사 가운을 입었던 모습이 기억난다. 5년 동안 지나쳐 간 여러 담당자와 함께해 주신 많은 분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지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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