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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2월호

특별한 재희



<쓰다> 25호 포스터. (웹진 [비유] 제공)

독서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간접경험이며, 생각을 바꾸고 생활을 바꾸고 인생을 바꾼다. 이런 교훈적인 말을 비웃으며 살았지만, 요즘은 절실히 깨닫고 있다. 독서는 나를 바꾼다. 동물의 높은 지능과 식품 매대에 오르기까지 동물이 겪는 고통에 관한 책을 읽은 사람과, 동물의 이름과 몇 가지와 습성 정도를 알고 있는 사람은, 서로 채식을 이해하는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여성차별의 역사와 구체적 사례를 꾸준히 읽어온 여성이 생각하는 페미니즘과 자기 생활의 경험만으로 다른 여성의 삶을 가늠하려는 여성이 떠올리는 페미니즘에도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정신 질환이나 가난, 장애, 젠더 등 누군가가 인생을 걸고 싸워나가는 문제에 보다 윤리적인 태도를 가지기 위해서 나는 더 다양한 책을 읽고 싶다. 무슨 위대한 활동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쉽게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시선을 던진다. 여성은 얌전해야 옳고, 어머니는 자애로워야 맞다. 편부모 자녀는 하나같이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게이는 콧소리를 내야 자연스럽다. 이와 같은 폭력적인 시선으로 인하여 ‘어떤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모든 인간적인 매력과 개성을 드러낼 기회를 처음부터 박탈당하기도 한다.

중간고사 국어 점수가 나왔다. 막판까지 헷갈렸던 두 문제가 다 정답을 피해 갔다. 매번 운이 좋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두 문제를 모두 놓치고 나니 왠지 가혹한 대접을 받은 것 같았다. 거기다 담임이 한 말이 계속 머릿속을 껄끄럽게 했다. 담임은 국어 점수가 유난히 낮은 애들을 다그치며 말했다.
“이 자식들아, 너희들 다 반성해. 지용이도 구십 점이 넘었는데 너네는 뭐 하는 거야?”
안 넘어가는 침을 억지로 삼켰다. 목구멍이 뻑뻑했다.
_진형민, <자물쇠를 채우지 않은 날> 부분

주인공 한지용의 엄마는 인도인이다. 지용은 인도에 딱 한 번밖에 가본 적 없지만, 다문화가정의 아이라는 편견 바깥에서 인정받아본 경험이 거의 없는 듯하다. 지용은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정체화하고 법적으로도 한국인이 틀림없지만, 그러한 그의 국어 실력이 담임의 눈에는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지용이도 구십 점을 넘었는데”라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한지용은 한지용으로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한지용은 다문화가정의 자녀로 평가받는다. 아이는 이 굴절된 시선을 삼키는 데 너무나 익숙하다.

담임은 나를 보고 ‘구구단을 19단까지 외우는 나라’ 출신이라 역시 다르다고 했다. 엄밀히 말해 나는 그 나라 출신이 아니고 그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며 수학 때문에 맨날 골머리를 썩었지만, 담임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칭찬이라 생각하고 넘기면 아무 일도 아니었다.
_진형민, <자물쇠를 채우지 않은 날> 부분

한편, 한지용네 국밥집 아르바이트생이자 같은 반인 박재희는 담임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재희는 지용의 엄마에게 영어를 배우겠다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어쩌면 지용과 친해지기 위해서 시작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재희는 편견이 없고 용감하다. 이성과 마주 앉는 걸 부끄러워하는 지용에게 국밥을 말아주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놀림받는 것도 아랑곳없이 자꾸 말도 건다. 더욱 인상적인 건, 재희가 지용이 다문화가정의 자녀라는 이유로 겪는 슬픔, 열등감, 체념 등을 위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용이 열등감에 엄마의 유창한 영어를 괜히 깎아내리려 할 때, 오히려 재희는 “넌 한국말 할 때 문법 다 맞게 말하냐?”라며 단호히 받아친다. 당연하게도, 친구 재희의 관심은 지용의 피부색이나 문화적 배경이 아닌 지용의 생각이나 감정이다.

“한지용, 너 괜찮아?”
얘는 왜 자꾸 나한테 괜찮으냐고 묻는지 모르겠다. 내가 괜찮은지 아닌지가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자꾸……
_진형민, <자물쇠를 채우지 않은 날> 부분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지용에게 재희는 괜찮냐고 묻고 있다. 이처럼 여느 친구 사이에나 있을 법한 당연한 위로와 관심이 지용에게 주어진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이 당연한 우정을 당연하지 않게 만드는 사람들과 당연히 바라보아야 할 ‘인간’을 바라보지 못하는 담임은, 이 소설을 읽는 우리들과는 얼마나 다를까. ‘어떤 인간’ 혹은 ‘어떤 그들’을 차별하지 않는 재희가 실제로 우리 주변에 몇 사람이나 존재할까.

글 김잔디_ [비유]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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