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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7월호

종로구 연지동과 효제동대학로의 탄생 비화
도시는 도로, 필지(筆地), 건물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이를 도시 조직(Urban Tissue)이라 부른다. 도시 조직 관계의 구성은 각 지역의 자연환경과 문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선형, 가지형, 직교형, 방사형 등의 형태1)로 만들어진다. 대학로는 대학으로 가는 길을 따라 형성된 선형도시에 가깝다.

1 종로35길, 콘크리트의 재료적 특징을 반영해 창문과 벽을 차례로 수평띠로 입면을 구성하고, 삼거리의 모서리 부분을 둥글게 디자인해 도시적 맥락을 고려한 빌딩이다. 1923년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의 ‘콘크리트 오피스 빌딩’이 연상되는 건축물이다.

대학로에는 대학이 없다

도시는 문화에 적응해가며 유기체와 같이 성장한다. 현재 대학로는 극장과 상점들이 밀집한 유흥가 정도로 인식된다. 지리적으로는 동쪽으로 낙산, 서쪽으로 대학로, 남쪽으로 마로니에공원, 북쪽으로 혜화동성당 사이 지역인 동숭동 정도로 한정된다.
대학로는 대학도 없고, 선적인 길도 아닌 면적인 지역으로 인식된다. 이는 마로니에공원 일대에 1924년 설립된 경성제국대학과 1945년 해방 후 학교명을 변경한 국립 서울대가 있었고, 1975년 서울대가 관악구로 이전했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1966년 서울시가 중구 쌍림동에서 종로구 혜화동까지의 구간을 고시로 대학로로 지정했고, 1985년 문화예술거리로 개방하여 도로 이름을 변경한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로에 대한 인식은 마치 극장이 연극공연을 하는 곳으로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극장 하면 영화가 떠오르는 것과 같이 시대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 대학로는 어떻게 인식되었을까? 1955년 2월 4일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대학로를 “시내에서도 한복판 종로5가에서 대학로로 접어들면 연동교회 못미처에 경향뻐쓰의 발차장이 있다”라고 기술했다. 연동교회는 1894년 연지동에 설립된 교회로 여전히 그 자리에 위치해 있다. 대학로는 종로5가에서 연지동과 효제동 사이로 올라가는 대로로 설명했다.
1941년 <삼천리>(제13권 제3호)라는 잡지에서는 대학로의 주변 상황을 “대학은 도심의 동북(東北)에 위치하여 경성(京城)의 명승 창경원(昌慶苑)에 상대(相對)하여 의학부 부속의원(醫學部 附屬醫院)이 솟사 있어 회춘원(回春苑)을 싸고 의학부, 본관이 있다. 12칸(間) 도로를 포함하여 낙타산(駱駝山)을 등진 법문학부(法文學部), 도서관, 대학본부가 있다. 이 12칸(間) 도로를 세상에서 대학로라 칭하고 전차는 없지만 경성전기회사(京城電氣會社)의 빠스가 통하여 교통의 편(便)은 지극히 좋다, 부근에는 경성의학전문학교(醫專), 경성고등공업학교(高工), 경성광산전문학교(鑛山專), 경성고등상업학교(高商),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女子醫專) 등이 있어 경성(京城)의 학생가(學生街)를 일우워 있다”라고 기술했다. 12칸 도로2)를 중심으로 고등교육기관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경성의 학생가’로 설명했다. 즉 종로5가에서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등의 근대교육기관과 해방 후 서울대로 가는 길을 대학로로 인식했다. 하지만 연지동과 효제동 사이의 도로는 율곡로(종묘관통선)와 함께 1931년 신설됐다. 이 두 대로는 도심을 연결하는 도로로 현재 대학로 일대 커다란 도시적 변화의 시작점이다.

2, 3 율곡로16길, ‘충신장’. 원형을 증식시켜 입체적으로 구성해 자동차엔진의 실린더와 피스톤같이 작동되는 기계처럼 디자인되었다. 1960년대 메타볼리즘3)아키그램4) 건축가들의 전위적 디자인이 연상되는 건축물이다.

근대 건축물들의 박물관으로

1924년 경성제국대학의 설립과 1931년 대학로의 신설 이전에는 대학로가 없었을까? 이 지역에 근대 고등교육기관이 등장한 것은 정동에 있던 미국 북장로교 선교기지가 1894년 연지동으로 이전해오면서부터다. 북장로교는 연지동에 경신학교(1886)와 정신여학교(1895)를 설립한다. 경신학교는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의 전신이다. 더불어 1907년 ‘공업전습소’가 현재 방송통신대 자리에 설립되었다. 이후 1916년 경성공업전문학교(경성고공)가 설립되었다.
종로에서 공업전습소로 가는 길은 현재의 종로35길과 율곡로16길이다. 종로35길은 효제동이고, 율곡로16길은 충신동이다. 이 두 길의 경계는 흥덕동천(대학천)으로 이곳에는 조선시대 신교(新橋)라는 다리가 있었다. 이 길은 한국 최초의 건축과가 있었던 공업전습소로 가는 길이었고, 도시화가 시작된 곳이었다. 최초의 대학로라 할 수 있다. 이곳은 1931년 대학로가 신설되고, 1977년 흥덕동천이 복개되면서 대학로에서 도심의 배후지역으로 변모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번화한 대로변에나 있었던 2층 상가한옥부터 일본의 대표적 건축 양식인 오오카베(대벽)식 건물, 오래된 벽돌이나 타일로 조형미를 구현한 빌딩까지, 근대 건축물들의 박물관처럼 건물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대학로는 대학의 이전보다 대형 도시 계획과 도로의 영향으로 변화되었다. 최초의 대학로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도로명처럼 이제 학생이 없는 도시의 뒷골목이 되어 그 의미와 가치를 지우고있다. 하지만 공업전습소가 있었다는 기억이라도 남기려는 듯 당시의 실험적(?) 건축물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애써 웃음 짓고 있다.

  1. 선형도시(線型都市, Linear City)는 종교 시설, 교육 시설 등 주요 시설을 중심으로 길을 따라 형성된 도시 구조이다. 가지형(樹枝型都市, Tree-Type City)은 서울과 같이 종로 등의 길을 중심으로 길을 연결해가며 확장한 도시 구조로 나뭇가지처럼 길의 끝이 막다른 길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직교형(直交型都市, Grid-Type City)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일반적인 도시 형태로 바둑판처럼 도로를 구성하고 정형의 필지로 구성된 도시 구조다. 방사형(放射型都市, City with Radial Road Pattern)은 광장 등의 도시 중심 공간을 중심으로 원형, 사선 가로로 형성된 도시 구조다. 선형과 가지형 도시는 자연발생적 도시에 가깝고, 직교형과 방사형 도시는 계획된 도시이다. 이 밖에도 직교형과 방사형이 결합된 직교방사형 등 교통, 정치 체계, 문화 등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도시 구조가 만들어진다.
  2. 1912년 경성시구개수상정계획노선(京城市區改修豫定計劃路線)이 발표되었다. ①폭 30칸(間): 광화문에서 황토현광장(현재 세종로) ②폭 15칸(間): 태평로, 종로, 남대문로, ③폭 12칸(間): 율곡로, 우정국로, 을지로, 돈화문로, 대학로 일부, 훈련원로 등. 이외에도 10칸(間) 6개, 8칸(間) 15개 등 총 31개 노선의 주요 도로를 발표했다. 이후 5차례의 개정을 통해 총 47개 노선으로 늘어난다.
  3. 1960년대 일본에서 구로카와 기쇼(?川紀章), 이소자키 아라타(磯崎新), 마키후미히코(?文彦) 등 젊은 건축가들이 성장/결합/증식 등의 개념으로 유기적 도시 건축을 지향한 전위적인 건축 운동이다.
  4. 1960년대 영국에서 피터 쿡(Peter Cook), 워런 초크(Warren Chalk) 등이 이동/변형/교환 등의 개념으로 과학기술 문명을 지향한 전위적인 건축 운동이다.
글·사진 제공 정기황_건축학 박사, 사단법인 문화도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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