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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장기자랑> 우리가 공존하는 시공간에서
뱀파이어와의 하룻밤 포스터

<장기자랑>. (사진 제공: 안산문화재단)

학교 종소리에 무대가 밝아지면, 익숙한 교복을 입은 배우 김명임(수인 엄마)이 한아영 역으로 분신하여 2학년 3반 교실, 4분단일지도 모를 책상 앞에 앉아 어젯밤 본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감상문을 일기에 적어 내려간다. 몇 줄 안 되는 일기를 읊조렸을 뿐인데 청아하고 사려 깊은 아영의 목소리가 관객들의 지나간 열여덟 살의 감성을 일깨운다. 사이, <원피스>의 주인공 해적왕 루피를 직접 섭외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복붙(복사하고 붙여넣기)한 배우 김도현(동수 엄마)이 상상 속 친구로 등장해, 학기초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하는 아영에게 “잘 만들어진 배가 처음 바다에 나가서 파도를 타듯이” 적응해보라 독려한다.
그간 촌철살인의 연기력을 보여줬던 배우 박유신(예진 엄마)은, 이번엔 아연의 짝꿍이자 반장 조가연 역을 맡아 귀염과 발랄을 뿜어낸다. 아이돌이 꿈이라 매일 학원에 나가 연습한다는 가연은 재능과 성실과 노력을 두루 겸비하고 있다. 그에게 유일무이한 라이벌은 미모와 재능뿐 아니라 콧대 높고 카리스마 넘치기로 유명한 2반의 방미라. 그 역의 배우 최지영(순범 엄마)은 무대 위에서 눈짓 하나 손짓 하나로 관객을 압도한다. 가연은 단 한 번뿐인 수학여행의 장기자랑에 함께 나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자며 반 친구들을 설득하지만 오로지 아영만이 그와 눈이 마주칠 뿐.
아영의 진심이 들킨 걸까. 라이벌 방미라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가연의 속마음을 읽은 천지창조 4인방 친구들은 장기자랑에 함께 나가기로 약속, 학교가 끝나면 노래방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런데 인물들로 분한 언니들 40, 50대 맞는 거임? 연기인 듯 연기 아닌 연기 같은 이 언니들은 완전 자연스러워, 완전 빠져들어, 완전하게 완전 사랑스러워! 아영은 노래방 앞에서 정말 장기자랑에 나가고 싶은 건지, 친구들이 생기는 것이 좋은 건지 몰라 망설인다. 때마침 등장한 가연에게 아영은 자신이 “저주받은 몸뚱이”라서 장기자랑에 나갈 수 없다고 고백하지만, 가연은 “잠깐만 앉았다 가자”고 했다가 이내 아영의 속마음을 알아차린다. 노래방에서 가연과 친구들은 인기 유행곡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수학여행 장기자랑을 위해 방미라를 이길 수 있을 만큼 임팩트 있는 2013년도 ‘최최최신’ 곡을 고른다.
그러나 노래방의 ‘최최최신’ 곡을 마주한 관객들은 이 연극의 시계가 어디를 향해 흐르고 있는 것인지 알고 있다. 어렴풋하게 짐작만 하던 시간, 아니길 바랐던 시간이다. 추억에 빠지고, 공감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사이, 연극은 관객들이 오늘 여기 이 객석에 왜 존재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확인시켜준다.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시간이 되어 우리 앞에 흐르고 있다. 다가올 미래가 어떠한 것인지 과거의 시간을 통해 목도한 우리 관객들은 그만 시간을 멈추고 싶다.
허나 그뿐이다. 수학여행에서의 장기자랑을 땀 흘려 준비하는 아영과 가연과 그 친구들의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현재의 시간을 멈추면 우리는 2019년 4월로 타임슬립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기에 우리들은 그 시간 위에 함께 머물고 싶다. 맥주를 마시고 취해 흥청거리는 지수의 모습을 조금 더 보고 싶다. 붉어진 얼굴로 사랑하는 4반 태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백희의 모습을 조금 더 보고 싶다. 하늘이 지구 밖 어느 행성에서 온 것 같은 뮤즈, 7반 최룡이를 떠올리며 만든 사랑 노래를 조금 더 듣고 싶다. 가연과 가연 엄마가 투닥거리는 모습을 조금 더 오래 보고 싶다. 아영이의 멋진 시를 한 편 더, 아니 두 편 더 읽고싶다. 그렇게 영원히 2014년 3월의 어느 날에 머물러 있고 싶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이 ‘창작초연’ 연극을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창단부터 지금까지 노란리본과 함께 시간을 보낸 변효진 작가는 <416 단원고 약전: 짧은 그리고 영원한>1)에서 엄마들이 아이들에 대해 구술한 기록들을 장면에 녹여냈다고 했다. 안산에서 <장기자랑>의 초연을 마친 후, 어떤 어머님은 아이의 교복을 입으면서 내 아이가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기분을 느꼈다고, 어떤 어머님은 객석에 내 아이를 앉혀두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어떤 어머님은 진짜 내 아이가 되어서 내 아이처럼 춤추고 노래했다고 하는 말씀을 들었음을 김태현 연출가는 전했다.
등장인물이자 자신의 아이이자 동시에 엄마인 배우들이 단원고 교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이것은 연극일 수도, 연극이 아닐 수도, 연극이 아닌 연극일 수도 있다. 그 마음을 감히 헤아려볼 수도 가늠해볼 수도 없다. 다만, 우리 자신에게 묻는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었나.

  1. 세월호 참사로 별이 된 단원고 학생들(250명 중 231명)과 교사들(11명) 그리고 아르바이트 청년들(3명)의 약전(간략한 전기(略傳))을 엮은 책이다.
글 송경화_극단 낭만유랑단 연출가(layaire@hanmail.net)

※ 본 원고는 지면 관계상 편집되었습니다. 원문은 웹진 [연극in]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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