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ASSOCIATED

1월호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부지 관련 논란 국립한국문학관, 부지나 예산보다 중요한 것은?
국립한국문학관은 한국문학계의 ‘숙원사업’이었다. 지방자치단체와 연계된 개인문학관은 2000년대 이후 급증했지만, 국립문학관은 “민족사적인 관점에서 문학사를 정리”(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한다는 점에서 개인문학관과 차별된다. 가까운 일본, 중국, 대만은 모두 국공립 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논의는 1996년 ‘문학의 해’를 맞아 처음 수면 위에 떠올랐으나, 이듬해 외환 위기로 유야무야됐다. 시인인 도종환 의원이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건립 여부를 질의하면서 다시 논의가 시작된 국립문학관은 2015년 도 의원이 ‘문학진흥법’을 발의하면서 윤곽이 그려졌다. 2016년 문체부가 국립한국문학관 부지 공모에 나섰는데 24개 지자체가 신청하는 등 경쟁이 과열되자 문체부는 부지 공모를 잠정 중단했다. 이후 문체부는 ‘문학진흥 TF’를 꾸려 용산공원 부지를 문학관 최종 후보지로 의결했다. 여기에 450억 원대라는 예산 규모까지 알려지면서 국립문학관의 그림은 더욱 구체화되는 분위기다.
물론 몇 가지 문제가 남았다. 먼저 건축물 인허가권자인 서울시의 반대다. 서울시는 용산을 생태역사문화공원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앞세워 국립문학관의 용산 터 잡기를 반대하고 있다. 문체부는 서울시, 국토교통부,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국립한국문학관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문학관 부지 문제를 논의하자고 나섰으나, 서울시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애초 국립민속박물관의 용산 이전을 추진하던 문화재계, 국립문학관 유치에 미련을 두고 있는 일부 지자체의 반발 등으로 인해 최종 건립까지는 난관이 예상된다.

이슈&토픽 관련 이미지1 지난 11월 30일, 한국작가회의, 한국문인협회 등 10개 단체가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을 촉구했다.

국립한국문학관을 둘러싼 근원적 질문들

부지 선정, 예산 확보 등을 둘러싼 논란에 가려진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바로 ‘문학이란 무엇인가’ 혹은 ‘국립한국문학관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건물은 번듯하지만 파리만 날리는 일부 지자체 문학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국립문학관에 무엇을 담을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먼저 ‘한국문학사’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떠오른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우리 문학사는 캐넌(정전)이 확립돼 있지 않다”며 “당장 친일 경력이 있는 이광수, 김동인, 서정주를 어떻게 봐야 할지부터 문제”라고 말했다. 미당문학상, 미당전집 등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에서 볼 수 있듯, 근현대 문인들의 친일 혹은 독재 정권 부역 문제는 한국문학사의 아픈 고리다. 당장 ‘국립문학관’ 전시실에 ‘춘원의 집필실’을 재현한다면 일부의 거센 반대가 나올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한국 근대문학사를 논하면서 이광수를 제외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국립문학관이 한 정권의 치적에 그칠 것이 아니라, 좀 더 폭넓은 시민계층의 정신사적 흐름과 연동하기 위해선 한국문학사를 규정하기 위한 오랜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 염종선 창비 편집이사는 “근대 이후 한국문단만 봐도 이념에 따라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문인들이 많다”며 “한국문학관은 작가별 ‘나눠 먹기’를 해서는 안 되며, 오직 당대 한국문학을 대표하고 민중의 삶과 생각을 잘 담아내는지를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학’의 폭을 얼마나 넓게 잡을지도 논의 대상이다. 현재 국립한국문학관은 근현대문학과 고전문학을 아우르는 구성을 꾀하고 있지만, ‘문학관’의 건립이 철저히 ‘근대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른바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오랜 구분을 유지해야 할지도 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한국 젊은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문학’이라 할 만한 웹소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추리, 과학소설 등 장르소설을 얼마나 고려해야 할지, 명망 있는 대가 중심의 전시 구성을 유지해야 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슈&토픽 관련 이미지2 문체부가 국립문학관 신축 터로 지목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옆 공지. 박물관 건물과 왼쪽의 미8군 골프연습장 그물망 사이 숲 공간이 예정 터다.

문학의 순기능을 되살려야

자료 수집을 위한 예산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고전문학 판본의 경우 대부분 ‘문화재’급이어서 자료 수집에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고전문학은 물론 대부분의 근현대문학 판본 역시 이미 민간 혹은 지자체 문학관의 소장품이라,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현식 인천 한국근대문학관장은 “지금은 김소월의 <진달래꽃>, 한용운의 <님의 침묵> 초판본의 소장처조차 모호하다”며 “장기적으로는 자료 수집에 힘쓰되, 당장 자료 목록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립문학관이 날로 좁아지는 시민과 문학의 접점을 넓히는 기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새삼스러울 만큼 한국사회에서 문학의 위상은 과거와 비할 데 없이 낮아졌다. 문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실추됐다거나 책이 안 팔려 출판사와 문학인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는 점이 문제가 아니다. 아름답고 정의로운 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식과 그에 연동한 공동체 의식이 희미해졌다는 점이 문제다. 국립한국문학관은 시민사회에서 문학의 순기능을 되살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은 부지와 예산보다 더 중요한 문제다.

글 백승찬_ 경향신문 기자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