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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7월호

새 정부에 바란다! 시인· 청년예술가·베이비부머·육아맘
문화예술인·예술행정가가
바라는 문화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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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라고 해서 특별히 선처를 바라거나 지원과 지지를 꼭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체로 곤란하긴 하지만 가난을 팔아서 예술을 연명하고 싶지 않다는 최소한의 작가적 자존심이다. 시인이란 직함으로 살아본 20년 동안 내가 목격한 사람들은 작가들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보려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이 예술가입네 하면서 정신적, 물질적 보상을 바라는 잠시잠깐 떠오르는 허영심을 눌러버린 접점 중 하나다.
그러니까 예술정책에서 가장 바라는 바는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공정성이다. 문재인 정부가 내건 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공정성 보장 등과 통하는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공정한 저작권과 공정한 제작 혹은 공정한 분배 등도 여기에 속하겠다. 공(共)과 공(公)이 만난 정(正)이야말로 개인과 지도자와 체제의 가치관을 압축해 보여주는 것 아니겠나.

테마 토크 관련 이미지1 ‘별이랑 해랑 놀다가’ 만다라 그리기 놀이.(그림 위에 바느질)
2 ‘꼬챙이같은 세월도 펄쩍 견뎌낼 수 있을까’ 어린이가 그린 그림과 김해자 시인의 바느질 컬래버레이션 놀이.

그 시절의 작은 문화 프로그램은 어디로 갔나

최근 10년, 시골에 내려와 살게 되면서 어쩌다 보니 문화의집이나 복지관, 기초수급자를 위한 자활 후견 기관, 인권센터 같은 데서 문학 강연이나 몇 달짜리 강의를 하는 일이 잦았다. 돈은 얼마 주지 않았지만 번듯하게 남는 예산을 쓰면서 마지못해 하는 일들이 아니어서, 그 사업을 추진하는 실무자들의 열정과 의지가 넘쳐났다. 덩달아 나도 열심히 하고 보람도 있었다. 치매병동에 가서 어르신들과 글쓰기를 하면 얼마나 하겠는가만은, 공중에다 말로 글을 쓰거나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몇 자 쓰거나 나누는 삶의 이야기들이 빛나고 소중했다.
그런데 향유자와 추진자, 강사 모두가 기다리고 좋아하던 그런 소박하고 조촐한 프로그램들이 차츰 줄어들더니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졌다. 실무자들은 지원방식이 까다로워 이제 그런 일들을 기획하기 겁난다고 했다. 조손가정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면서 방과 후 이러저러한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던 어떤 실무자는 하고많은 서류가 작성인지 조작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제출한 서류를 쌓으면 바닥에서 천정까지 닿을 거다”라고 했다. 이삼일씩 걸려 밤새 서류를 만든다는 것이다. 자료와 씨름하느라 실제 프로그램에 쏟을 시간이 없다고도 했다. 이명박 정부 중기에서 박근혜 정부 초기의 일들이다. 그렇게 400~500만 원에서 1,000만 원짜리 지역의 작은 문화 프로그램들이 사라져갔다. 나는 그때 ‘참 국민 돈 가지고 쪼끔 쓰면서 엄청 유세하는구나’ 생각했다. 더불어 지역 시민의회 같은 게 있어서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는 문화예술의 수혜자이자 공정한 감독자 몇 명만 있어도 형식적인 서류가 10분의 1로 줄지 않을까 생각했다.
노장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빈곤과 불운과 질병을 증명해야 하는 복지제도와 빈민구제법 등의 지원을 풍자하는 영화다. 주인공 블레이크는 심장병으로 병원에서는 일을 하면 죽는다 하고, 당국에는 구직활동 의지를 증명해야 하는 이중의 감옥에 갇혀 있는 독거노인이자 장인이다. 구직활동을 하고도 그를 채용하려는 공장주에게 연락이 오면 거절해야 하는 거짓 사이에 그는 존재한다. 양심과 실직수당 사이의 톱니바퀴에 끼어 신음하는 사이에도 먹을 것이 없는 이주노동자 가족에게 제 것을 떼어 경제적 도움을 주고, 말을 잃은 아이들과 여성가장에게 희망의 모빌들을 만들어주는 사이, 정작 자기 집에는 전기가 끊기고 먹을 것도 없어진다. 말과 서류와 문자가 조합된, 소위 행정 양식이라는 것들은 가난하고 못 배우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가장 약한 고리이다. 지지직거리는 흑백화면처럼 알아듣지도 못하는 수많은 질문과 취조에 가까운 행정절차에 ‘예스’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지난한 과정의 막바지에 그는 심장발작으로 숨진다.

문화예술 생태계 복원에 힘써야 할 때

사실 내가 아는 시인, 소설가 혹은 연출자들은 웬만한 노동자들보다 가난하다. 원인이 어떻든 1년에 1,000만 원 이하의 수입으로 겨우 살아가며 그 수입이란 것도 비정기적이어서 생활고의 불안 속에서 살고 있는 게 아마 일반 예술인들의 처지일 게다. 어느 소설가는 상을 하나 받고 심폐소생술을 받은 것 같다 했다. 그 상금으로 5년은 굶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한 노시인은 정기적으로 나오는 어떤 지원을 받게 되자, 그 즈음 이제 그만 죽을까 생각하는 중이었다고 했다. 어느 작가는 문예창작기금을 받고 나서 1년 동안은 글에 전념할 수 있어서 좋은데, 제출하고 증명해야 할 서류들이 너무 많고 어려워서 소설에 지장을 주는 지경이라 했다. 기획서조차 내지 못한 나 같은 아날로그형 인간에게, 그래도 소정의 양식과 작품과 기획서를 온라인에 제출해 심사에 통과한 그의 소회가 의외였다. 안 내길 잘했다, 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그런 지원 프로그램에 도저히 도전할 수 없겠구나 생각하며, 시도조차 못한 내 무능과 불성실을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텃밭도 농사라고 몇 해째 하면서 매양 깨닫는 바는 한 가지 작물로는 취약하다는 점이다. 고추 옆에 깨랑 상추도 있고 대파랑 수수도 있어야 가뭄에도 폭우가 쏟아져도 서로 의지하면서 버티고 병해도 덜 입는다. 10년 새 강만 망가진 게 아니다. 지역주민에 근간을 두는 총체적 문화예술 생태계의 파괴는 민주주의의 철회이자 풀뿌리 정신 자체의 말살 수준이지 않았는가.
국가와 일반 대중의 수혜를 제법 받는 명망가 중앙 위주의 예술정책은 일반 시민과는 ‘너무나 먼 당신’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분권에 기초한 지역문화진흥체계 구축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문화예술 교육 확대는 바로잡고 복원해야 할 중요한 정책 방향이겠다. 더불어 문화예술인의 사회안전망 구축이란 것도 일방적 시혜성이 아니라 상호 수혜성에 근거해 정책들과 연동시키면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글·사진 김해자_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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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사회적 노동이다

지난 2011년, 고 최고은 작가의 비극적인 죽음은 예술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예술인 복지제도와 법이 한국사회에도 필요하다는 사회적 논의를 촉발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조금은 낭만적인 수사로 포장되기도 했던 예술인의 빈곤과 가난의 문제는 한 예술인의 죽음을 계기로 생존의 문제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언론에 서는 연일 예술인의 빈곤 문제를 다뤘고 예술인에 대한 동정의 여론이 들끓었다. 그리고 몇 년간 다른 법안들에 밀려 표류하고 있던 예술인 복지법이 국회를 통과하기에 이르렀고 한국에도 예술인 복지라는 새로운 화두가 던져졌다.
이 화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 최고은 작가의 죽음에 앞서 2003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구본주 작가의 죽음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구본주 작가는 2002년 서울 예술의전당 젊은 작가로 선정되는 등 주목할 만한 조각가로 인정받았으나, 2003년 9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가해자의 보험사였던 삼성화재는 보험료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고 구본주 작가가 지속적인 수입이 없어 소득을 입증할 자료가 불분명하고 예술활동 경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도시 일용직 노임 기준에 준하여 보험료를 산정하였다. 당시 문화예술계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일용직 노임이 적용되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촉망받는 예술가란 외피를 걷어내면 직업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사회적 권리, 아니 그 존재 자체도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인의 비참한 현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예술인들은 일인시위와 기자회견을 통해 “예술은 사회적 노동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법원의 조정으로 고구본주 작가 측과 삼성화재 간의 소송이 종결되면서 이러한 논의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한국의 예술인 복지정책은 2011년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된 이후, 2013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만들어지면서 본격 시행되었다. 이 시기 박근혜 정부는 국정기조로 ‘문화융성’을 내세우며 생활고로 예술의 꿈을 접는 예술인이 없게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4년은 결과적으로 예술인 복지라는 이름의 지원사업을 확대한 것 말고는 예술인의 삶과 창작환경을 변화시키는 데 철저하게 실패하였다. 예술인 복지법은 몇 차례의 개정을 거치긴 했으나 예술인 복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예술인에 대한 사회보험 적용 문제와 이를 위한 예술인에 대한 근로자 의제 반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출범 초기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로부터의 독립성 문제로 휘청거리기 시작하더니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과 같은 일자리 사업과 저소득 예술인 지원사업의 실행기구로 전락해버렸다. 수많은 예술인들과 정책전문가들이 예술인 복지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지적한 독립적인 예술인 복지예산 확보와 현장 예술인에 기반한 예술인 복지제도 수립을 위한 거버넌스는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현장 예술인과의 교감과 소통이 먼저

앞서 살펴본 고 구본주 작가의 이야기는 예술인 복지의 출발점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말해준다. 불안정한 사회적 지위로 인해 제대로 된 직업분류조차 존재하지 않고, 예술활동이란 사회적 노동의 주체로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야말로 예술인 복지를 이야기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14년 전 예술인들이 “예술은 사회적 노동이다”라는 구호를 외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예술인 스스로도 예술을 노동으로 이야기하는 데 반대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예술노동’이란 말은 더 이상 낯선 말도 아니고, 밥 먹고 예술하자는 외침은 외롭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의 예술인 복지제도는 예술인을 시혜적인 지원의 대상으로만 보며 예술인의 권리 문제에는 애써 고개를 돌리려 한다. 이제 예술인의 빈곤과 생존, 창작환경의 문제는 예술인 개개인에게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 하는 수준의 논의가 아닌, 예술인을 착취하고 배제하는 우리 사회의 근본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 중 예술인 복지 관련 공약으로 ‘예술인의 정신적 권리, 경제적 권리, 사회적 권리 보장의 제도적 근거 마련’, ‘예술인의 창조적 노동에 대한 공정한 보상 강화’, ‘예술인 실업급여 제도(프랑스 앵떼르미땅) 도입’, ‘예술인 복지금고 지원’, ‘청년예술인을 위한 창작 주거 인프라 조성 및 안정적 일자리 창출’을 제시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예술인 복지 관련 공약들은 그간 예술현장에서 요구해온 내용들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여전히 예술인 복지 문제를 권리보장의 개념이 아닌 보다 적극적인 지원정책의 맥락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특히 프랑스 앵떼르미땅형 예술인 실업급여 제도는, 프랑스의 경우 보편복지 체계 안에 예술인에 대한 별도 트랙이 존재하고 이에 걸리지 않는 비정규 예술인들에 대해 앵떼르미땅과 같은 보조적인 실업급여 지원제도를 실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복지제도와 연동되지 않고는 그 실현이 불투명해 보인다. 또한 청년예술인을 위한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 공약도 예술인에 대한 노동의제 적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또 다른 나쁜 일자리 양산 사업이 될 수 있다. 결국 보편복지체계의 재설계와 임노동자 중심의 현행 노동법체계 등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어떠한 예술인 복지정책도 임시처방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술인 복지 문제는 그 정책적 특성상 현장 예술인과의 교감과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많은 예술인들과 정책 전문가들이 예술인 복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거버넌스 구조 구축을 핵심적인 과제로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직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새로운 문체부 장관이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예술인들을 위한 예술인 복지정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피해서는 안 되는 과정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글 하장호_ 예술인소셜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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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50년대 후반에 태어나 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녔으며, 30여 년 동안 직장인으로 생활하다 지난 연말에 명예퇴직을 했다. 흔히 말하는 베이비붐 세대다. 주변의 친구들이나 동료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평생직장을 뒤로 하고, 제2의 인생설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이다. 누구도 예외 없이 30여 년의 직장생활에 물질적, 정신적으로 충족해하기보다는 한결같이 ‘아직은 젊고 더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새로운 일터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일부는 자영업을 모색한다. 또 정부에서 지원하는 구직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구슬땀을 흘리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도, 새로운 직업에 안착하기도 녹록지 않은 현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주위에 성공 사례보다는 실패 사례의 비중이 월등히 많고, 가슴을 아리게 하는 치명적인 사례가 많아 미래를 설계하는 나 또한 두려울 때가 없지 않다. 노부모님을 봉양해야 하고, 자식들의 막바지 뒷바라지 등 고충이 절정에 이를 수밖에 없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자녀들의 학비 문제와 취업 문제, 이어지는 결혼 문제, 그리고 손주들의 육아 문제까지… 산 넘어 산이고 결코 순탄치 않은 악산들만 모여 있는 형국이다.

광화문은 깊은 울림을 주는 공간

나는 예전 직장이 광화문에 있었기에 광화문 풍경에 익숙하다. 광장이 광장으로 기능을 할 때, 업무 시간에 고충이 없지는 않았지만 특별한 경험을 하곤 했다. 광장에서의 함성이 건물 안으로 이입되어 들리는 소리는 하늘과 땅이 맞부딪쳐 어떤 소리를 만들고는 이내 어디로 흘러가는 느낌을 준다. 이때 가슴 저 밑에서 진한 울림을 동반한다.
87년 6월 항쟁의 넥타이 부대의 일원이었고,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의 물결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명박산성을 목도했으며, 지난 연말에는 장엄한 촛불민심을 내려다보며 시민으로 직장인으로 한숨짓고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마침내 직장인의 일상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을 때 청춘은 가고 없었다.
매월 퇴근 후 가졌던 직장 내 동기모임은 모든 동기들이 퇴직하여 합류하게 되면서 평일 낮의 광화문 모임으로 바뀌었다. 50대 후반, 7~8명의 퇴직자들이 광화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느림보 걸음으로 걷는다. 미술관에도 가고 맛집도 찾아다니고. 다음 모임은 고궁에서, 그 다음은 박물관으로. 몇 개월째 시내 투어를 하며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한다. 새로운 고민거리도 나눈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인근의 명소를 찾아다니다 보면 필연적으로 눈에 띄는 것이 광화문글판이다. 글판이 교체될 때마다 노트에 적어두기도 하고, 사진으로 찍어두기도 하고, 때로는 외워서 읊조리기도 했다. 직장인의 애환을 달래주던 광화문글판은 언제나 반갑고 고마운 존재였다. 광화문글판은 누군가의 시였다. 시민에게 편안하게 보이도록 안온한 글자체와 그림을 곁들여 도시와 광장의 품격을 높여주었다. 나처럼 많은 시민들이 광화문글판의 짧지만 담백한 글귀에 위안을 받으며 일상의 애환을 달랬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글판의 원작자인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라는 멍에로 상처를 받아야 했다니. 촛불민심의 분노의 정점에는 블랙리스트도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작태에 치를 떨었다.
많은 이들이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지향하지만 누구에게나 재능이 주어지지는 않는지라 문화예술인을 부러워하고 그들의 재능에 감탄하며 생활인의 애환을 달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문화예술인을 좀 더 융숭하고 존귀하게 바라보고 대접하며 지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테마 토크 관련 이미지퇴직한 직장 동기들과 함께한 서울시립미술관 관람 기념 촬영.

축적된 인생의 경험이 소멸되지 않기를

베이비붐 세대로 치열한 경쟁과 고단함을 견뎌냈지만 제2의 인생을 도전하고 헤쳐 나가야 하는 지금, 어느 것 하나 순탄치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체험이 무의미하게 휘발되거나 소멸되지 않도록 버팀목이 있었으면 한다. 그 한 축에 문화예술이 힘이 되어주면 좋겠다.
등산을 가거나 산책로에서 산책을 할 때, 하물며 당구를 치러 당구장에 가도 득시글대는 베이비붐 세대를 만나게 된다. 이들이 의기소침하지 않고 당당하면서도 품위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유가 얼마나 많은가?
더불어민주당의 정책 공약집을 눈여겨보았다. 공공도서관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장서 구입을 확대하며, 독서문화 진흥을 위한 예산을 늘릴 것이라고 한다. 평생직장을 떠나 재충전을 위해 인근 공공도서관을 찾아가면 위와 같은 공약을 십분 공감하게 된다. 우선 열람실 자리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수요 공급의 불균형이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한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수험생 일색이다. 그 속에서 수험서가 아닌 인문학이나 예술 관련 서적을 뒤적이는 것은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다.
찾아 읽고 싶은 장서가 부족한 것도 해결이 시급해 보인다. 수험서나 자기계발서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지식의 보고가 되려는 공공도서관의 지향점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신입사원들을 볼 때마다 느꼈던 소회는 두뇌 회전은 빠른데 따뜻한 가슴과 다양성, 창의성은 예전과 다르다는 것이다. 인문학을 포함한 문화예술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갈 곳도 쉴 곳도 마땅치 않은 수많은 베이비붐 세대들이 소박한 공간에서 편안하게 독서하고 소통하며 그들끼리의 바람직한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개념의 공공도서관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단순한 공약 이행을 뛰어넘어 새로운 문화 창출로 이어지리라 믿는다.

글·사진 이우만_ 퇴직 후 시민예술대학 <연희문학학교>를 수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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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토크 프로그램에서 연극을 전공한 초등학교 방과후교사의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낯설고 쑥스러워하던 아이들이 수업을 통해 표현력도 좋아지고 훨씬 밝아졌다며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감사의 인사까지 받은 그지만, 계약 만료의 문턱 앞에서 아이들과 헤어질 시간을 안타까워하는 사연이었다. 직장을 잃었다는 슬픔보다는 더 이상 아이들의 꿈과 함께할 수 없음에 눈물을 보이는 예술가의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 연극이라는 것을 경험한 아이들이, 순수한 예술가와 꿈을 나눈 아이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 큰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남달라 새로운 것을 알아가거나 도전하는 게 곧 즐거움이었다. 맞벌이인 부모를 대신해 큰아이를 키워준 시어머니는 그런 손자의 성향을 알고는 김치를 담글 때나 만두를 빚을 때도 아이가 할 수 있게 자리를 내주셨고, 무언가를 만들거나 그릴 때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조용히 기다려주셨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상 시간의 여유가 있던 남편은 시간이 날 때면 아이와 함께 전시관이나 체험행사들을 찾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왔고, 아이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곁에서 자리를 지켰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워킹맘에서 육아맘이 된 나는 나름의 기대가 있었다. 이제껏 시어머니와 남편이 아이 곁에서 좋은 조력자가 돼주었다면,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 역할을 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그 사이 작은아이가 태어났고 미처 경험하지 못한 육아라는 치열한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무엇보다 큰아이를 향한 거절과 이해가 반복되었고 아이를 방치하는 시간도 그만큼 많아졌다. 사설 학원이나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며 아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채워줄 수도 있었지만 시간과 돈,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았다. 한 번은 두 아이와 지하철로 움직여 세계요리를 체험하는 한 달간의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수업이 끝날 무렵 나는 몸살로 앓아눕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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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생활 그 자체가 되길

큰아이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 유일한 곳은 다름 아닌 방과후학교이다. 사교육 부담을 줄이고자 초등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방과후학교는 정규 수업 이외에 음악이나 체육, 컴퓨터, 한문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적은 비용으로도 다양한 수업을 경험할 수 있으니 엄마는 죄책감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될 수 있고, 아이 역시 평일 오후를 따분하게 보낼 일이 없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럼에도 부모로서 아쉬움이 있다면 문화예술 관련 과목들이 악기 수업이나 공작놀이 등에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문화예술이라는 것의 범위가 문학과 영상, 공연과 문화활동 전반을 모두 포함한다고 했을 때, 현재 학교에서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문화예술이라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물론 누군가는 좀 더 커서 해도 될 일을 굳이 초등학교에서부터 접할 필요가 있냐고, 쓸데없는 것이라며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학교 재량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고, 과목을 개설하기까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현실적인 문제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기준이나 잣대가 아이의 생각과 마음에 자리 잡기 전에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그 속에서 서로 다른 생각과 결과물들이 생산될 수 있음을 경험하는 것은, 교육이나 학습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사유와 인식의 폭을 넓히는 일일 것이다.
아쉬움을 넘어 더 큰 바람이 있다면 방과후학교뿐만 아니라 집 주변의 일상공간에서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단순히 특정 수업에 도움이 되거나 아이의 발달에 이롭기 때문이 아니라 생활문화 그 자체로서 말이다. 학교를 마친 아이가 근처 예술창작공간 같은 곳에서 친구들과 정크아트를 만들고, 동네 형, 누나들과 함께 연극 연습을 하며, 사진작가 누나를 따라 근처 공원으로 ‘출사’를 나간다면 우리네 삶의 풍경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언젠가부터 청년실업 문제나 예술가들의 경제적 빈곤에 관한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되고, 정부 차원에서도 이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일자리예산이라는 명목의 경제적 지원에 그침으로써 실제적인 일자리의 사회적 효과는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지역사회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청년예술가들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펼쳐놓을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닐까.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예술과 기술, 과학과 문학이 서로 교차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살면서 하나의 목표에 아이들을 줄 세우는 어리석은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경험을 되도록 많이 접하게 해주고 싶다. 그 쓸데없는 경험이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쌓인다면 결국 자신의 삶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든든한 밑거름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글·사진 정연희_ 호기심 많고 체력 넘치는 남자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육아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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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까지

세월호가 그랬듯이 블랙리스트 문제도 벌써 지겹다는 사람들이 있다. 재판에서 다 밝혀질 텐데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를 왜 또 만드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고, 험악한 시절 잘못 만나 벌어진 일인데 뭐 그렇게 시시콜콜 다 밝혀내야겠냐며 눈치를 주기도 한다.
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가 주관하는 ‘2015년도 공연예술창작산실’ 심의에 참여했다가 문예위 직원들로부터 박근형 작·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배제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나를 비롯하여 심의위원들이 선정결과를 번복할 수 없다고 하자 직원들은 박근형 연출을 직접 찾아가 ‘포기 각서’까지 받아내고, 극단 대표가 해야 할 공연 포기 신청까지 직원들이 행정 시스템에 조작 입력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 직원 중 장모 씨는 문예위 감사와 최근 재판 과정에서 심의위원이 박근형 연출의 포기를 먼저 제안했고 자신은 포기 각서만 받으러 갔다는 식의 위증을 했다. 심지어 법정에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향해 장문의 편지를 읽으면서 자신이 마치 피해자인 양 위선적인 행태를 보였다.
문예위 직원들은 박근형 연출이 배제되지 않으면 창작산실에 선정된 나머지 7개 작품마저 공연할 수 없을 것이며, 창작산실 지원사업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심의위원들을 협박했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2015년 9월 9일, JTBC를 통해 폭로했는데 그 후 7개 극단들은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박근형 연출만 검열을 당한 것이 아니라 7개 극단의 작품들까지 모두 검열을 당한 마당에 과연 지원금을 받고 예정대로 공연을 진행해야 할 것인지가 고민거리였다. 게다가 그 7개 극단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보는 동료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연극계 최고의 지원금이 걸린 공연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 결코 쉬울 수는 없다. 더구나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은 젊은 작가들의 자괴감과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7개 극단들 사이에 공연 포기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고 들었으나 결국 7개 공연은 차례로 막이 올랐다.
당시 나는 그 7개 극단들이 합심하여 공연을 포기하고 박근형 연출과 함께 검열반대 투쟁을 벌여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이 엄청난 고뇌에 빠져 있는 동안 나마저도 괜히 폭로를 했다는 회한에 사로잡혔다. 심지어 7개 극단이 정말 공연을 포기하고, 문예위 직원들이 협박했던 대로 그 사업 자체가 없어져버린다면 나한테 온통 비난의 화살이 쏠릴 것만 같았다. 그 후 지난해 가을 9,473명의 구체적인 블랙리스트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까지, 나를 비롯하여 검열반대 투쟁을 함께했던 현장 연극인들이 겪었던 분노와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부끄러운 과거 청산과 화해의 노력

이처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문예위 공무원들의 블랙리스트 부역 행위는 단순히 지원에서 배제된 예술가들에게만 피해를 끼친 것이 아니다. 블랙리스트로 인해 연극계는 서로 의심하며 분열되고,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매도하며 사분오열되었다. 6월 13일에 발표된 감사원 감사 결과에 의하면 일부 심의위원들이 문예위 심의에 들어가기 전에 공무원들과 미리 ‘공모’하여 지원배제 시나리오까지 짰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문예위 심의에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의혹의 눈길을 받고 있는 심의위원들 역시 블랙리스트의 피해자들이다. 지금까지 알려졌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문예위 직원들이 블랙리스트 실행에 조직적으로 가담했다. 블랙리스트 실행에 미온적이어서 좌천되었다가 최근 문체부 요직에 복귀했다고 알려졌던 김모 씨는 감사원 감사 결과 가장 악질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 진행 중인 블랙리스트 관련 재판은 차관급 이상 고위 공무원들의 범죄 사실만을 따지는 데 집중되어 있다. 그 아래 문체부와 문예위 공무원들이 저질렀던 실질적이고도 조직적인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상세히 밝혀진 바가 없으며 마땅한 징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블랙리스트의 실행자들이 여전히 문체부와 문예위에서 현장 예술가들을 상대하는 지원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현실은 가장 참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제까지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지던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와 <검열백서> 발간 작업이 도종환 문체부 장관의 취임과 더불어 정부 차원의 기구에서 새롭게 진행될 예정이다.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범죄 행위 및 부역 행위들을 낱낱이 밝히려는 노력들이 자칫 피해자들의 보복 행위로 오해되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검열백서> 발간 작업은 가해자들에게 최대한 자발적인 사죄와 협조를 구하고 있으며, 이는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고 서로 화해하려는 험난한 여정이다. 블랙리스트 재판은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의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글 김미도_ 연극평론가, 검열백서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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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행정의 촌탁(忖度) 거부하기

지난 4월 ‘일본판 아츠 카운슬과 지역문화재단’이라는 주제의 일본문화정책학회에 초대되어 한국의 광역문화재단 운영 사례를 소개했다. 이날 학회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촌탁’(忖度)이었다.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린다’는 의미의 이 한자어는 일본의 정치 권력에 대해 ‘스스로 알아서 기는’ 관료사회의 한계로 거론되었다. 영국의 아츠 카운슬(ACE) ‘팔길이 정책’(arm’s length policy)이 과연 일본 사회에 통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근원적인 논의가 이어졌다. 공공문화예술기관들은 현실적으로 촌탁 행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 제기도 더해졌다. 이날 좌장인 이토 야스오 일본문화정책학회장은 문화정책의 핵심은 예술 표현의 자유라는 점을 강조했다. 예술의 자유를 위해 영국의 사례를 인용하며, 일본의 아츠 카운슬은 향후 ‘정부의 간섭을 최저 수준으로 억제’하기 위해 ‘대학과 같은 자율성’을 촉구하였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정책의 핵심인 예술의 자유를 블랙리스트로 통제했다. 일선 문화행정기관에서는 권력자들의 심기를 알아서 헤아리는 촌탁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새 정부의 문화정책은 바로 이러한 행위의 반동으로 그 근절을 약속하게 된다. 새 정부는 ‘문화예술,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정책 기조와 함께 ‘표현의 자유 보장과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대책’을 제시했다. 문화예술 공적지원의 축을 담당하는 공무원, 문화예술기관의 문화행정가에게 향후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 주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문화지원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은 결국 근원적으로 예술가들에게는 예술의 자유를, 권력에게는 촌탁 행위가 근절되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 아츠 카운슬의 창시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개념인 ‘반자치적 조직’(semi-autonomous bodies)과 ‘예술가의 자유’와도 그 맥을 같이한다. 이는 새 정부 문화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거버넌스를 통한 정책 운용의 자율성 보장하기

새 정부는 분권에 기초한 지역문화진흥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지역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분권에 기초한 지역문화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중앙정부, 지자체, 지역문화재단 간 정책 전달 채널의 상설화가 필요하다. 또한 지역문화진흥법에서 그 역할과 위상을 보장한 지역문화재단이 정책을 제언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그 수단으로 지역문화 재정의 자율성이 확보되고 문화 재정이 더욱 확충되어야 한다. 국가는 정책사업을 지자체 혹은 지역문화재단에 위탁 시 예산 운영의 자율성 제고를 위한 포괄적 보조 형식의 교부 내지는 직접 출연을 해야 할 것이다. 지역문화진흥법의 지역문화진흥기금 설치에 관한 조항을 임의조항에서 강제조항으로 개정하여 재원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명확히 하기를 바란다.
공공 문화예술기관은 책임성과 투명성을 통해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신뢰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예산 배분에 대한 집행과 수혜자의 신뢰 관계는 ‘예술가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정산 행위’를 감시와 통제를 전제로 하는 보조가 아닌, 지원의 목표에 부응한다면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 순수지원으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현재 문화예술의 보조금(subsidy) 형태에서 예산 집행의 자율성이 보조에 비해 높은 지원금(grants)이 그 방법이 될 것이다. 실제로 지원금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인 장학금(fellowship)은 수혜자에게 어떠한 정산 행위도 요구하지 않는다. 상호 신뢰와 공익적 목적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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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문화중산층이 문화의 분수효과 일으키기

그동안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지역문화정책은 ‘지역 문화격차’ 해소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문화의 접근성과 격차 해소를 위한 문화 민주화(democratization of culture)에 무게중심이 있었다. 이는 경제학에서 부유층의 투자·소비 증가가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로까지 영향을 미쳐 전체 국가적인 경기부양 효과로 나타나는 현상인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예술’을 취약 지역 및 계층에 제공하면 ‘문화의 격차’가 해소될 것이라는 기저가 깔려 있다. 문체부에서 지역문화정책을 주도하며, 예술이 지역에 퍼지도록 하는 낙수효과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실상은 공급자 중심의 획일화된 지역문화정책으로 인해 문체부의 사업을 지역에 전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문화 민주화에 여전히 경도된 사고이다.
오늘날 문화정책은 문화의 다양성에 기반한 문화 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로 전환되고 있다. 이제는 지역의 다양한 문화활동이 국가 문화로 분수처럼 퍼져야 할 때이다. ‘예술의 낙수효과’로부터 ‘문화의 분수효과’가 일어날 수 있도록 지역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지역 문화가 주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문화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저소득층의 소비 증대가 전체 경기를 부양시키는 현상인 분수효과(trickle-up effect, fountain effect)를 주창했던 케인스, 예술지원을 국가의 책무로 받아들였던 그의 이론을 이제 문화 민주주의에 기반한 문화의 분수효과로 상치시켜야 할 것이다.
문화의 분수효과는 지역으로부터 문화적 중산층이 확산될 때 가능할 것이다. 한국사회의 경제적 중산층에 대한 대체 개념으로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 가치관을 규정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 제시가 필요하다. 경제적 소비 격차와 관계없는 ‘문화중산층’이라는 개념 도입이 필요하다. 실제로 경제적 중산층에도 문화소외계층이 다수 존재한다. 현재 국가의 문화정책 역시 경제적 약자를 문화소외계층으로 규정하여, 문화격차를 해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새 정부가 문화정책의 방향을 문화격차 해소에서 문화중산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기를 기대해본다.

글·사진 조정윤_ 부산문화재단 기획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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