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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7월호

문재인 정부의 문화정책 전망, 기대, 그리고 상상하기
새 정부에서의 문화정책의 변화를 전망해 본다. 대선 공약집, 문재인 대통령과 새로 임명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말 속에서 새 정부 문화정책의 기조를 훑어본다. 그리고 문화예술계의 기대와 시민들이 바라는 바를 들어본다. 새 문화정책이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환이 필요한지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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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블랙리스트라는 블랙홀을 어떻게 헤쳐 나올 것인가?

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문화 관련 공약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의 적폐, 문화계 블랙리스트 청산’과 함께 12번째 약속 ‘문화가 숨 쉬는 대한민국’ 분야의 8대 과제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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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은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치러졌다. 블랙리스트 사태는 탄핵된 정권의 대표적인 적폐로서, 문화 분야의 중요한 선거 이슈로 다루어졌다. 지난 6월 16일 임명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도 인사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영역에 대한 정부 개입의 근본적인 적절성과 방향성이 문화정책에서의 오랜 논쟁거리였다. 이를 상기해보더라도 블랙리스트 사태는 분명 여러 가지 중요한 문화정책적 함의가 있다. 하지만 6월 13일 발표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블랙리스트 단체에 대한 부당한 지원 배제 또는 소위 화이트리스트 단체에 대한 부당한 지원 지시, 그리고 이에 따른 부적절한 ‘행정’ 집행에 대한 것이었다. 감사원은 부적절한 지시와 행정 행위를 적발하고, 이에 따라 김종 전 차관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수사 요청, 연루된 문체부 직원의 징계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4개 산하기 관장에 대한 주의 조치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예술인들은 감사원의 감사(監査)에 “감사(感謝)할 수 없다”며 즉각 반발하였다. 감사원의 감사는 블랙리스트 사태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헌법정신을 유린한, 엄중한 범죄로 보는 문화예술계의 인식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듯하다.
블랙리스트를 단지 부당한 행정 행위 차원에서 보느냐, 문화정책의 기본원칙 차원에서 보느냐에 따라 논쟁의 깊이는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최근 지역문화재단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새 정부 문화정책에는 블랙리스트밖에 없나?”, “블랙리스트 사태 대처 방안을 문화정책이라고 할 수 있나?”,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대책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문화정책이다”라는 논쟁이 있었다. 앞으로 문체부가 꾸릴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블랙리스트 사태가 어떤 관점에서 어느 수준으로까지 다루어질 것인지, 문화정책 연구자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이슈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우리나라 문화행정이 문화정책 또는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문화예술계 또는 국민들의 인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식의 차이를 어떤 방향으로 좁힐 것인지 합의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문화정책의 올바른 추진 방향을 토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인간 내면의 자유를 표상하는 문화와 사회의 질서 및 안녕을 책임져야 할 공권력 사이의 만남은 불편하면서도 불가피하다. 이런 만남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지금 이 시대 국민들의 상식 수준으로 정리한 것이 문화정책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정리된 문화정책 이슈들 중에는 위의 더불어민주당 19대 대선 문화공약 8가지보다 더 많은 과제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다양한 문화정책 이슈들로 논의가 확장되기 위해서는 얕은 행정적 조사보다 깊은 이념 논쟁이 필요하다. 다만 그 논쟁은 잃어버린 10년을 비난했던 사람들의 또 다른 권불십년(權不十年)을 정치적으로 성토하며, 소모적인 정쟁으로 흐르지 않는, 정책이념 논쟁이어야 할 것이다. 블랙리스트가 다른 문화정책 이슈들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를 막는 블랙홀이 될지, 새로운 지평으로 에너지를 뿜어내는 화이트홀이 될지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역량과 민주적 토론 수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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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문화융성은 아니더라도 문화가 있는 삶과 지역문화자치가 이어지기를

블랙리스트라는 전 정권의 적폐 가운데에는 문화계의 각종 특혜와 비리로 이어진 ‘문화융성’이라는 국정 기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5월에 ‘문화가 있는 날’을 명시하도록 법을 개정하기도 하였다. 창조경제를 부르짖었지만 문체부의 관련 정책이 창조적이었는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문화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가 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문화기본법을 제정했던 전 정권의 문화정책 기조를 역행할 수는 없다. 거창하게 발표되고 형식적으로 실행되었던 전 정권의 말들을 지우기 위해, 새로운 정책 슬로건 만들기에 골몰한다면 또 다른 형식주의 정책을 생산할 뿐이다.
‘문화융성’이라는 정책 슬로건을 어떻게 정의하든지 간에, ‘문화가 있어 행복한 삶’, ‘문화를 통해 잘사는 나라’는 이미 세계적인 대세이고 뭇사람들의 바람이다. 헌법에 문화국가의 원리를 명시하든지 안 하든지 간에, 그것은 모든 국가의 존재 이유이며 대의민주주의 국정의 목표로 해석된다.
인생의 제2막을 재미있게 시작하려는 베이비부머뿐만 아니라 취업전선에서 메말라가는 마음의 윤기를 유지하려는 청년들에게까지, ‘문화적 삶’은 정권이 바뀌었을지라도 변함없이 중요한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문화적 삶은 문체부의 업무 범위 안에서의 시책만으로 구현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후보 당시 공약집을 살펴보면, 문화정책 공약인 ‘약속 12. 문화가 숨 쉬는 대한민국’ 이외에 다른 영역에서도 문화 관련 공약들이 확인된다. ‘약속 7. 출산·노후 걱정 없는 대한민국’에는 “경로당을 여가, 건강관리,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르신 종합복지센터로 개발”하거나 “실버극장을 중심으로 한 어르신 문화공간을 확대” 하는 등, 여가 및 사회활동 지원으로 문화복지를 늘리겠다는 공약이 있다. ‘약속 8. 민생·복지·교육 강국 대한민국’에서도 “초·중·고 교과 수업을 예술활동과 결합하기 위한 지원 확대”, “장애 학생 문화예술 활동지원 강화”, “국민 대상 다문화 수용성 교육 내실화와 확대”와 같은 문화예술 관련 공약들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문화융성의 중요한 한 축으로서, 지역의 문화발전과 생활 속의 문화진흥을 추구했던 지역문화진흥정책 차원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지방분권 강화와 균형발전 정책 기조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는 공약집의 ‘약속 6. 전국이 골고루 잘사는 대한민국’에 서술되어 있다. 주요 공약으로는 “1. 중앙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고 지방의 자치역량을 강화하는 등 지방분권을 실현하겠습니다”와 “2. 지방의 재정 자립이 실현될 수 있도록 강력한 재정분권을 추진하겠습니다” 등이 있다. 이 공약들은 대통령 취임 후 개헌 논의와 연계하여 매우 발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이는 박근혜 정부에서 지역문화진흥 예산의 지역발전특별회계 전환을 추진했던 흐름과 연결된다. 다만 단순한 문화분권 차원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주체들이 요구해온 문화자치 차원의 문화정책 기조로의 전환일지는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도종환 장관은 국회의원 시절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을 주도한 바 있다. 지역문화진흥기금 재원의 명시 등 실효적인 법 조항 삽입을 주장하다가 2013년 12월 입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형식적인 법 제정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장본인이다.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문예진흥기금 고갈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한 도종환 장관이 지역문화진흥을 어떤 기조로 풀어나갈지 기대된다.

상상: 문화행정의 전면적 개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정상의 재정상화?

새 정부에 대한 현장 예술계의 요구 중 “문화행정의 전면적인 개혁”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크다. 문화행정의 개혁은 블랙리스트와 같이 비리로 드러난 비정상의 정상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동안 공공행정의 기준과 예술의 현실 사이에서 적절한 ‘문화행정’을 펼치지 못한 문화 관련 기관들의 무소신, 무책임, 무능을 한꺼번에 질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투명하고 효율적인 보조금 관리”로 부정부패를 없앤다고 TV 광고까지 내보내고 있는 e-나라도움 시스템 때문에 예술인들은 창작의 의욕을 잃는다고 한다. 시스템에 접속하면 매 순간순간 자신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있는 것을 인식하면서, 자유로운 창조자로서의 자존감이 고갈되어간다고 한다. 예술가의 창작을 활성화하는 것이 예술지원정책의 목표라면, 그 행정 행위가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 것이므로 이 또한 행정학에서 규정하는 ‘형식주의’이다.
기획재정부의 논리 또는 공적자금의 투명한 관리를 바라는 시민들의 눈으로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 왜 예술가들에게는 비정상적인 결과를 가져오는가? 그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서 적절한 시스템을 설계해야 할 문화행정가들은 무엇을 하였는가? 신자유주의의 격랑 속에서 공공행정에서도 신공공관리론과 성과주의가 득세한 지 오래되었다. 그 이후 문화예술의 본질적 가치는 보다 높은 생산성을 위한 창조성으로, 자율성은 재정적 독립성으로 곡해되거나 활용되었다. 블랙리스트 사태의 연원을 찾아 올라가다 보면 그것이 정권의 오래된 정치적 불의에서 기인한 동시에 국가 정책 기조의 부적절성을 교묘히 활용한 측면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껏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결국 알고 보니 비정상이었을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면, 그것을 새롭게 정상적으로 재설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겨레는 2017년 5월 16일자 “‘문재인법’을 보면 ‘문재인 정부’가 갈 길이 보인다”는 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발의했던 3가지 법률안들을 소개했다. 2014년 6월 17일 제안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 2012년 9월 7일 제안한 ‘부담금 관리 기본법 일부 개정법률안’과 ‘청년고용촉진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그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은 폐기되고, 사회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한 경영평가가 추진된다. 사회적 가치가 만들어질 수 있는 기반이나 그것으로 재구축되는 사회적 기반이 ‘사회적 자본’이다. 사회적 자본의 밑바탕은 소통과 협력에 근거한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신뢰’가 버티고 있어야 한다. 공공행정이 추구해야 할 공공성과 효율성 차원에서 보더라도 사회적 가치는 새롭게 되 돌아봐야 할 덕목이다. 모든 보조금 수혜자를 일단 부정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그들이 절대 부정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촘촘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효율적인가? 아니면 보편적 신뢰에 기반한 시스템을 만들고, 그 시스템이 굴러가지 못하게 신뢰를 깨뜨리는 의도적인 오류자를 처벌하여 시스템을 건전하게 유지하면서, 시스템을 통해 구현해야 할 본질적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인가? 물론 여기에서 신뢰란 인간성에 대한 낭만적 믿음이 아니라 문화예술의 가치에 대해 공유된 인식을 근거로 한 신뢰를 말한다. 전자의 시스템 안에서는 행위를 적게 할수록 부정과 오류 없는 행정의 ‘완벽성’을 구현할 수 있고, 후자의 시스템 안에서는 오류자보다 훨씬 더 많은 선량한 행위를 함으로써 시스템의 ‘건전성’과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 문화행정의 목표가 문화사회에 대한 ‘완벽한 통제’가 아닌 ‘원만한 운행’을 지원하는 것으로 설정한다면, ‘정산 증빙과 보고’보다는 ‘활동 성과의 공유’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약속 5. 성장동력이 넘치는 대한민국’ 중 사회적 경제 활성화와 관련해서도 “문화+창작+일자리+주거통합형” 또는 “관광+먹을 거리+지역사회통합형” 사회적 경제 거점을 육성하겠다는 문화 관련 공약이 있다. 문화정책의 테두리를 넘어 공공행정 영역 안에서 문화예술의 가치를 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상상하는 단계까지는 다다랐다. 이제는 그런 프로젝트 안에서 문화예술의 본질적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행정 시스템을 상상해야 할 단계이다.
지난 정권에서 온 국민을 헷갈리게 했던 ‘창조경제’만큼이나 새 정부에서 공무원들을 난감하게 할 ‘사회적 가치’의 ‘조작적 정의’도 아직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통용되는 말의 의미는 공유하는 생각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행정의 전례가 없어서 모른다고 이야기하지 말고, 예전보다 더 옳은 가치라는 합리적 판단을 근거로 새로운 시스템 설계를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공무원들도 관료주의의 쇠창살(iron cage) 밖으로 나와서 예술가와 함께, ‘정상을 재정상화’할 상상을 시작해야 한다. 시인의 가치가 빛을 발하는 문화행정은 어떠해야 할지를 상상해본다.

글 김해보_ 서울문화재단 경영기획본부장, 사회학 박사
그림 정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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