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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소설 <채식주의자>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 기자간담회 현장 “문학은 천천히 오래 번져나가는 것”
<채식주의자>의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지난 5월 맨부커상 수상 이후 처음 한국을 방문해 공식적인 자리를 가졌다. 세계적인 문학상 수상으로 들뜬 한국 언론의 관심과 질문에 그는 수상을 공동의 성과로 돌리며 번역가로서 지닌 소신을 차분히 밝혔다.

번역은 겸손한 작업, 수상은 공동의 성과

지난 6월 15일,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방한해 서울국제도서전 행사장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 기간 중 한국문학번역원 주최로 열린 ‘한국문학 세계화 포럼’(6. 19)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고, 남은 일정 동안 출판 관계자들과 만나 앞으로의 번역 출판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그는 작년에 런던에서 출판사 틸티드 악시스(Tilted Axis Press)를 설립했다. 아시아권 현대문학을 주로 소개할 계획으로 한국문학번역원과도 MOU를 체결해 매년 한 권 이상의 한국 소설을 번역 출판한다. 가깝게는 올해 10월에 황정은 작가의 소설을, 2017년에는 한유주 작가의 작품을 출간할 예정이다.
맨부커상 수상 시점으로부터 약 한 달의 시간이 지났지만 수상 후 첫 한국 방문에 언론과의 공식적인 만남이었기에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데보라 스미스는 한국 언론의 열띤 반응이 여전히 낯선 모습이었고, 수상 소감을 글로 준비해 먼저 발표했다. 번역가로서 느끼는 책임감을 진정성 있게 드러내고 한강 작가 원작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그녀의 소감은 겸손했다. 이번 수상으로 인해 자신의 번역을 인정받은 것은 기쁘지만 이것이 작가와 번역가 외에 편집자, 에이전시 등 여러 주체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공동의 성과’임에 감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한 우회적으로나마 번역계의 현실 문제에 대해 짧게 언급하기도 했다. “정하연 교수께서 <코리아타임스>에 밝히신 것과 같이, 배경이나 자격 요건에 따라 특정 번역가를 제외하거나 우선시하는 관행은 위험하다는 말씀을 강조하고자 한다. 번역가의 문학에 대한 애정, 인내심, 그리고 헌신적인 노력이 번역에 이르게 되는 개인적 과정 또는 작품의 출발보다 더 중요하며, 건설적인 논의를 위해 이와 같은 대안적인 견해도 충분히 필요하다.”

테마토크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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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천천히 확산되는 문화다

데보라 스미스의 소감문 발표 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한국문학과 번역에 우리가 가진 일종의 고정관념에 대해 차근히 생각해볼 만한 응답도 있었다. 노벨문학상에 대한 한국 특유의 관심을 드러내는 질문에 그는 “작가가 좋은 작품을 쓰고 독자가 그 작품을 즐기면 그것만으로 작가에게 충분한 보상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상은 그저 상일 뿐이다.”라고 솔직 명료하게 답했다. 한국문학의 매력은 무엇이며 그 확산에 있어 걸림돌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도 인상적이었다.
“한국문학에도 다양한 작가와 작품이 있고, 독자의 취향이 주관적이고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국가마다 ‘우수한 문학은 이런 것이다’ 라고 판단하는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문학의 매력에 대해 답하기는 어렵다. 해외에서 번역 출간된 한국문학이 많지 않은데 점점 그 수가 늘면서 해외의 독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은 본래 확산 속도가 매우 느린 문화다. 성질이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문학이 확산된다는 것은 곧 독자가 특정 문화를 이해할 기회가 늘어난다는 의미다. 그 속도가 매우 느림에도 데보라 스미스는 번역가로서 자기 나름의 시도를 즐기는 듯 보였다. ‘한국의 문화적인 개념을 해외에 어떻게 전달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번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 소주, 만화, 선생님 같은 표현을 그대로 썼는데, 편집자들은 독자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겠느냐며 소주를 ‘코리안 보드카’로 쓰거나 만화를 ‘코리안 망가’로 쓰는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문화적인 개념에 대해 그것이 타국의 문화에서 파생됐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편집자들을 설득했다. 번역을 계속하면서 즐거운 것은 번역한 작품이 쌓여갈수록 독자들이 그 문화에 대해 느끼는 친밀도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채식주의자>를 번역하고 나서 <소년이 온다>를 번역했는데, <소년이 온다>에서는 형, 언니 등의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썼다. 독자들이 이전에 내가 번역한 작품을 읽어서 그 표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문학 작품을 소개하다보면 ‘스시’ ‘요가’가 무엇인지 영국인들도 알듯이 한국어에 대해서도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문학이 세계적으로 읽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데보라 스미스는 자신이 번역가가 된 이유에 대해 ‘내가 사랑하는 작품을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문학상 수상이나 세간의 인정이 아닌 ‘문학의 즐거움’ 자체임을 그는 수차례 강조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자문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국문학을 세계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문학의 즐거움을 세계인과 공유하기 위해,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더 훌륭한 문학작품의 탄생에 기여하기 위해, 그것은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대할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한 번역가는 이야기한다.문화+서울

글 이아림
사진 김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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