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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3월호

‘바이엘’과 근대 동아시아의 서양음악 수용 그들 각자의 '바이엘'이 있다면
‘바이엘’은 피아노를 배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이름이다. 대개 바이엘-부르크뮐러-체르니의 순서로 피아노를 배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모든 사람이 바이엘로 피아노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유독 일본과 한국에서 피아노 학습의 ‘표준 코스’가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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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바이엘>, 누구도 모르는 ‘바이엘’

음악을 시작하는 학생이 많아지는 새 학기다. 보급형의 저렴한 악기가 늘면서 여러 종류의 악기를 접하기 쉬운 환경이 되었지만, 음악 초보 단계에서 가장 친숙한 악기는 역시 피아노일 것이다. 피아노 입문에서 단연 우세한 이름은 ‘바이엘’이다. 주요 대형 서점에는 아예 100여 종이 넘는 <바이엘>만을 모아놓은 서가에 다채로운 <바이엘>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다.
우리가 <바이엘>이라고 부르는 연습곡은 독일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페르디난트 바이엘(Ferdinand Beyer, 1803~1863)의 대표작으로, ‘피아노 연주의 예비교육’(Vorschuleim Klavierspiel op.101)이라는 106곡의 시리즈다. 반면 바이엘이라는 인물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내용이 없고, 수많은 <바이엘> 교재에도 ‘바이엘’이 누구인지 설명해놓은 사례를 찾기 어렵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발행하는 권위 있는 음악사전 <그로브(Grove)>에 겨우 다섯 문장으로 설명해놓은 바이엘 항목을 찾아볼 수 있는 정도다.
그로브 사전에서는 음악가 바이엘의 활동과 업적을 세 문장으로 요약하고, 마지막 문장에서 그의 연습곡에 관해 간략히 설명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바이엘의 연습곡이 ‘일본과 한국에서’ 특별한 명성을 얻었다고 하는 네 번째 문장에 있다. 일본의 음악학자 야스다 히로시(安田?, 1948~)는 지난 2002년에 바이엘의 흔적을 찾아 독일 현지를 취재하고 연구한 결과를 단행본으로 정리해 출간했는데, 그는 여기에서 ‘바이엘만큼 유명하면서도 무명인 인물도 드물다’고 기록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주목하지 않는 바이엘 연구에 일본인 학자가 나섰다는 것은, 바이엘이 서양음악사보다는 오히려 동아시아 근대사의 맥락에 위치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과 한국에 있는 피아노 학습의 ‘표준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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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불과 10년 남짓 된 시점인 1879년, 일본에서는 서양음악 도입과 정착을 목표로 정부 차원의 연구기관인 음악취조괘(音?取調掛)를 설립했고, 이때 서양의 음악교육 현황을 직접 배우기 위해 미국인 교사 메이슨(L.W.Mason, 1828~1896)을 초빙했다. 보스턴에서 초등음악교육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던 메이슨은 당시 미국과 유럽 각 지역에서 활용되고 있던 주요 음악 교재들을 수집해 일본으로 향했는데, 그때 전해진 교재 중 하나가 1850년경 독일에서 출판된 바이엘의 연습곡집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출간된 많은 <바이엘> 교재는 원곡을 여러방식으로 편곡하거나, 바이엘의 연습곡 일부만을 발췌해 그 외에는 바이엘과 관계없는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혼합해 수록하기도 하고, 아예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처럼 노래책으로 제작한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 야스다 히로시는 ‘바이엘’이라는 이름이 이미 특정한 작곡가가 만든 피아노 입문서라는 개념을 넘어서, ‘즐겁게 공부하다’ ‘효과가 있다’ ‘자습할 수 있다’는 의미의 포괄적 용어로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확장되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기타 바이엘’ ‘오카리나 바이엘’ 같은 교재가 있는가 하면, 일본에서는 아예 ‘종이접기 바이엘’ ‘언어 바이엘’처럼 음악과 무관한 분야에까지 ‘바이엘’이라는 명칭이 사용된다.
비록 이름만 남아 있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일본과 한국에서 <바이엘>은 피아노 학습자라면 거쳐야 할 통과의례로 여기는 인식이 남아 있다. 더 나아가 바이엘을 어느 정도 연습하고 난 뒤 실력이 향상되면, 부르크뮐러(Franz Burgmüller, 1806~1874), 하농(Charles-Louis Hanon, 1819~1900), 체르니(Carl Czerny, 1791~1857)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표준 코스’를 거치게 된다. 이미 1950년대 출간된 일본의 음악출판사 악보에도 수록되어 있다고 하는 ‘표준 코스’를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우리에게도 오랜 기간 피아노 학습의 전형적 과정이 돼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에게 적절한 음악 학습 방식은 무엇일까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을 소재로 인기를 얻었던 일본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2001)에서, 주인공 노다 메구미는 어린시절 피아노 교습소에서 진행하는 엄격한 ‘표준 코스’를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성장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독자적인 방식으로 연습해 음악대학에 진학하고 유럽 무대에서도 환영받게 된다. 바이엘이라는 이름으로 상징된 정해진 틀 안에서 모범 답안을 착실히 따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 동아시아에서의 서양 음악 학습 방향이 결코 유일한 길이 아님을 제시하는 단면이다.
지난날 근대 일본의 음악 교육과정이 우리에게까지 공유될 수 있었던 배경은, 일본이든 한국이든 국가나 민족의 전통과는 별개로 서양음악 학습을 공통의 지향점으로 설정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서구화 자체를 목적으로 삼기에는 어색한 오늘날의 한국에서, 이제는 과거의 관습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우리에게 적절하고 필요한 방식을 탐색하는 계기를 마련하려는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어쩌면 이미 수많은 변용된 바이엘이 공존하는 현실이, 이러한 시도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문화+서울

글 장윤선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사를 전공하고 ‘근대 일본의 서양음악 수용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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