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 더다이즘, 네 번째 내부자들과 기부자들
2016 서울메세나후원의 밤 ‘예술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밀당’ 필레오 중창단과 주철환 대표.
데뷔 25년 만에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가 있습니다. 이병헌 씨죠. 그는 영화 <내부자들>의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너무 과장된 게 아닌가’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지금은 현실이
<내부자들>을 이겨버린 상황”이라며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절망적으로 촛불을 들고 있는 걸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언젠가는 분명히 저것이 희망의 촛불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자기에게 혜택을 준 사람 명단을 나열하느라 생방송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다반사인 시상식에서 이런 묵직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건 25년 연기생활이 선물한 내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여기서 ‘모두가 한마음’이라는 부분에 특별히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국민대통합’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기에 걸맞은 수상 소감이죠. 전인권 씨는 <걱정 말아요 그대>로 국민을 위로했고 맨발의 디바 이은미 씨는 <비밀은 없어>라고 일갈했습니다. 양희은 씨는 광장의 수많은 촛불과 <아침이슬>을 합창했습니다. ‘고난의 유익함’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문화재단이 문화제단이 되지 않으려면 ‘시대와 함께 시민과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대중을 ‘개, 돼지’로 묘사한 영화 <내부자들>의 포스터에는 이런 대사가 씌어 있습니다. “저 진짜 조직을 위해 개처럼 살았습니다.” 불현듯 의문이 듭니다. 가족과 이웃, 조국과 인류를 위해 살지 않고 왜 자기가 속한 조직을 위해 살았을까요? 더구나 사람은 사람처럼 살아야 마땅한데 왜 개처럼 살았을까요? 의리라는 말로 포장된 조직의 논리 앞에서 진리와 도리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최근의 영화포스터를 눈여겨보면 일종의 묵시록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더러 있습니다. 하정우 씨가 주연을 맡은 영화 <터널>의 포스터엔 ‘나 아직 살아 있는데’, 재난영화 <부산행>에는 ‘끝까지 살아남아라’라는 조언이 적혀 있습니다. <베테랑>이란 영화의 포스터에는 ‘내가 죄짓고 살지 말라 그랬지’라는 경고가 뚜렷합니다. 지금 대한민국 상황을 예측한 듯한 무서운(?) 지침도 있습니다. 영화 <곡성>의 포스터가 그렇습니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
대한민국의 부자들도 수난을 겪는 중입니다. 부자들은 크게 두 종류입니다. 내부자들과 기부자들입니다. 전자는 ‘끼리끼리’ 노는 게 특징입니다. 선행보다는 악행을 일삼으며 불나방처럼 놉니다. 이익 앞에서 뭉치고 이익이 사라지면 발뺌합니다. 어둠을 더 어둡게 하는 세력입니다. 반면에 기부자들은 어둠을 내몰고 세상을 밝게 만드는 그룹입니다. 빛을 향해 묵묵히 전진하는 그들은 곱셈보다는 나눗셈을 잘합니다.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해주는 기업에 고마움을 전하는 ‘2016 서울메세나 감사의 밤’ 주제는 ‘예술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밀당’이었습니다. 여기서 ‘밀당’은 밀고 당기는 게 아니라 밀어주고 당겨준다는 의미입니다. 불안한 미래를 겁내며 돈을 통장에 쌓아두기보다는 지금 내 곁에서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전하는게 아름답지 않을까요?
‘겉’의 시대가 가고 ‘곁’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젊은이들과 새로운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사람의 ‘겉’보다는 그 사람의 ‘곁’을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지혜롭고 정의로운 사람들, 열정은 넘치는데 주머니가 빈 청년들을 곁에 많이 둔 사람은 국민을 속일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 거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모두가 한마음’이라는 부분에 특별히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국민대통합’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기에 걸맞은 수상 소감이죠. 전인권 씨는 <걱정 말아요 그대>로 국민을 위로했고 맨발의 디바 이은미 씨는 <비밀은 없어>라고 일갈했습니다. 양희은 씨는 광장의 수많은 촛불과 <아침이슬>을 합창했습니다. ‘고난의 유익함’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문화재단이 문화제단이 되지 않으려면 ‘시대와 함께 시민과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대중을 ‘개, 돼지’로 묘사한 영화 <내부자들>의 포스터에는 이런 대사가 씌어 있습니다. “저 진짜 조직을 위해 개처럼 살았습니다.” 불현듯 의문이 듭니다. 가족과 이웃, 조국과 인류를 위해 살지 않고 왜 자기가 속한 조직을 위해 살았을까요? 더구나 사람은 사람처럼 살아야 마땅한데 왜 개처럼 살았을까요? 의리라는 말로 포장된 조직의 논리 앞에서 진리와 도리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최근의 영화포스터를 눈여겨보면 일종의 묵시록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더러 있습니다. 하정우 씨가 주연을 맡은 영화 <터널>의 포스터엔 ‘나 아직 살아 있는데’, 재난영화 <부산행>에는 ‘끝까지 살아남아라’라는 조언이 적혀 있습니다. <베테랑>이란 영화의 포스터에는 ‘내가 죄짓고 살지 말라 그랬지’라는 경고가 뚜렷합니다. 지금 대한민국 상황을 예측한 듯한 무서운(?) 지침도 있습니다. 영화 <곡성>의 포스터가 그렇습니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
대한민국의 부자들도 수난을 겪는 중입니다. 부자들은 크게 두 종류입니다. 내부자들과 기부자들입니다. 전자는 ‘끼리끼리’ 노는 게 특징입니다. 선행보다는 악행을 일삼으며 불나방처럼 놉니다. 이익 앞에서 뭉치고 이익이 사라지면 발뺌합니다. 어둠을 더 어둡게 하는 세력입니다. 반면에 기부자들은 어둠을 내몰고 세상을 밝게 만드는 그룹입니다. 빛을 향해 묵묵히 전진하는 그들은 곱셈보다는 나눗셈을 잘합니다.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해주는 기업에 고마움을 전하는 ‘2016 서울메세나 감사의 밤’ 주제는 ‘예술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밀당’이었습니다. 여기서 ‘밀당’은 밀고 당기는 게 아니라 밀어주고 당겨준다는 의미입니다. 불안한 미래를 겁내며 돈을 통장에 쌓아두기보다는 지금 내 곁에서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전하는게 아름답지 않을까요?
‘겉’의 시대가 가고 ‘곁’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젊은이들과 새로운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사람의 ‘겉’보다는 그 사람의 ‘곁’을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지혜롭고 정의로운 사람들, 열정은 넘치는데 주머니가 빈 청년들을 곁에 많이 둔 사람은 국민을 속일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 거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