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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2월호

서울의 삶이 헛헛한 이유, ‘사적 외부 공간’의 부재 우리에겐 아직 골목과 마당이 필요해
서울은 과밀한 도시다. 시?공간적 빠듯함에 시달리곤 하는 이 도시에서 큰 차와 넓은 집을 마다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거실이 열 평 넓어지면 그만큼 우리 삶에 여유가 생길까. 헛헛함의 원인은 골목, 마당 등 ‘사적 외부 공간’이 사라진 데 있는지도 모른다.

옛집과 새집이 공존하는 마포구 도화동 풍경. 새집은 테라스나 마당이 없는 형태로 지어지고, 옛집의 마당도 대부분 막아 실내화하는 형편이다. 그나마 ‘사적 외부 공간’이 확보된 곳은 건물의 옥상 정도다.옛집과 새집이 공존하는 마포구 도화동 풍경. 새집은 테라스나 마당이 없는 형태로 지어지고, 옛집의 마당도 대부분 막아 실내화하는 형편이다. 그나마 ‘사적 외부 공간’이 확보된 곳은 건물의 옥상 정도다.

얼마 전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종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는 한 동네에서 이웃해 사는 이들이 골목에 놓인 평상에 모여 수다도 떨고 술도 마시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처럼 우리에게는 집 앞 골목길을 내 거실처럼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주차장으로 변해버렸다. 우리는 단군 이래로 가장 ‘편한’ 삶을 살고 있다. 수도꼭지를 틀면 온수가 콸콸 나온다. 1988년과는 다르다. 먼 거리를 갈 때에 자동차를 이용해 쉽게 간다. 차가 많아진 만큼 주차장이 많아진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은 30년 전보다 허하다.
현대 도시에 사는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사적 외부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사적 외부 공간이란 마당, 발코니, 테라스와 같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곳을 말한다. 현대 도시인의 삶을 살펴보자. 우리는 멋진 도심의 거리를 걸으면서 즐기지만 그런 공간은 항상 공공 공간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늘 노출돼 있고 조용하게 있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은 없다. 사적인 외부 공간이 없다는 것은 나 홀로 자연을 접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자연의 변화를 접하고 여유를 찾던 ‘사적 외부 공간’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마당이 있는 집에 사는 것이 비교적 보편적이었다. 마당은 대표적인 사적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봄이 되면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는 것을 보았다. 1년 365일 매일 다른 날씨를 보고 시시각각 바뀌는 햇빛과 달빛을 느끼면서 살았다. 지금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과거 한옥주택의 마당에 지붕이 씌워져 거실이 된 구성이다. 마당이 있던 자리가 거실이 되고 우리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편하게 생활하지만 대신에 자연의 변화를 보는 즐거움을 잃었다. 마당이 있는 작은 집은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보다도 크게 느껴진다. 우리가 공간을 기억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자연의 변화를 담아 마당의 풍경은 매일 변화하고, 자연과 사람이 일대일로 만나는 사적 외부 공간은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어 집을 더 크게 느끼게 한다.
우리는 이 같은 마당뿐만 아니라 골목길도 잃었다. 예전에는 집에서 집으로 이동할 때 골목길을 통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많은 집은 복도나 엘리베이터로 연결된다. 골목길은 하늘을 보면서 걷는 길이지만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고개를 들면 형광등이 보인다. 같은 감성을 줄 리 만무하다. 필자가 어릴 적에는 학교를 마치면 항상 버스정류장에서 시장을 관통해서 집으로 갔다. 초등학교 시절 일찍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돌을 축구공 삼아 길에서 차면서 걸어갔다. 그러다가 집이 있는 골목에 접어들자 할머니와 일하는 누나가 골목길 대문 앞에 앉아서 건너편집 할머니와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햇살이 잘 들던 그 골목길의 풍경은 어린 시절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과거에 우리는 골목길을 거실처럼 사용했다.
중국에서 베이징 올림픽이 열렸을 때 중국 공안의 큰 골칫거리 중 하나는 중국인들이 잠옷을 입고 골목을 돌아 다니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매너가 없는 중국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풍경은 그들이 골목길을 내 집처럼 편하게 생각한다는 것의 방증이었을 수도 있다. 잠옷 차림으로 만날 수 없는 사이는 그만큼 편하지 않은 사이임을 뜻한다. 중국인들이 베이징 올림픽 이후 잠옷을 입고 골목길을 다니지 않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한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들이 더 이상 동네 사람을 가족같이 편하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자연에서의 사색과 자연스러운 소통에 목마른 도시인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산 지는 1만 년 정도 된다. 현대와 같은 크기의 대도시에서 생활한 시점을 로마시대로 본다면 2000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도시화는 산업혁명 이후 시작됐다. 한국은 산업화가 된 지 50년이 채 되지 않는다. 50년은 그 시간을 온전히 겪은 이들이 두 세대가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우리의 유전적 DNA는 아직 도시화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즉 우리는 본능적으로 아직 자연이 필요하다.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하더라도 학교를 오갈 때 혼자서 논두렁 길을 걸었다. 홀로 자연을 접하는 일이 아주 일상적이거나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발코니마저 실내에 편입된 아파트에 살면서 자연을 개인적으로 접할 기회가 없다.
축구장, 야구장, 혹은 거실처럼 사용되던 다목적 공간 ‘골목’과 ‘마당’이 이제는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현대 도시인에게는 거실 같은 골목길도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사적인 외부 공간인 마당도 없다. 그래서 현대인은 마당 대신 텐트를 들고 캠핑을 가고, 사라진 거실 같은 골목길 대신 더 큰 집을 필요로 하는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더 큰 집과 차와 캠핑도구와 등산복을 마련하기 위해서 엄청 열심히 일한다.문화+서울

글 유현준
건축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부교수, (주)유현준건축사 사무소 소장.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2015), <현대건축의 흐름>(2009) 등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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