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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2월호

도시의 스펙터클과 평범하고 작은 삶이 공존하는 ‘삼성동’ 이곳은 가장 서울 같은 동네
서울의 아름다운, 혹 정취가 있는 곳을 이야기할 때 누구나 대번에 이름을 떠올리는 지역이 있다. 아름다운 자연이 남아 있는 곳. 세련된 문화나 흥미로운 인프라가 가득한 곳, 혹은 흘러간 것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시간이 멈춰 선 곳처럼. 하지만 그런 것 없이도 더욱 서울 같고, 그럼으로써 가장 서울 같은 곳도 있으리라. 예를 들면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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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빌딩 숲 사이에 단출한 기사식당이 숨어 있는 동네

어린 시절부터 예술인을 자처하며 홍대 앞, 대학로, 이태원 등을 전전하던 내겐 강남이라는 곳이 흡사 다른 나라 같았다. 모두 엇 비슷한 옷을 입고 아침이 되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저녁이 되면 몰려 돌아가는 곳. 걷기보단 흡사 강물에 떠밀려가듯 쓸려가야 했던 인도. 사람을 더없이 작게 만드는 거대한 마천루와 사람보다 느린 속도로 기어가는 자동차들까지.
그 이름 높은 강남 중에서도 가장 거대하고 값비싼 건물들이 자리 잡은 곳이 삼성동이다. 삼성동은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도저히 거쳐 갈 것 같지 않은 ‘남의 동네’다. 그래서일까, 이사후 처음 짐을 풀었을 때 창밖으로 보이는 수십 층 높이의 호텔과 무역센터는 어쩐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나는 질 수 없는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니, 감히 캐내지 못한 아름다움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무던히도 걸어 다닌다. 걷다 보니 대로변 인도는 그 어느 곳보다 넓고 정비가 잘되어 있었고, 골목 하나만 들어가면 값싼 카페나 오래된 식당들이 숨어 있다. 바쁜 이들에겐 좀처럼 보이지 않는 반짝거림이 조금씩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시나브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나는 선정릉으로 발을 옮긴다. 어지간한 공원들 못잖은 숲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왕릉들은 도시화의 가혹한 팽창 속에서도 단단하게 제자리를 지켜냈다. 이 고즈넉한 숲과 함께.
도심의 중심에서 젖은 숲길을 걷는다. 동굴 같은 침엽수림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눈앞에 너른 잔디와 잿빛 하늘, 그리고 그사이 치솟은 고층 빌딩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 이야말로 숲이다. 고작 몇 십 년 사이 사람들이 쌓아낸 거대한 콘크리트 숲이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이렇게 적당한 거리에서 펼쳐진 도심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서울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그렇게 너른 잔디밭에 서서 비에 젖은 도심을 한참 바라본다.
나는 그렇게 과거의 숲, 그리고 오늘의 숲과 함께한다.
시간이 흐르고, 잦아드는 비구름 사이 생긴 실안개가 빌딩들을 휘감으며 천천히 땅으로 내려앉는다. 해가 떨어짐과 함께 건물엔 하나둘씩 불이 켜지고, 여느 때와 같이 삼삼오오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자정이 지가면, 보통의 숲이 그렇듯 이곳 역시 어둠과 고요로 가득한 땅으로 돌아간다.

사랑하지 않지만 떨칠 수 없는 동네

글을 쓰는 이 시간, 특히 오늘 같은 주말의 삼성동은 흡사 검은 바다 같다. 번쩍이던 유흥가도 문을 닫은 주말엔, 유화처럼 텁텁한 적막이 아스팔트를 짓누른다. 켜진 불도 하나 없이,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땅처럼 모든 시간이 멈춘다. 해가 뜨고 평일이 되면 수많은 직장인이 물고기 떼처럼 빠른 걸음으로 몰려나오고 들어가길 반복하겠지.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마냥 불야성 같은 이곳에도 깊은 잠을 위한 시간이 있음을.
어떤 유행가도 한두 달이면 이내 사라지는 시대다. 심지어 동네도 그런지, 새로이 조명받고 또 금세 잊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거대한 메갈로폴리스 가운데 먼저 빛을 잃어간 거리들은 아직도 남은 상처가 가득했다. 하지만 삼성동은, 누구나 쉽게 사랑한다 말은 못해도 결국은 오갈 수밖에 없는 곳이다. 즐거움과 새로움보단, 한없는 평범함과 일상으로 채워진 곳이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곳.
누군가 서울을 구경하고 싶다면 다른 곳을 추천하겠다. 누군가 서울에서 살아보고 싶다면 역시 다른 곳을 추천하겠다. 한데 누군가 서울을 알고 싶다면 나는 삼성동을 추천할 것이다. 가장 값비싼 레스토랑과 저렴한 기사식당이 공존하는 곳. 고작 몇천만 원짜리 전셋집과 일박 몇 백만 원대의 호텔이 붙어 있는 곳. 각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수많은 시민이 오늘을 살아가는 곳.
높은 빌딩에 올라 삼성동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꾸역꾸역 생장을 거듭하는 미운 콘크리트의 숲,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지독히 평범한 우리들. 찾아가지 않아도 매일 바라보는 뻔한 풍경과 매일 스쳐 지나가는 그 일상 속, 서울의 아름다움이 흐르더라. 정취가 노래하더라.
그래, 삼성동에서.문화+서울

글 조형호
문화창작집단 바이닐랩 창작 이사. 라틴 퍼커셔니스트이자 소설가이며, 현재는 모바일 게임을 제작하고 있다.
그림 M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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