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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9월호

웹진 [연극in]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록을 남긴다는 것 -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 보면 평론을 시작한 무렵부터 매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해 왔다. 매체 발간을 위한 행정적 지원부터 지면을 기획하고 원고를 편집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매체를 만드는 나의 머릿속에는 늘 그 일이 ‘연극사를 위한 기록이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공연에 대한 평, 관련된 담론까지 아울러야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연극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매체는 동시대 연극계의 무수한 이야기를 수집해 다음 세대 독자에게 전달하는 엄청난 운명(!)을 부여받는다.

웹진 [연극in] 창간 10주년 로고

수집의 기준: 기획의 중요성

웹진 [연극in]은 다양한 성격의 필자가 참여하는 매체다. 그만큼 연극계 현장의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으로 수집하고 전달하는 역할에 중점을 둔다. 웹진이라는 발간 형식을 활용해 독자·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당대 일반 독자·관객의 반응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은 사史적 기록에도, 동시대 창작자에게도 매우 유의미한 도움이 된다. 한편 작가와 평론가 같이 특정 주체들이 주도하는 매체의 경우에는 참여 주체의 시각과 특성이 매체 기획에 상당 부분 반영되기도 한다. 요컨대 매체를 만드는 주체에 따라 무엇을 수집해 어떻게 전달할지 방향성이 달라진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매체 기획에 개입시킨다는 것은 곧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매체가 권력을 갖는다면 바로 이 지점 때문일 것이다.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의 차이에서 매체의 방향성이 드러나겠지만 한편으로는 모두가 비슷한 것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할 필요도 있다. 다양하고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 그것이 매체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면: 거리 두기와 다시 읽기의 필요

개인적으로 매체의 권력과 기록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된 것은 ‘미투 운동’ 이후부터였다. 매체가 많이 다루는 작품과 창작자일수록 주목도가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른 무수한 가해자가 그런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었던 데에는 매체가 일정 부분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미투 운동이 아니었다면 우리 연극사는 여전히 가해자 중심으로 서술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전에 기획된 글을 삭제하거나 수정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나 훗날 이 기록을 읽게 될 이들에게나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이후를 어떻게 기록해 나갈 것인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메타비평 혹은 다시 읽기의 방식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기록이 어쩔 수 없는 매체의 운명이라면 그 기록을 어떻게 남기고 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거리를 두는 것, 꾸준히 다시 돌아보는 것, 거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더하는 것. 그것이 매체가 선택할 수 있는 건강한 방식의 기록일 것이다.

남는 고민: 매체의 생태계

언젠가 매체를 만드는 일에 대해 “매체를 만드는 일은 더 이상 돈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연 관련 매체는 언제나 필요하다. 이 간극을 어떻게든 메워보려는 것, 그것이 이 시대에 공연 관련 매체를 만드는 사람이 마주한 숙명이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매체를 운영할 인력은 늘 부족하고 지원금이 아니면 버티기 힘든 재정 상황도 여 전하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건강하지 않은 생태계가 매체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 출되다 보면 매체를 만드는 일에 점점 관성이 붙고 새로운 시도보다는 익숙한 것을 선택하게 된 다. 매체에 대한 성찰이나 기획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하기는 당연히 어렵다. 기록으로서의 매체를 고민하는 일이 매체의 생태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김태희_연극비평집단 시선 구성원. 부지런해지고 싶은 평론가. 새로운 연극사를 꿈꾸는 연구자. shykth@hanmail.net

※본 원고는 지면 관계상 편집됐습니다. 원문은 웹진 [연극in]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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