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래·김정영 감독의 <미싱타는 여자들> 과거의 빛이 현재의 볕이 되는 시간들
기억은 늘 단편적이다. 이야기보다는 그 시절의 정서가 기승전결 없이 순간의 감각과 정서로 남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대부분 기억은 억울하고 분했던 그 시간을 끈질기게 붙잡아 한 덩어리로 만들어둔다. 그런 기억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사람의 흩어진 기억을 모으고 펼쳐, 그 순서대로 한땀 한땀 소중하게 이어야 한다. 작은 이야기들을 기워 만든 커다란 이야기를 활짝 펼치면 비로소 그 시절이 보인다.
한땀 한땀 기워 만든 이야기
1970년대 동대문 평화시장에는 집안이 가난해서, 또는 여자라는 이유로 공부 대신 재봉틀을 돌린 소녀들이 있었다. 건조하고 거친 그녀들의 삶이지만 저마다 가슴에 품은 꿈 하나는 버릴 수 없어서, 삶을 배울 수 있는 노동교실을 삶의 희망으로 삼았다. 그곳에서 소녀들은 시다라는 이름이 아니라 서로의 진짜 이름을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노동교실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는다.
역사는 사건을 기록하지만, 예술은 늘 그 시간 속, 사람들을 기억한다. 이혁래·김정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은 1970년대 청춘의 한 시절을 부당함과 맞서 싸웠던 여성들의 시간을 현재로 불러온다. 1977년 9월 9일. 역사조차 제대로 기록하지 않은 시간과 그속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숨결과 그 여리고 아팠던 기억을 현재로 불러온다. 그리고 그들의 값진 삶을 기억하고 작지만 소중한 마음을 위로한다.
다큐멘터리는 ‘청계피복노동조합 투쟁사’의 마지막 한 줄로 기록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9·9 투쟁. 이소선 석방과 노동교실 반환을 요구하며 결사투쟁. 민종덕 투신, 신승철·박해창 할복 기도, 전순옥·임미경 투신 기도.’ 이 한 줄에 담긴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기억과 그 삶의 조각들을 풀어 내려놓고 한땀 한땀 손바느질하듯 깁는다.
극악한 시대적 배경에 대한 비판이나 객관적 지표 속에서 희생된 여성이라는 표지 대신, 배움이라는 꿈과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뜨겁게 산 여성들의 표정과 생생한 목소리를 포착한다. 그들이 직접 작성한 일기, 편지, 그리고 그 시절의 사진 위로 생생한 증언을 입혀 뜨겁고 아팠던 여성 노동자의 시간을 화면 위에 수놓는다.
볕이 된 그녀들의 시간
극적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혁래·김정영 감독은 부산 떨지 않는다. 충분히 과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신파적 감수성을 털어내고 오직 그 시간 속 여성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 일에 집중한다. 그래서 <미싱타는 여자들>은 선동이 아닌 공감을 주는 이야기가 된다.
아픈 기억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에는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깊이 박혀 있는 것 같다. 팍팍한 현실에서도 서로의 처지를 보듬어주는, 조금 더 따뜻한 연대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 위로 그들이 부당함에 맞서지 않았다면 변화된 우리의 내일도 없었을 거라는 후배들의 존경과 존중의 시선을 꾹꾹 눌러 담는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노동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모독의 시간을 견뎌온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 그리고 노동의 효율보다 인간이라는 가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한 우리의 과거를 반성하게 만든다. 그렇게 존엄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이야기는 보는 이들에게 멍 같은 죄의식을 남긴다.
다큐멘터리 속 ‘미싱타는 여자들’은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세상이 주저앉힌 자리에서 달아나지 않고, 시절이 부정한 ‘나’를 긍정하려는 힘, 그 가치에 대해서 묵묵하게 이야기한다. 40년의 시간이 지난 후 재회한 젊은 시절의 그녀와 만난 오늘의 당신들은 그래도 참 잘 살았다며 스스로를 다독거린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 빛이 되는 그 벅찬 순간은 우리에게도 볕처럼 따뜻한 위안을 준다.
글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