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지하로 떠나는 모험 무악재역 호랑이
부지런한 서울 사람들이 이동의 편의를 위해 자주 입장하는 지하 철도는 지면 아래를 관통해 서울 전역을 연결했지만, 사람들 머릿속에는 ‘지하철 노선도’로만 분류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지하철 건설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서울 지하’의 아름다움과 쾌적함을 고민한다. 출퇴근하기 바빠 눈길을 주기 쉽지 않던 서울의 지하를 탐험해 보자.
1985년 촬영한 무악재역의 호랑이 타일 벽화.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지하에 보물이 있다
서울에 처음 지하철이 들어선 날은 1974년 8월 15일이다. 1호선이 개통되고 난 후 9년이 지나 2호선이 개통됐고, 86서울아시안게임·88올림픽 개막에 맞춰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노선이 함께 개통됐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성장과 편리함, 역사를 함께 담아낼 수 있는 서울 지하철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도시 공간이자 새로운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지하철 건설 비용의 대부분은 사실상 토목 공사에 투입되고, 실제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눈에 보이는 정거장 마감 공사 비용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2년 반 만에 3·4호선의 전체 토목 공사가 끝나자마자 정거장 마감 공사가 시작될 즈음에는 승강장 바닥·벽·천장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해졌다. 어떻게 하면 더 편하고 쾌적하고 아름다운 정거장을 만들 수 있느냐를 놓고 토론이 시작된 것이다.
3·4호선에 위치한 50여 개 정거장의 디자인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산 문제와 마감 자재도 그렇지만 여러 회사가 정거장을 나눠 시공하는 만큼 어느 정도 통일성 있는 기준이 필요했다. 지하철을 건설하는 과정에는 국내외 여러 디자인 전문가의 고뇌가 스며 있었다. 지하철 아이덴티티, 노선 아이덴티티, 정거장 아이덴티티를 기초로 하는 내장 디자인 기준이 정해지며 바닥·벽면·천장의 시공 방법과 자재 선정, 색상 조화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검토가 함께 진행됐다. 1980년대에는 서울 지하철역만을 위한 타일 자재가 생산되기도 했다.
당시 고안된 이미지들이 현재에도 정거장 어디엔가 위치해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정거장마다 한 가지 이상의 주제가 부여됐고, 이 주제를 표현하는 요소가 공간적으로 녹아 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승강장 벽면, 대합실 계단 옆, 기둥, 대기 공간에서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 시대가 요구하는 기준이 바뀌면서 스크린도어, 광고판, 자동판매기 등에 가려져 일부 역에서는 타일이 만들어내는 형상의 전체를 보는 것이 고난도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어렵게 됐다. 지금은 보기 힘들어진 타일 소재의 모던하면서 세련된 패턴이 서울만의 독특한 지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목적지를 향해 바삐 걸었던 매일의 공간을 조금은 여유롭게 둘러보며 서울의 지하 미감을 느껴보자.
무악재역에 호랑이가 나타났다
사진 속 엽서는 3·4호선의 개통을 기념하며 서울지하철공사가 제작했다. 1985년 서울지하철 3·4호선 개통 직후 안국역·서울역·무악재역 등에 설치된 타일 벽화의 전체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지하철은 세대에 걸쳐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공공 공간이지만 관련 자료가 희귀하다. 이 엽서는 벽화의 초기 모습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이다.
정거장 중 무악재역에 위치한 호랑이 벽화는 보존 상태가 좋은 벽화 중 하나이다.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를 마주할 수 있다. ‘무악재 호랑이’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가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악재 고개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했다. 무악재는 안산과 인왕산 사이에 있는 고개로 현저동과 홍제동을 잇는다. 예전에는 고개를 넘나드는 호랑이 때문에 나무 장수들에게 무악재는 혼자 넘어다니지 못할 만큼 무서운 고개였다고 한다. 지역의 일화를 바탕으로 컴퓨터그래픽의 개념이 생소하던 1980년대에 픽셀 아트 같은 벽화를 고안해 지하에 소소한 볼거리를 남겨놓았다.
글 이소영_인스타그램 @metroofseoul 운영자. 20세기 서울의 지하 공간과 이미지를 탐색한다. | 사진 서울역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