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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8월호

서로의 경계를 유연하게 만드는 내게로 오는 공원 3 포이근린공원
공원이 시작되는 경계. 그 지점을 한번 유심히 살펴본다.
서로 이질적으로 여겨졌던 영역들이 공존하는 방법을 그곳에서 만나게 된다.
경계를 낮추고, 경계심을 늦추고, 사유지와 공원 사이의 담장을 허물어볼 수 있다면 우리의 마음을 가로막고 있던 경계도, 우리 사회의 완고한 단면도 조금은 유연해지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포이근린공원 근처 건물 뒷마당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사진의 아래쪽은 한눈에 봐도 누군가가 상당히 신경 써서 조경을 한 장소임을 알 수 있다. 한쪽에는 바닥용 벽돌을 정성스럽게 깔았고 그 위쪽으로는 여섯 개의 네모난 돌을 징검다리처럼 가지런히 이어놓았다. 그 아래쪽에는 익숙한 디자인의 야외용 의자가 보인다. 심어놓은 식물 하나하나는 그냥 평범한 것들이겠지만 그들이 이루고 있는 조화, 즉 높이와 너비, 질감은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아마도 계절에 따라 서로 다른 꽃들이 그 사이에서 피어날 것이다.
그 너머, 즉 사진 위쪽에는 다소 건조한 디자인이 펼쳐진다. 하지만 차분한 색상의 바닥 마감재, 회색 계열의 수목보호판, 사진 위쪽으로 흘낏 보이는 코르텐 스틸 재질의 화단에 이르기까지 이 역시 절제할 줄 아는 프로의 손길이 미친 결과물인 것 또한 짐작할 수 있다. 이 두 영역의 디자인적 차이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차이일 수도 있음을 읽어낸다면 분명히 매우 밝은 눈의 소유자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추측이 아니라는 점이 이 사진의 묘미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만나는 지점

이곳은 강남구 개포동에 있는 포이근린공원, 그리고 그 인근의 한 건물 뒷마당이다. 사진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하게 보이는 경계석이 두 영역을 가르고 있다. 공공 영역과 사적 영역이 이렇게 편안하게, 그리고 서로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공존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대규모 공원은 물론 소규모의 생활권 공원 또한 그 경계는 거칠고 완고하기 마련이다. 인근 대지와의 경계에는 예외 없이 담장이 둘러서 있고 통행은 생각하기도 어렵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서로 불편해하거나 심지어 두려워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대한민국 사회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한 장의 사진은 우리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니 앞으로 더 일어날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서로의 경계를 유연하게 만들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일종의 작은 실험인 셈이다. 물론 이전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담장 허물기 운동이 있어왔다. 서울시가 2002년 시작한 ‘대학담장개방사업’, 1995년 시작된 대구시의 유서 깊은 ‘담장 허물기 운동’ 등이 그 사례다. 이 대부분은 사유지와 도로 사이의 담장을 허무는 것이었지만 사유지와 공원 사이의 담장을 허무는 사례는 아직 매우 희귀하다. 그런데 그 현상이 이곳 포이근린공원에서 목격되고 있는 것이다.

공원의 경계를 허물자 생긴 공존의 영역

이런 일은 우연히 일어나는 법이 없다. 대구의 ‘담장 허물기 운동’이 대구 서구의 한 시민이 자기 집 담을 먼저 허물면서 시작된 것처럼, 여기도 마찬가지다. 그 주인공은 바로 라이브스케이프라는 조경설계회사다. 공공과 민간 부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잘 알려진 회사이기도 하다. 몇 년간 이 장소로 입주할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2019년에 그 기회가 왔다고 한다. 이 건물의 정면은 워낙 반대편 도로 쪽에 있고 이쪽은 뒷면이었는데, 마침 담장도 없고 해서 그 사이의 작은 땅을 가꾸어 공원 쪽으로도 개방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건물은 앞뒤로 얼굴을 갖게 됐고 공원도 훨씬 밝고 안전해질 수 있었다. 따로 길을 내거나 자동차가 오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경계석 위로 사람이 걸어 다니는 것일 뿐이니 이것을 두고 공적 영역을 침해했다고 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철망이나 시멘트 블록으로 된 우악스러운 담장을 두르는 것에 비해 역설적으로 얼마나 더 공공적인 디자인인가.
대학의 담장을 허물 때도 그랬고 주택의 담장을 허물 때도 항상 그 폐해에 대한 논의는 있어왔다. 논의 자체는 당연한 것이지만 이제는 이런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유연하고 세련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전문가 및 공공의 개입과 관리가 있어야 하며, 민간의 높은 시민의식 또한 필수적이다. 다행히 이런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험은 이미 충분히 축적돼 있다. 그런 점에서 포이근린공원의 이 작은 풍경은 사회 각 분야에서 도입되고 있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도시환경 실험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글 황두진_건축가,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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