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 당신도 아는 이야기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타이타닉>의 커플이 살아남았을 때, 그 후 일담과 같은 이야기다. 다시 말하자면 동화의 해피엔딩,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정말 그들은 행복하게 영원히 살 수 있을까? 그들은 절실하게 사랑했고, 죽음도 신분도 약혼자도 모두 버리고 사랑을 선택했지만, 그 이후 둘에게 다가온 일상은 직면해야 할 현실이다. 우리는 좌절된 꿈과 지루한 현실, 서서히 식어가는 관심마저도 끌어안으며 상대방을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는 불꽃처럼 서로에게 끌리는 찰나의 순간을 넘어, 순식간에 서로에게 싫증나고 인생에 염증을 느끼는 두 사람의 현재로 뛰어든다. 아버지와 똑같은 삶을 저주하던 남자는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걷고, 연기자로서의 삶을 꿈꾸던 여자는 현실에 주저앉았다. 더욱이 그녀에겐 배우로서 성공할 재능이 없다.
카메라는 억지로 예의 바른 체하는 두 사람의 침묵 사이를 부유하다가 영화가 시작된 지 10여 분 만에 둘 사이의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둘의 싸움은 적나라하고 칼날이 서 있으며, 권태로운 삶에 대한 두 사람의 증오를 드러낸다. 영화 속 두 남녀는 맑아 보이지만 수많은 부유물이 바닥에 깔려 있는 중산층 가정의 위선적인 삶을 대변한다. 조금만 흔들어놓으면 금세 다시 부옇게 흐려지고 마는 주인공의 삶은 약간의 자극만 주어져도 끊어질 것처럼 날을 세운 우울증과 그것을 잊기 위해 서로의 감정을 숨기는 사이 축 늘어지고야 마는 권태 사이를 오간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영화는 1950년대 미국 중산층 부부의 꿈과 희망, 결혼생활의 현실과 그 괴리에서 오는 좌절과 고통을 매끄럽게 그려낸다. 희망 없는 삶을 벗어나고자 하는 그들은 탈출구를 꿈꾼다. 감히 자신의 삶에는 희망이 없다고 말할 용기를 갖지 못한 현대인에게, 실패가 두려워 그저 그런 삶을 감내하는 현대인에게 감독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도망치고 싶지 않은가? 여전히 꿈이 있는가? 하지만 그 결과는 희망적이지 않다. 물론 찰나의 도발이 있다. 그들은 꿈꾸고, 도망가고, 자신의 삶을 보다 화려하고 그럴듯한 것으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영화의 제목처럼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평범한 일상을 휘감은 혁명의 길을 걸어보려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무시당한다. 그렇게 남들과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남들보다 나은 삶을 과시하거나, 자신의 삶이 여기서 무너지지 않으리라 확인하고 싶은 두 사람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파리로 떠나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둘은 벼랑 끝에 선 것처럼 위태롭게 서서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팽팽한 신경줄로 줄다리기를 하고야 만다.
영화는 숨통을 죄는 듯한 침묵의 순간을 포착해낸다. 끔찍할 만큼 잔인한 방식으로 침묵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상처를 준다. 샘 멘데스 감독의 질문은 이 침묵 사이에 있다. 뚜렷한 가해자는 없지만, 늘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로 침묵이 말을 건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그 꿈을 포기했는가? 아니면 꿈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가? 결혼과 현실, 꿈과 현실은 양립되는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가?
이 모든 질문들은 관객 개개인의 삶을 반추하게 만들고, 흩어진 질문들은 차곡차곡 마음이 되어 쌓인다. 보통 이런 질문들은 켜켜이 쌓여 상처받은 우리들을 위로하지만,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전하는 이야기는 위안이 아닌 삶의 각성이다. 그렇게 권태는 마음에게 길을 묻는다. 그리고 답은 늘 침묵 사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