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회를 맞은 서울퀴어퍼레이드는 6월 1일 서울광장에서 개최됐다.
20회를 기념하여 연속강연회와 전야제인 ‘서울핑크닷’도 열렸다. 서울광장 안으로 들어가자 색색의 옷을 입고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서울광장에는 퀴어와 연관된 여러 단체의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고, 아침 11시부터 부스 행사가 시작되었다. 각 단체가 준비한 프로그램을 즐기고, 굿즈를 구매하는 방법으로 단체를 후원하기도 했다. 무대에서는 퀴어연극제 드랙공연팀 ‘바게트’를 비롯한 여러 공연팀이 환영무대를 펼치며 서울퀴어퍼레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오후 4시부터 6시가 조금 넘은 시각까지 진행되었다.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서울광장에서 소공로 → 한국은행 앞 사거리 → 남대문로 → 을지로입구사거리 → 종각역사거리 → 세종대로사거리 → 광화문삼거리 → 세종대로사거리 → 종각역사거리 → 을지로입구사거리 → 시청삼거리를 지나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약 4.5km의 거리였다. 모터바이크로 참여한 레인보우 라이더스가 광장 밖으로 나가는 것을 시작으로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뒤이어 퀴어 단체들이 탑승한 11대의 트럭이 뒤를 따랐고, 광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트럭을 따라 이동했다.
트럭과 관객이 만드는 11개의 이동형 극장
트럭과 관객이 만드는 11개의 이동형 극장 11대의 퍼레이드 차량인 트럭이 있었고, 트럭 위에는 11개 단체의 퍼포머가 타고 있었다. 각 단체마다 의상을 갖춰 입고, 분장을 하고, 독특한 콘셉트를 보여줬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며, 열한 가지 색깔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조금 천천히 걸어도 뒤처진다기보다는 여러 무대를 즐길 기회를 얻었다. 그 힘으로 행진을 지속할 수 있었다. 퍼레이드 차량을 ‘무대’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다른 트럭으로 이동할 때마다 다른 퍼포먼스와 관객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퍼레이드 참여자들이 지치지 않도록 무대 위에 서는 신나는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며 행진을 독려했다. 관객선택형 공연처럼 체력이나 기분에 따라 어떤 무대에 참여할지 고를 수 있었다. 흡입력 있는 무대의 경우, 스타를 따라가는 팬처럼 참여자들이 트럭무대를 가까이서 보고자 신나게 달리며 행진했다. 이 중 11번째 트럭은 퀴어연극제가 준비했다. ‘메리 퀴어 크리스마스’라는 콘셉트로, 썸머 캐롤이 흘러나왔다. 반갑게도 지난해 <삼일로창고극장 봉헌예배> 공연에서 봤던 ‘썸머’ 배우가 춤을 추고 있었다! 트럭은 퍼레이드를 안내하는 길잡이였을 뿐 아니라, 무대와 길거리에 극장을 만들어냈다. 4.5km를 걷는 동안 계속 무대를 골라가며, 가끔씩 뛰기도 하고, 신나서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지치지 않고 걸어갈 수 있었다.
축제의 장, 논의의 장이 된 거리극
혹시 모를 사고 대비와 안전을 위해서 수많은 경찰과 스태프들이 인간 안전띠를 만들어주었다. 그럼에도 걷다가 힘들면 중간에 인도로 이탈할 수도 있었고, 길거리에서 구경하다가 합류할 수도 있었다. 행렬이 지나갈 때면,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도 밖으로 나와서 퍼레이드를 구경했다. 옥상마다, 창문 앞에서, 인도에서, 사람들이 제각기의 표정으로 퍼레이드를 들여다봤다. 퍼레이드 참여자들은 단지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퀴어’를 부정하는 단체들은 행렬 안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슬로건을 들고 있었다. 유니폼을 갖춰 입은 단체도 있었고, 서로 사진 촬영을 하는 공격(?)도 선보였다. 퀴어에 반대하는 무리가 구호를 외치면, 행렬 안에서는 환호성으로 대응했다. 퍼레이드를 구경하는 퀴어 반대자들은 행렬 안에서 볼 수 있는 행렬 밖 무대를 만들어주었다. 퍼레이드를 연결하는 트럭이 있고, 트럭을 따라가는 참여자가 있고, 그들을 위해 공연하는 반대자가 있고, 그 무리들을 바라보는 관객이 있다. 모두가 거리에 나와서 퀴어에 관련한 의견을 냈고, 들었고, 생각하며 축제가 됐다.
잠시 행렬에서 빠져나오니 퍼레이드를 신기해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기는 말, 축제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 달라진 세상을 체감하는 말, 동성애에 대한 의견, ‘퀴어’라는 게 무엇인지 추측하는 말 등등의 의견이 들렸다. 이런 말들이 퍼레이드 주변부에서 오가는 것을 보니,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걸음이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퀴어’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환기한다고 느껴졌다. 이처럼 ‘거리의 연극’이 할 수 있는 것은 극장을 찾지 않는 관객에게도 생각할 여지를 준다는 점, 어디든 논의의 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돌아와 축하무대를 즐겼다. 음향디자이너 목소의 랩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동료를 응원하기 위해 무대 앞 광장에 슬로건을 들고 신나게 공연을 즐기는 연극창작자 무리가 보였다. 무대를 만들던 사람들도 모두 함께 즐기는 날이었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축제는 끝났지만, 날이 어둡도록 서울광장은 알록달록했다.
- 글·사진 김연재_연출가.
요지컴퍼니 소속. 연극과 전시를 하며 작가, 연출가, 드라마투르그, 월간 <한국연극>의 객원기자로 활동한다. candyloc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