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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2월호

서울문화재단의 역할과 위상 서울의 예술부시장
조금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서울시의 문화예술 사업을 총괄 집행하는 산하기관인 서울문화재단, 그곳의 대표는 서울시에서 어느 정도 위상일까? 과장? 국장? 본부장? 아니면 혹시 주무관? 서울시의 문화행정이 집행되는 모습을 보면 서울문화재단이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보다 이미 그려진 밑그림에 열심히 채색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재열의 썰 관련 이미지1, 2, 3 서울거리예술축제 2017. 사진 순서대로 <불꽃을 따라>, <링더벨>, <경상도 비눗방울>.

서울문화재단의 딜레마

서울문화재단은 세 가지 큰 딜레마가 있다. 하나는 태생적 한계다. 서울문화재단은 이명박 서울시장 재임 당시 설립되었는데 당시 가장 중점을 둔 사업은 ‘하이서울페스티벌’이었다. ‘하이서울페스티벌’은 한류패션쇼라는 이름으로 한류스타들을 들러리 세우고 이명박 당시 시장이 곤룡포를 입고 무대 중앙에 등장하는 ‘하이 이명박 페스티벌’이었다. 서울문화재단은 이런 행사를 잘 수행할 수 있는 기획단의 성격으로 출발했다.
두 번째 딜레마는 첫 번째 딜레마와 연결되어 있다. 기획단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서울문화재단은 조사·연구 기능이 다른 지방자치단체 문화재단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이다. 문화재단의 여러 기능 중 중후장대한 문화예술 정책을 세우기 위한 기본적인 조사·연구는 필수적이다. 최근 이 부분을 보완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경기문화재단 등 다른 문화재단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취약해 보인다.
마지막 딜레마는 직접 운영하는 대형 공연장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지자체 소속 문화재단은 대형 공연장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이곳을 중심으로 규모가 큰 문화예술 행사를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시의 공공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은 법인이 따로 있다. 운영 주체가 다르기 때문인지 서울문화재단 행사 중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하는 행사는 드물다.
물론 서울문화재단은 이 세 가지 딜레마를 효과적으로 극복했다. 서울문화재단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예술의 장소성’을 가장 잘 살리고 있는 문화재단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인 곳이 없기 때문에 문화재단 중 가장 노마드적이다. 특히 ‘장소 특정 예술’에 강하다. 그곳이 거리든 공원이든 빌딩숲이든 가리지 않고 판을 깔 줄 안다. 의지할 곳이 없었기에 개척해나갔다.
그런데 최근 서울문화재단의 네 번째 딜레마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포구의 문화비축기지에서, 중구의 서울로7017에서, 도봉구의 플랫폼창동61에서, 은평구의 서울혁신파크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는데 서울문화재단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 음악섬으로 변신할 한강 노들섬이나 ‘기억의 공간’으로 재탄생할 남산 예장자락에도 서울문화재단의 개입이 보이지 않는다.
서울문화재단이 이런 사업과 동떨어져 있는 모습은 마치 최정예 특수부대가 전투에 투입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낯설다. 이런 시설이 개장할 때 마지막 홍보마케팅 부분에서라도 서울문화재단이 함께했다면 훨씬 효과적으로 전파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각각의 사업들이 공유하는 기조가 없는 것은 서울시가 ‘총괄 건축가’를 두어 도시 계획에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모습과도 대비되었다.

문화예술도시 서울을 위한 제안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점은 각각의 사업이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과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이런 문화예술 행정의 기조는 존중할 만하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메가시티가 공유하는 문화예술관 없이 개별 사업이 진행되면 너무 중구난방이 될 수 있다. 그것 또한 서울의 한 모습일 수 있지만 아마추어리즘과 프로페셔널리즘이 만나는 절묘한 지점을 찾는 노력이 아쉽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서울로7017을 개장할 때 대형 설치 미술작품인 <슈즈트리>가 논쟁이 되었다. ‘이런 흉물스러운 작품이 예술이냐’라는 질 낮은 논쟁이 제기된 것은 개장에 맞춰 이벤트처럼 작품을 설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작품에 대해 시민들이 불쾌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반응했던 것은 이를 배치할 때 문화예술적인 고려를 할 능력이 안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명품 브랜드라고 하는 유명 브랜드의 디자인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화려함을 감싸는 단순한 패턴으로 사치를 경계하고 단순함을 극복하는 포인트로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문화예술 상상력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서울문화재단이 맡아야 할 역할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개입하지 않되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공유할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 말이다. 서 디자인재단 역시 충분히 한몫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데 발휘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다시 질문을 던진다. 이번엔 실존이 아니라 당위다. 서울문화재단 대표의 위상은 어느 정도여야 할까? ‘예술부시장’은 어떨까?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자리인지 모를 ‘정무부시장’보다 ‘예술부시장’을 한 번쯤 임명해보면 어떨까? 그래서 서울이 세계인이 사랑할 수 있는 문화예술도시가 될 수 있도록 서울문화재단이 역량을 발휘해볼 기회를 주면 어떨까?

글 고재열_ 시사IN 편집기획팀장
사진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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