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헤어스타일 변천사
머리카락에 화학약품을 바르고 열로 말려 구불구불하게 만드는 파마를 미용실에서 할 수 있게 된 건 1933년부터입니다. 초기에는 로트에 머리를 말고, 약을 바른 뒤 약을 말리기 위해 그 위에 숯을 담은 불그릇을 올려놓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파마’라고 불렀죠. <사진 1>은 1950년대 미용학원에서 원생들이 파마 연습을 하는 장면입니다. 요즘은
자연스러운 파마가 유행이지만 당시에는 ‘아줌마
파마’로 불리는 꼬불꼬불한 파마 한 가지밖에 없었나 봅니다. 서로 실습 대상이 된 듯 원생들 모두 신식 파마를 하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또 벽면에 붙은 ‘얼굴형에
맞춘 헤어스타일’이라는 그림도 이채롭고요.
파마는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에도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사진 2>는 1950년대 서울의 한 미용실 풍경입니다. 1kw짜리 전열기구를 머리에 얹고 파마를 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파마를 하는 동안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잡지를 보는 것은 지금과 다르지 않네요.
당시 유행하던 ‘헵번스타일’은 앞머리를 가볍게 밑으로 내리고, 옆머리는 뒤로 바짝 붙여 넘기며 뒷머리는 목덜미 길이로 짧게 자르는 것입니다. 헵번스타일 이전에는 짧은 머리에 웨이브를 넣는 ‘푸들스타일’이 유행했고요. 1950년대 한 신문에 미용 전문가가 기고한 글을 보니 1954년 미국에서 유행해 한국으로 넘어온 ‘딱테일’이라는 헤어스타일도 있었더군요. 이 헤어스타일은 헵번스타일보다 여성스러운게 특징이라고 합니다. 짧은 머리를 차분하게 정리해 한복에도 잘 어울렸다는군요. 신문에는 “옆머리가 살갗에서부터 약간 위로 치키는
듯하여 뒤통수로 넘어가서 뒤통수 중앙에 오리 꼬리 모양으로 아물려지는 것”이라고 설명돼 있습니다. 딱테일 변형으로 원앙새 모양의
‘다링딱’과 백조 모양의 ‘스완’도 나왔다고 합니다.
머리가 긴 여성은 망아지 꼬리 모양의 ‘포니테일’을 많이 했습니다.
푸른 초원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망아지 같은 느낌으로, 머리카락을
뒤통수로 빗어 넘겨서 한 묶음으로 떨군 것입니다. “20 고개를 넘기전에 꼭 해봐야 하는 스타일이며 20이 약간 넘었어도 용모와 몸매에 자신 있으면 상관없다”는 설명이 나와 있는 걸 보니 당시 젊은이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나 봅니다.
전후 혼란기가 지난 후에는 여성적인 긴 머리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뿌우환’이라는 헤어스타일도 나왔습니다. 머리 전체가 부드럽게 부풀어 있는 이 헤어스타일은 머리를 불룩하게 만들어 양감을 강조한
‘잉크로와이야블’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한 미용기술
여성들이 헤어스타일에 관심을 가지면서 미용학원도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사진 3>은 1950년대 초 한 미용학원 풍경입니다. 6·25 전쟁 후 남성의 부재를 메우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원생들은 모두 ‘빨리 배워 개업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진지하게 실습에 임했습니다. 하지만 미용일이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58년 한 신문에 “미망인들 또는 남편을 도와 부업을 원하는 여성들이 열심히 미용기술을 배우고 있다. 미용이라고 하면 무언지 호화롭고 안일한 것을 연상케 하나 고달픈 일도 많다. 인내심을 가지고 견디어나가며 남의 십인십색(十人十色) 취미와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나 봅니다.
- 사진 김천길_ 전 AP통신 기자. 1950년부터 38년 동안 서울지국 사진기자로 일하며 격동기 한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 글 김구철_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대중문화팀장으로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