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매체, 사진과 걷기
내 생의 8할은 온통 사진이었다. 사진학을 전공한 후 사진은 내게 일과 공부와 밥과 휴식을 제공했다. 사진 전시를 기획하면서부터 사진가들이 친구와 선생, 후배와 선배로 등장했다. 사진의 근원이 궁금해서 작가가 촬영한 곳을 쫓으며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는 일은 큰 기쁨으로 자리한다. 사진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인사동과 삼청동, 옥인동과 효자동을 걷는 일은 내 발에 꼭 맞춤인 노선이 되었다. 삶의 이력이 사진이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이력(履歷)의 한자어 ‘이’(履)에는 ‘밟다, 신다, 행하다’라는 뜻이 있다. ‘신발의 역사’를 기술한 것이 곧 이력서인 샘인데, 사진과 함께 걷고, 사진으로 행해온 내 사진 이력도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물리적인 눈의 초점거리는 멀어졌지만, 풍경과 사물을 바라보는 눈은 밝아진 듯하다. 사진이 내게 준 큰 선물이다. 풍경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라고 많이 걷는 일을 즐기게 하였고, 풍경의 그늘과 밝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촉수를 심어주었다. 풍경의 행간을 읽으려는 욕망도 강해졌다. 사진 이미지로 넘치는 시대에, 보이지 않는 ‘이-미지(未知)’들을 가시화하는 것은 작은 윤리가 되었다.
사진하는 사람의 육체가 행위의 매체가 된, 즉 ‘사진과 걷기’가 삶의 매체(media)인 내게 길은 매 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길 위에서의 시각도 단일한 하나의 관점이 아니라 길을 따라 계속 움직인다. 내가 길을 보는 관점은 길을 따라 다만 움직이는 과정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걷기. 그렇기에 구체적 경험 및 일상성은 사진의 감각을 형성하는 주요한 요소이고, 우발적이고 우연적이고 불확실한 사진 작품의 처소처럼, 내 의도로부터 자유롭게 전개되는 산책길은 내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어떤 가능성을 안겨준다.
한강변에 살 때는 한강에서 서울숲으로 이어지는 길이 주 산책로였는데, 비밀로 가득한 강물을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일이 특히 좋았다. 아득히 흘러가버린 시간들과 만나고, 기념사진처럼 각인되어 층층이 쌓인 기억과도 마주한다. 돌연 이상하고 연관성이 없는 이미지들이 보존되어 있었던 망각들처럼, 흔들리고 나부끼며 맥락 없이 출현하는 경험도 하게 된다. 강가를 걸으며 육감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의 처소를 들여다보는 일은 ‘낯선 나’를 계속 발견하는 일이기도 했다. 고정되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다만 흐를 뿐인 강물과 함께 나도 서른에서 마흔의 중반으로 흘러왔다.
새로 이사 온 동네의 낯선 친밀감
그 사이 생활의 반경도 넓어졌다. 내가 살고 일하는 장소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점차 서울의 서쪽과 남쪽 경계 지역으로 나아가더니, 서북쪽과 북북쪽까지 점차 그 영역이 확대되었다. 분주함은 더해가고, 강가를 산책하는 횟수도 적어질 즈음, 장소를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일주일에 나흘은 200여 명 앞에서 사진학을 강의하는 내게 녹색 방이 절실해진 것이다. 침묵 속에서 홀로 고요히 머무는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내 말들의 정처가 가여워질 것이기에. 삶의 스산함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깃들 때, 그래서 자신의 주변을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러한 시간이 자주 출몰하게 되면 대개의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주위를 배회하며 풍경의 세목을 들여다본다. 어두운 방과 광장, 닫힌 세계와 열린 세계, 음습함과 밝음, 달빛과 햇빛, 작은 풀과 키 큰 나무, 그림자와 검은 강물 등. 그 즈음에 발견한 집, 높은 언덕 위 빨간 벽돌집은 인왕산과 북악산, 북한산을 품고 있었다. 낡고 오래되었지만 햇빛과 햇살과 햇볕이 종일 친밀하게 드나든다. 여명의 시간에는 숲의 청량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강가에서 산기슭으로 이사한 지 20여 일이 되어간다. 산기슭의 산책은 경사진 언덕들을 오르내리는 것이기에 강가의 부드러움이나 여유로움과는 호흡과 걸음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을 살피다가, 지금은 꽤 높은 곳까지 오르내리는 일이 몸에 익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산이 나를 데려가는 곳은 마을의 공간과 사물에 몰두해야 하는 지점, 풍경, 소리, 움직임, 사람들, 바람, 감촉 등의 특수한 실체로, 그것들은 아직 현상되지 않은 오래된 필름을 태운 빛줄기처럼 희미하게 맺혀 있기도 하지만, 깨진 유리거울처럼 날카롭게 풍경을 내뿜기도 한다. 내 집이 있는 마을인데, ‘집 같지 않은’(Unheimlich) 낯선 친밀감도 익숙해간다. 내가 읽어야 할 이 마을의 숨은 텍스트들, 쓰여지지 않은 행간을 더듬으며 기꺼이 헤매는 시간도 누리게 된다.
도시를 느리고 길게 산책하며 기억의 창고를 짓는 수집가의 역할에 자신의 위치를 상정했던 발터 벤야민은 <베를린의 유년시절>에서 “한 도시를 알기 위해서는 마치 숲에서 길을 잃듯이 헤매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헤매는 사람에게 거리의 이름들이 마치 잔가지들이 뚝 부러지는 소리처럼 들려오고, 움푹 팬 산의 분지처럼 시내의 골목들이 하루의 시간 변화를 분명히 알려줄 정도가 되어야 도시를 헤맨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한 “거리는 역사의 묘지이며, 걷기는 그 역사를 읽는 방법이고 산책은 나의 역사와 이 도시의 역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곤 한다”고 했다. 현대의 벤야민이라면 서울을 어떻게 표상했을까. 삶-사진-산책이 함께 배회 중인 내게 이 동네 역시 계속 나를 헤매게 할 것 같다. 사진을 찍는 일이 각자의 바람에 이르는 역동적인 운동이듯, 머무르지 않는 강물처럼 숲은 더욱 산만하게 배회할 것을 주문한다.
- 글 최연하_ 도래할 징표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되도록 많은 시간을 미술현장에서 비평과 전시기획, 강의에 할애하고 있다.
- 그림 박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