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난새의 삶은 한국 클래식계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의 페르소나인 <해설이 있는 음악회>는 지치지 않는 도전과 음악을 통해 세상과 호흡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오롯이 드러난 결과물이다. 이것은 금난새가 “음악을 위해 청중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청중이 있기에 음악이 존재한다”라는 믿음으로 기획한 것으로, 클래식의 역사와 곡이 탄생한 배경 등을 설명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 특히 6년간 진행한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에선 매번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 객석이 관객으로 가득 찼다. 지금도 그의 공연에서 9할은 이런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내 삶은 도전의 연속
혹자는 그의 선택과 결정을 돈키호테적인 행보에 비유한다. 그의 이런 행보에 방점을 찍은 사건은 “왜 스스로 운영되는 오케스트라는 없을까”란 고민을 하며 “안주하는 예술가는 성장할 수 없다”는 믿음으로 ‘뉴월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창단 당시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일이다. 이 단체는 1998년 창단된 ‘민간 벤처 오케스트라’로 정부와 지자체 지원 없이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오케스트라의 뛰어난 실력, 그리고 음악이 사회와 호흡할 때 더욱 가치 있다는 그의 믿음에 많은 기업이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그는 매년 <제주 뮤직아일 페스티벌>과 <맨해튼 체임버 뮤직 페스티벌>을 개최해서 예술과 기업이 함께하는 상승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한 음악
포스코센터 로비에서 공연된 <포스코 재야음악회>,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클래식 공연을 접할 기회가 적은 울릉도(금난새가 공연하기 전까지 울릉도에서 클래식 공연이 열린 적이 없다한다)에서 개최된 <울릉도 음악회>, 서울 명동 거리에서 진행된 <명동 야외 콘서트> 등. 이렇게 장소와 관행을 과감히 파괴한 공연은, 민간 벤처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온 그가, 예술이 생존하는 시스템의 한계를 직시하고 대안을 찾는 모습을 비춘 거울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안의 저변에는 음악을 매개로 사회와 호흡하며, 사회가 성장하는 데 음악이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타고난 기질과 젊은 시절 경험이 음악가로서 삶의 이정표가 돼 그의 행보를 결정지었다.
“독일 유학 시절 가난한 유학생이었지만 가난을 피부로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독일 사회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베풀고 누구나 당당하게 살 수 있게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사회였습니다. 젊은 시절 독일에서 보낸 6년의 시간은 제가 예술가로 살아가는 동력이자 창조의 근원이 됐습니다. 저는 음악가니 음악으로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전문 소양을 갖춘 1%의 청중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99%의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는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그들과 함께하는 음악가로 오래도록 기억되고 싶습니다.”
‘농어촌희망오케스트라’와 ‘한국대학생연합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아 음악이 사회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을 실행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마사회에서 후원하는 농어촌희망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은 것은 이 프로그램이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클래식 교육을 접하기 힘든 청소년에게 동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며 그들의 건강한 성장과 지역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이 음악을 통해 궁극적으로 삶에 대처하는 태도를 배울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이 활동이 제가 해오던 모든 도전을 아우를 만큼 중요한 프로젝트였다고 생각 합니다.”
교육자로서의 면모도 보여줬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는 모교인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으로 지내며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학부모들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교장으로 받은 봉급은 학교에 기부하겠다는 다소 파격적인 말을 했는데, 독일 유학 시절 전액 무료로 수업을 받으며 지도교수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경험이 그가 생각하는 교육과 교육자 모습의 이데아가 됐기 때문이다.
일흔 넘은 나이에도 계속되는 질주
9월 13일에 진행될 <제7회 서울생활예술오케스트라축제> 폐막 공연의 지휘자로도 나설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됨에 따라 서울생활예술오케스트라축제의 부대 행사들이 취소돼 폐막 공연을 지휘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폐막 공연은 전문 오케스트라(뉴월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마스터클래스(교육)에 참가해 실력을 향상시킨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뉴월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협연하는 공연으로, 총 3곡(비제 <Carmen Suite(카르멘모음곡)> No.1, No.2 중, 임긍수 <강 건너 봄이 오듯>, 비제 <L’Arlsienne No.2: 4th Mv, Farandole(아를의 여인 제2모음곡 중 파랑돌)>)이 연주될 예정이었다. 금난새의 친근한 해설이 더해져 감동과 재미가 배가됐을 폐막 공연이 취소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올해 11월에는 ‘금난새 뮤직센터’가 완공된다. 부산시와 고려제강이 문화재사업의 일환으로 탈바꿈시킨 복합문화공간인 F1963의 유휴 부지에 지어지는 4층짜리 건물로, 건물의 일부가 금난새 뮤직센터로 활용된다. 20여 년 전 포스코센터 로비에서 그의 공연을 우연히 본 고려제강 홍영철 회장과는 ‘클래식을 통한 청소년 교육에 관심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런 그가 조력자로 나섰기에 금난새 뮤직센터 건립이 실현된 것이다. 금난새는 이곳을 청소년 오케스트라 아카데미가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다. 또한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는 것이니 다른 지휘자와도 함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도 생각하고 있다.
지휘자로, 경영자로, 교육자로 다양한 도전에 성공해 온 그는 여전히 이렇게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좋은 음악이 좋은 사회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저의 꿈 전부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믿음을 실천에 옮기며 살아갈 것입니다.”
- 글 전주호_서울문화재단 홍보IT팀
사진 공간느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