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들이다. 지난 삶을 송두리째 기억할 수 없는 인간에게 자신이야말로 가장 미스터리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오늘의 내가 어떤 연유로 이러저러한 어른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나조차 나를 온전히 기억해낼 수가 없다니! <나의 투쟁>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의 두 작가는 자신의 지난 삶을 어떻게든 남김없이 기억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두 책의 주인공은 작가 자신이다. 우리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서 타인의 미스터리한 삶 속으로 기꺼이 걸어가는 일, 흔치 않은 초대임에 틀림없다.
시간에 뜯겨나간 삶의 의미를 찾아서
<나의 투쟁>,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한길사
“심장의 삶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힘이 다할 때까지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다 멈추어버리면 되니까.” 첫 문장에 따르면 우리는 대개 심장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심장은 곧 시간이다. 심장 박동은 시계바늘이 움직이는 소리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심장과 시간을 일시 정지시킬 수 없다. 느긋하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세 번째 소설 <나의 투쟁>은 총 6권 3,622쪽 분량의 방대한 소설이다. 그중 <나의 투쟁 1>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굳이 완역되길 기다렸다가 읽을 필요는 없다. 이 책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아니다. 짐작건대 작가가 자신의 기억을 ‘떠오르는 순서’대로 쓴 소설일 확률이 높다. 심지어 주인공 이름도 칼 오베 자신이다.
칼 오베는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고향을 찾는다. 그에게 아버지는 그다지 유쾌한 존재가 아니었다. 아버지를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조차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부음을 듣고 그가 맨 처음 떠올린 것은 아버지가 서른두 살이던 해, 마당에서 잔디를 깎던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당당했고 자신만만했다.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칼 오베가 마흔 살이 되어서야 뒤늦게 떠올린 자신만만한 아버지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죽기 몇 년 전까지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에 불과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작가는 깨달았다. 시간이 삶의 의미를 하나하나씩 뜯어간다는 사실을. <나의 투쟁>은 그 뜯겨져 나간 삶의 의미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런 기대를 걸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 역시 알게 모르게 뜯겨져 나간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다고!
투쟁, 일상적인 행복을 홀대하는 자신과 싸우는 일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오사 게렌발 지음, 강희진 옮김, 우리나비
스웨덴의 그래픽노블 작가 오사 게렌발은 대략 15년 동안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반복해서 그려왔다. 작가에게 기억은 어른이 될수록 점점 어린 시절에 가까이 다가가는 미지의 것이었다. 그것은 내내 어두워서 작가 자신조차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는 세계였다. 시작은 이렇다. 그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 육아에 시달리고 있다. 그녀의 지인들은 육아에 지칠 때마다 부모의 도움을 받는다고 충고했다. 그녀가 살면서 들은 말 중 가장 놀라운 말이었다.
그녀의 부모는 단 한 번도 다정다감하게 그녀를 대해준 적이 없었다. 상담가는 그녀가 심각한 방치 속에 자라왔음을 지적하고 치료를 권했다. 이전까지 그녀는 부모의 무관심과 외면이 오로지 자신의 잘못인 줄로만 알았다. 여태껏 자신을 나쁘고 그릇된 사람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늘 잘못을 빌었지만 부모는 언제나 냉담했다. 애당초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오사 게렌발은 뒤늦게 어린 자신을 세게 끌어안았다.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는 오사 게렌발의 9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위로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작가 후기에 이런 말이 있다. “작품 활동은 투쟁이며 나의 책들은 곧 투쟁에 관한 것”들이라고, 삶의 의미는 삶과 투쟁하는 데 있으며 그 투쟁은 또한 삶을 아름답게 한다고.
칼 오베 역시 <나의 투쟁>에서 내내 삶은 투쟁이라는 말을 거듭하고 있다. 거창한 의미에서의 투쟁이 아니다. 칼 오베에게도 육아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아이의 기저귀를 가는 일이 그렇다. 그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자부심을 주는 일까지는 아니었다. 칼 오베는 아이를 키우는 일 앞에서 번번이 절망하는 자신을 억지로라도 일으켜 세워야 했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복을 홀대하는 자신과 싸우는 일, 그것이 삶의 투쟁이었다고 칼 오베는 고백한다. 그 모든 투쟁을 기록하고 복원하는 일, 우리가 우리의 일상을 홀대하지 않는 일,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단순해지지않기 위해, 투쟁!
- 글 황현진
- 제16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저서로는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 <달의 의지>가 있다.
- 사진 제공 한길사, 우리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