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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남산예술센터 ‘남산여담-장정일의 연극읽기’ 무대와 객석 사이, 그윽한 시선
남산예술센터는 올해 공연과 관련된 다양한 부대 프로그램들을 선보인다. 시즌 첫 번째 공연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개막 당일부터 전석 매진되었고, 연극계와 관객들의 요청으로 한 회차 특별 공연이 추가됐다. 이 작품 관련 동명의 희곡집이 출간된 데 이어, 공연 관련 대담 프로그램인 ‘장정일의 연극읽기’를 통해 관객과 직접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소설가이자 서평가, 희곡작가인 장정일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대해 총 5회에 걸쳐 대담을 진행했는데, 공연을 본 관객의 호응은 고스란히 대담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남산예술센터 현장의 모습을 전한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여운을 나누는 시간 ‘남산여담’

남산예술센터는 올해 시즌부터 ‘남산여담’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해 연중 운영한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의 대담 프로그램 ‘장정일의 연극읽기’가 그 첫 시작으로, 지난 3월 12일(토)부터 26일(토)까지 주말 공연에 한해 진행됐다. 소설가이자 서평가, 희곡작가인 장정일이 진행을 맡았고, 작품을 다양한 시각과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대담자로 함성호(시인, 건축가), 조선희(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소설가), 김규항(‘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칼럼니스트), 안치운(호서대 교수, 연극평론가) 등이 참여했다.
장정일 작가는 사람 많은 행사와 모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희곡만 읽었지, 연극을 보러 극장에 온 것도 근 10년 만이라고 했다. 검열 논란의 중심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던 이 작품을 남산예술센터에서 선보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아주 단호하고 진실한 어투로 매일매일 극장에 오겠다고 했다. 지난달에 출간된 대담집 <장정일, 작가> 서문에는 “여기 초대된 저자들은 모두 제가 되고 싶었던 꿈을 이룬 사람들이거나, 제가 바라보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의 작가 겸 연출가 박근형 역시 그가 되고 싶은 마흔 세 명의 작가 중 한 명이니, 그렇다면 그의 애정을 생경하게 느낄 이유도 없었다.

한 편의 작품을 다채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

연관 일러스트 이미지연관 일러스트 이미지1, 2, 3 3월, 박근형 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공연 후 진행된 ‘남산여담: 장정일의 연극 읽기’. 건축가이자 시인인 함성호(사진 1), 조선희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사진2), 연극평론가인 충북대 교수 조만수, 연출가 박근형 (사진 3) 등이 참여해 연극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첫 번째 대담자인 함성호 시인은 만화광, 건축평론가, 여행가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지만, 그의 본업은 건축가이다. 옛날 문을 여닫던 텔레비전의 형태가 실은 서유럽에서 유행했던 극장의 프로시니엄 무대양식에서 온 것임을 함성호 시인을 통해 이날 처음 알았다. 이어 극중 조선인 가미카제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듣고 싶다는 장정일 작가의 질문에, 한 관객이 “당시의 상황에서 가족을 위해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안타깝지만,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해가 됐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함성호 시인은 극중 마사키가 여동생의 뺨을 때리며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말랬지 않느냐고 외치면, 여동생이 “왜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거야”라고 되받아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이 오늘 공연의 무대에서 군인으로 나오지만, 결국 그들을 위한 위안의 장치가 없거든요”라며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예우받지 못하고 그 죽음이 형식화되지 못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에피소드로 껴들어 갔으면 어땠을까”라고 말했다.
다음 날은 박근형 연출가와 연극평론가 조만수 충북대 교수가 무대에 나왔다. 장정일 작가는 박근형 연출의 이전 작품 <대대손손> <너무 놀라지 마라> <쥐> 등을 언급하며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그동안의 작품에 비추어 뜻밖의 주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면으로 전쟁을 다루지 않았을 뿐, 모든 작품에는 군대나 전쟁의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곳곳에 박혀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조만수 교수는 “<쥐> <경숙이, 경숙아버지>도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쟁이 반드시 총탄이 터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황폐해진 풍경이라면 <삽 아니면 도끼>에서 교도소에서 나와 영화를 찍는 아무것도 아닌 무대들, 삶이 다 부서진 무대들도 난민 같은 의식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라크 팔루자 에피소드에서 한 여배우가 영어로 소리칠 때, 책을 읽는 듯한 서툰 영어발음이 마치 이라크 무장단체를 희화화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는 장정일 작가의 우려에, 한 관객이 나서서 “중동 사람들의 영어를 따라 하려고 일부러 어눌하게 대사를 했기 때문에 그 여자의 절절함이 더 와 닿았다”며 “박근형 연출님께 이 부분은 바꾸지 않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전 씨네21 편집장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세 번째 대담자 조선희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는 할리우드 영화 <매트릭스>를 언급하며 이 연극에 등장하는 네 개의 상황 자체가 모두 각각의 매트릭스로 보였다고 말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현실이 어쩌면 조작된 가공의 세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에서 시작하는 것인데 극중 네 개의 에피소드 가운데 일제말기 가미카제 특공대로 나가는 조선청년의 상황이 그런 매트릭스의 전형을 보여준다.” 조선희 대표이사는 “결국 우리 남산예술센터에서 무대에 올리게 됐지만 근래 창작초연작 가운데 드문 수작임에 틀림없다. 공공극장에서 허용될 수 있는 수준에 대한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없을 수 있어야 한국사회가 성숙했다 할 수 있는 것 아닐까.”라는 말로 토론을 마무리했다.
건축가의 눈으로, 시인의 마음으로, 연극인의 관점으로, 영화인의 시선으로 공간과 작품, 개인의 가치관과 지식을 나누는 아주 지적이고 진지한 시간이었다. 이처럼 남산예술센터는 올해도 꾸준히, 조용히, 작품으로 얘기할 참이다.문화+서울

글 조유림
서울문화재단 극장운영팀
사진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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