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공연을 병행할 수 있을까?
몽펠리에 오페라 <오르페오> ⓒMarc Ginot/Opera Orchestre National Montpellier
지난 10월 19일, 카네기홀 무대에는
아마도 역사상 최초일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공연을 앞둔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슈빌리Khatia Buniatishvili가 리허설 중
무대 위에서 모유를 수유한 것이다. 이는
부니아티슈빌리가 인스타그램에 직접 수유 영상을
게시하며 알려졌다. 해당 리사이틀은 원래 5월에
계획했다가 출산으로 연기된 것인데, 이번 일은
그사이 낳은 아이가 이번 투어에 동행했으며 그가
피아니스트이자 엄마라는 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부니아티슈빌리는 5월 말
출산했으며 8월 말부터 순회 연주(투어)를 하고
있다. 아이는 늘 그와 함께다.
10월 25일, 빈 슈타츠오퍼 <피가로의 결혼> 리허설 현장에도 아이가 등장했다.
베이비시터가 출근하지 않아 아이를 맡길 곳을
구하지 못한 베이스 페테르 켈너Peter Kellner가
아이를 리허설에 데리고 온 것이다. 켈너는 아이를
안고 노래했다. 이 현장은 지휘자 아담 피셰르Adam
Fischer가 페이스북에 영상을 공유하며 알려졌다.
피셰르는 “바로 이 상황이 빈 슈타츠오퍼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제가 처음 이곳에서 지휘를 시작했을
땐, 여성이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 이제는 주역을 맡은
가수, 그것도 베이스가 현장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라고 덧붙였다.
10월에 연달아 일어난 두 에피소드는
음악계가 성별의 장벽을 허문 만큼, 임신과 출산,
육아의 영역에도 유연해짐을 시사한다. 특히
페테르 켈너의 사례는 남성 음악가도 육아하며,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이러한 변화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음악가들의
임신과 출산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며 아티스트
친화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것과 더불어, 혹여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알릴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한몫했다. 그동안 여성
음악가들이 그늘에서 마주하던 고충이 점차 부모
공동의 일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협력해야 하는
일로 확대되고 있다.
지휘자 아담 피셰르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한 빈 슈타츠오퍼 <피가로의 결혼> 리허설 현장. 베이스 페테르 켈너가 아이를 안은 채 노래하고 있다.
예술가의 임신과 출산, 육아
음악가는 음악을 연주하는 주체다. 연주하는 몸에 변화가 생기면 활동에 변수가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음악가를 고용한 단체는 그동안 장기적인 데다 악기별로도 변수가 있는 여성 음악가의 임신을 피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바이올리니스트는 운이 좋으면 만삭까지 연주할 수 있지만, 첼리스트는 임신 7개월이 넘으면 연주가 불가능해진다. 또한 강한 숨을 불어넣어야 하는 오보에 연주자의 경우 임신 중 자궁 수축 등 무리가 오기도 한다. 성악가는 혈류 변화에 따라 성대가 변하는 등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임신 중후반쯤 발성을 전과 같은 수준으로 되찾는다 해도, 배가 상당히 나온 후라 주인공이나 오페라의 위험한 연출을 소화하기에 무리일 수도 있다. 음악계에서는 이런 변수를 피하기 위한 출연 취소가 암묵적으로 이뤄져왔다. 문제는 음악가의 안전이나 신체적인 상황을 함께 극복하고 대안을 마련해나가기보다, 단순히 출연진을 교체하는 수준으로 반복해온 것이다. 영국 음악가조합Musicians’ Union의 임신 차별 예방 캠페인이 이러한 관행을 잘 지적하고 있다. “임신한 여성은 자기 몸을 가장 잘 압니다. 모르는 상황을 가정하지 말고, 그들을 대신해 결정을 내리지 마세요. 대신 먼저 임신한 여성에게 물어보세요! 임신했다고 해서 여성이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도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습니다.” 육아는 더욱 장기전이다. 남성 음악가·운영자가 악단·극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과거의 상황은 열악했다.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에서 40년 넘게 연주한 첼로 부수석 재닛 호바트Janet Horvath는 “아이가 호흡 곤란이 와 얼굴이 파랗게 변해갈 때, 악단의 남성 인사과장이 ‘남편이 아이 곁을 지키고 당신은 연주하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며, “당시에는 아이가 아플 경우에 대한 제도도 없었고, 투어에 대한 면제도 없었다. 18개월 된 아이를 두고 일본 공연에 갔을 땐 마음이 찢어졌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다행히 오늘날 오케스트라는 육아를 병행하는 음악가에게 편의를 제공하려 노력한다. 수유모에게 투어를 강요하지 않으며, 아이가 있는 경우 투어에 데려갈 수 있도록 베이비시터 (혹은 파트너)의 여행 수당을 제공한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경우 모유 수유를 하면 출산 휴가를 1개월 더 받는다. 독일 오케스트라는 육아 휴직 1년간 월급의 65%를 받으며, 그 기간 동안 쉴지 공연에 참여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공연에 참여하면 추가 수당이 발생해 월급의 100%까지 보전된다. 음악가가 연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노력이 인상적이다.카네기홀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슈빌리 ⓒJennifer Taylor
긍정적인 미래를 만들어갈 현재의 기록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임신, 출산한 가수가 공연을 원할 경우, 그들이 안전하게 공연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 <마술피리> 공연은 출산한 지 6주 된 소프라노 캐스린 리웨크Kathryn Lewek가 밤의 여왕 역을, 셋째 아이를 낳고 복귀한 에린 몰리Erin Morley가 파미나 역을 맡았다. 두 사람은 분장실에서 정기적인 수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근래 가장 인상적인 소식은 지난 6월 프랑스 몽펠리에 오페라에 오른 <오르페오>다. 연출 뱅자맹 라자르Benjamin Lazar는 캐스팅 후 아이를 가진 주역 소프라노 마야 케라니Maya Kherani를 두고, 아예 임산부라는 설정을 연출에 포함해 인물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케라니를 위해 의상팀은 허리를 조절할 수 있는 드레스와 단화를 준비했다. 작품은 “전체적인 연출의 응집력 덕분에 개인의 한계가 지워졌다”고 호평받았고, 케라니는 공연 다음 달 무사히 출산했다. 이러한 복지 제도와 대응은 단체와 극장에 따라 그 속도가 다르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출산 직후의 소프라노들을 포용한 것과 달리, 같은 해 함부르크 오페라는 <마술피리> 주역에 캐스팅한 소프라노 쥘리 푸슈Julie Fuchs가 임신하자 출연을 취소했다. 음악가들도 관련 법의 실효성을 체득하고 적용하는 단계에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음악계가 겪은 다양한 사건들은 소셜미디어와 언론 보도로 기록이 남는다. 하나하나의 사례가 점차 미래의 긍정적인 합의점에 도달할 근거를 만들어 나간다. 카티아 부니티아슈빌리의 수유 영상이 단순한 관심 끌기를 넘어 큰 의미가 되는 이유 또한, 이러한 작은 순간들이 언젠가는 여성 음악가의 모유 수유가 공연 현장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날의 발판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글 전윤혜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