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새로운 ‘이것’을 제시하기 다목적 공간 ‘This is not a church’
겉모습은 누가 봐도 교회인데 파란 바탕 간판에 흰 글씨로 명성교회라고 적혀 있는 이곳의 이름은 ‘This is not a church’(이하 TINC)이다. 거문고 튕기는 소리가 울리는가 하면, 즉흥으로 춤을 추는 무용가가 돌아다니고, 여러 분야의 평론가가 모여 시각예술에 대해 대담을 나누기도 한다. 전시·공연·촬영·워크숍을 비롯한 행사가 TINC에서 열리고 있다.
‘This is not a church’ 외관
불편한 제약을 활용하는 예술
‘이것은 교회가 아니다’는 이름부터 모호하다. ‘이것’이 공간을 지칭하는지 확실치 않고, 교회 모습을 하고서는 교회가 아니라고 이름 지었다. 교회가 아니면 TINC는 무엇일까. 자연스레 이 질문을 하게끔 만든다. TINC의 지향점은 이 맥락에 있다. TINC가 확실한 무언가를 제시하지 않으면 누군가 궁금증을 품고 나름대로 대답을 내놓는다. 모두의 대답은 다르다. 이곳을 사용하는 예술가는 마치 “너희가 이름을 제대로 짓지 않았으니 내가 마음대로 활용하겠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취재를 위해 TINC의 운영진 이정형 작가를 만났다.
“작가들이 공간을 자유롭고 다양하게 활용하는 편이에요. 저는 처음부터 불편한 공간으로 상정하고 TINC를 만들었거든요. 어떤 공간에서 특징이 생기려면 굉장한 제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에는 제약을 없애기보다는 이용하려고 노력하는데요. 자유롭게,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면서 새로운 특징이 나타나는 거죠.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만들자고 목표를 잡았어요. 조명도 없고 친절하지도 않고 그냥 버려진 공터 같은 공간이죠.”
그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니콜라이 쿤스탈Nikolaj Kunsthal 미술관에서 2019년 열린 전시에 참여한 바 있다. 큰 교회를 미술관으로 바꾼 곳이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교회로 쓰이던 현재의 TINC 공간을 보며 그처럼 전시장이 되면 좋겠다고 직관적으로 느꼈다고 말한다. 교회 예배당으로 사용한 3층을 리모델링해 2020년 8월부터 TINC로 운영하고 있다. TINC는 이정형 작가의 의도대로 조명 기구가 없다. 실내를 채우는 빛은 오직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전부다. 교회 특유의 길고 좁은 창을 통해, 햇빛이 구름에 가려지기라도 하면 어둠침침한 바깥의 분위기가 그대로 안으로 이어진다. 일반 전시장에 비하면 작품을 걸만한 매끈한 벽이 부족하고 천장의 마감 처리도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를 유지했다. 약 200m2(60평) 넓이의 공간은 작품이 없으면 외딴 공터의 스산한 느낌을 풍긴다. 그럼에도, 혹은, 그러니까 예술가가 모인다. TINC의 의도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여러 예술가가 불편한 제약을 예술적으로 활용했다.
<Dance without Metronome>(2021. 8. 13~14)에서 도로시·정경빈·채진솔이 각자 춤·미술·음악을 맡아 공연을 진행했다.
무엇이 없어 무엇이든 가능한 공간
극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에 관심 많은 정세영 작가는 TINC에서 퍼포먼스 <I’m the church>(2021. 7. 7~9)를 선보였다. 관객은 현실의 TINC에서 헤드셋을 착용해 가상의 TINC에 입장한다. 가상의 ‘이것은 교회가 아니다’에서, 교회가 아니라고 말하는 곳에서 ‘나는 교회다’를 선보이는 서재영·이신실·정세영의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정세영 작가는 이를 통해 극장의 역할과 형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이정형 작가가 말했다. “현재 주로 대관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작가들이 대부분 뭘 할지 구체적으로 정하고 TINC로 연락하는 경우가 많아요. 공간이 작가에게 무언가 영감을 주는가 봐요. 예를 들어 회화 작품을 걸기 어려운데 꼭 회화 전시를 하고 싶다 그래요. 조명이 없으니까 어두운 날에 작품 보기 힘들잖아요. <검은 새 검은색>(2021. 3. 16~26)을 전시한 곽소진 작가는 밤에 손전등으로 작품을 비추면서 감상하기를 권했어요. 공연 같은 경우는 보통 오후 5시 즈음 시작해요. 곧 해가 지잖아요. 어두워지면 공연이 끝나요. 익히 알고 있는 미술관이나 공연장 환경과 다르니까 그 특징을 나름대로 이용하는 거겠죠.” 취재 당시에는 이정우 작가의 <승선하지 않았다>(2021. 11. 26~12. 15)가 전시됐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마저 커튼으로 차단해 공간은 어둡다. 전시장의 문을 여니 움직이지 않는 큰 구조물에 영상 작품이 상영되고 있었다. 위에서 본다고 상상하면 세 갈래로 뻗은 부메랑 모양의 구조물이다. 세 갈래 각 면에 영상이 하나씩 상영되지만 감상자는 불투명한 회전문을 보듯 한 위치에서 최대 두 영상을 본다. 음성은 세 가지가 동시에 들린다.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서 감상자의 시각과 청각은 오직 작품과 교감한다. 빙글빙글 돌며 반복해서 보고 들으니 나중에는 한 영상을 봐도 세 영상과 음성이 뇌리에 박히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TINC의 공연·전시는 공간이 제공되면 예술가가 자유롭게 만들었다. 예술가의 개성이 한껏 발휘됐다. 앞으로도 이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지수다. 운영진도 TINC가 공연을 많이 하는 공간이 될 줄 몰랐다고 말할 정도니까. 모호한 ‘교회가 아니다’이기에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새로운 ‘이것’을 제시하는 공간이기를 기대한다.
This is not a church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4가 37 3층 (구)명성교회
일정 프로그램별 상이
인스타그램 @this_is_not_a_church | 누리집 t-i-n-c.com
글 장영수 객원 기자 | 사진 제공 This is not a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