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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풍요로운 한국미의 향연 전시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과 <PARK SEO-BO>

가을은 각 미술관·갤러리의 연중 계획 중 하이라이트 전시가 열리는 시기다. 2021년 10월에는 어느 때보다 한국 미술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줄 전시가 풍성하다. 그 가운데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과 박서보 화백의 개인전은 놓치면 아까울 전시다.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시 전경
박물관과 미술관을 융합한 파격적이고 대담한 전시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 7. 8~10. 10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융합한 화제의 전시다. 문화재와 근현대 미술품을 한자리에 모아 시공을 초월한 한국미의 DNA를 추적하기 위해 기획됐다.
전시는 근현대 미술가들이 우리 전통의 핵심으로 인식한 네 가지 키워드로 성·아 ·속 ·화를 꼽았다. 각 의미는 ‘성스럽고 숭고하다’ ‘맑고 바르며 우아하다’ ‘대중적이고 통속적이다’ ‘조화로움으로 통일에 이르다’이며, 주제에 맞게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는 박물관에서 온 국보와 보물, 현대미술품 가운데서도 명품 중의 명품으로 꾸며졌다. 입구에 들어서면 한국 회화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 하는 상징, 고구려 고분벽화 작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강서대묘 현무 모사도’다. 근대 거장 이응노는 생전 고구려 고분벽화가 기백과 강인한 정신, 현실의 난관을 극복하고 세계로 나아가는 우리 민족성을 드러낸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강서대묘 현무 모사도’ 주변으로 이숙자의 ‘강서고분벽화 청룡도’, 권진규의 조각 ‘해신’, 박노수의 ‘수렵도’ 등이 배치됐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담긴 정신이 근 현대 미술품에 미친 영향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나아가 오늘을 사는 우리 DNA에 한국미가 남아 있음을 넌지시 암시한다.
작품의 배치도 파격적이고 대담하다. 위태로워 보일 수 있어 미술관에 서 보기 힘든 세모꼴 좌대 위에 작품을 올려두는 방식으로 전시했다. 세모난 좌대가 만든 비스듬한 각도를 따라 작품 사이에 놓인 유리벽에 다른 작품들이 비치고 겹쳐 보이게 기획했다. 이로 인해 관객이 눈을 돌리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국보와 보물, 유수의 근현대 미술품이 서로 겹쳐졌다 사라지고 하나가 됐다가 나뉜다. 그 순간이 보일 때마다, 마치 작품의 영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줘 비상한 감상 경험을 하게 된다. 초기 달항아리 작품을 감상하다 고개를 들어 멀리 내다보면 그 뒤편에 놓인 현대 달항아리들이 마치 줄지어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식이다. 작품이 놓인 모습이 진풍경을 이루는 셈이다.
마침 덕수궁 야외 정원에서 <덕수궁 프로젝트: 상상의 정원>(~11. 28)도 진행하고 있어, 덕수궁 안팎이 예술로 풍성하다.

<PARK SEO-BO> 전시 전경
K-아트의 대표, 단색화 거장 박서보 개인전 <PARK SEO-BO> | 국제갤러리 K1 | 9. 15~10. 31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9월 15일 열린 박서보 화백의 개인전 기자간담회에는 취재진이 많이 몰려 북적였다. 그만큼 K-아트의 대명사인 단색화, 그 단색화 그룹의 대표 주자인 ‘박서보’라는 이름의 무게를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90세인 그는 거동이 불편해 며느리 김영림씨의 부축을 받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조심스레 걸었지만, 자신의 작업 세계를 설명하면서는 40여 분을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홍시색?황금올리브색?공기색 등 자연에서 따온 색으로 별칭을 붙인 색채 묘법 작품 16점이 공개됐다.
색채 묘법 작품은 박서보 화백의 후기 묘법 작품을 일컫는 말이다. 한지 세 겹을 두 달 이상 물에 불린 뒤 캔버스 위에 붙이고, 표면이 마르기 전에 굵은 연필로 일정하게 선을 긋는다. 반복해서 선을 긋다 보면, 젖은 한지가 좌우로 밀려 마치 논두렁처럼 골이 만들어진다. 물기를 말린 후 자연의 색을 담아내기 위해 아크릴 물감을 덧칠한다. 단색화는 이같이 행위의 무목적성과 반복성이 핵심이다.
색채 묘법 작품은 예술이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흡수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을 담았다. 작가의 생각을 캔버스에 담아 보는 이에게 강요하지 않고, 작가가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내는 수행을 하고, 그 결과물인 작품은 관객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흡수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박서보 화백은 “20세기 미술은 작가가 ‘표현’이란 이름 아래 캔버스에 다 토해 놓고, 사람들은 그걸 집에 걸고 그 이미지를 보면서 매일 폭력을 당하는 거예요. 현대엔 그것이 틀렸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21 세기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는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쌓이고 지구가 스트레스 병동화됩니다. 내가 마르지 않은 잉크를 죽 빨아들이는 ‘흡인지’를 쓰지요. 20세기 그림처럼 보는 사람을 향해 그림이 가는 게 아니라, 흡인지처럼 그림이 보는 사람들을 빨아 당겨줘야 그 사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지는 겁니다. 그게 미래 예술입니다. 그래서 자연의 색채를 내 화면에 유인해 내고, 스님이 반복해서 하루 종일 염불하듯 자신을 비우는 행위를 반복했습니다.” 한국 단색화의 거장이 평생 좇아온 ‘흡인’ 의 미덕은 배설의 시대인 오늘날 유독 울림이 크다.

김예진 《세계일보》 기자 |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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