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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 어떻게든 즐길 수만 있다면
공연을 즐기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배우를 좇을 수도 있고, 작품에서 사회적 의미를 읽어낼 수도 있다. 공연 자체가 주는 심미적인 쾌감을 한껏 느껴보는 것도 좋다. 여기선 마지막 기준에 따라 각기 다른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공연 두 개를 골랐다. <오페라의 유령>은 화려한 무대와 풍부한 사운드가 일품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여러 관점에서 작품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점이 흥미롭다.

1 <오페라의 유령> 가면무도회 장면. (에스앤코 제공)

보는 내내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유령의 매력<오페라의 유령> 2019. 12. 13~2020. 2. 9(부산 드림씨어터),
2020. 3. 14~6. 26(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새해를 맞는 파리의 한 오페라하우스. 계단의 맨 처음부터 맨 끝까지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은 이들로 가득하다. 무대 담당자를 살해하고 샹들리에를 떨어뜨리는 등 그간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오페라의 유령’의 출몰이 뜸해져 안심한 하우스 멤버들은 흥겨운 노래와 함께 가면무도회를 즐기고 있다. 은은한 파스텔톤 드레스의 크리스틴, 금줄 장식이 빛나는 예복을 뽐내는 라울을 비롯해 어느 하나 같은 것 없는 다채로운 옷차림들을 감상하느라 눈이 즐겁다.
1986년 런던 웨스트엔드 무대에 처음 오른 뒤 30년 이상 공연하며 전 세계 1억 4,000만 관객을 사로잡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7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지난 2012년 초연 25주년 기념 공연에 이어 이번에도 뉴욕에서 공연하는 그대로의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버전이다. 오페라하우스에 숨어 사는 유령과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그리고 귀족 라울의 삼각관계를 다룬 매력적 스토리 외에도 가면무도회, 샹들리에 추락 장면, 지하호수 신 등 화려한 볼거리가 관객을 매혹한다.
‘떨어지는 샹들리에’는 크리스틴이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된 유령이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활용하는 무대장치다. 너비 3.5m, 높이 1m에 달하는 샹들리에의 추락은 무대 가까이에서 볼수록 그 존재감이 오롯이 느껴진다. 특히 이번 시즌엔 지난 공연 대비 1.5배 빨라진 3m/s 속도로 관객들에게 큰 박진감을 안긴다. 뼈대를 알루미늄으로 구성하고 장식용 크리스털은 플라스틱 진공 성형법으로 만들어 무게를 대폭 낮춘 덕분이다. 객석 1열로부터 12.5m 높이에 떠 있는 샹들리에가 바닥에 떨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4초 남짓. 어쩌다 한눈팔고 있다간 놓치기 십상이라 집중이 필요하다.
크리스틴을 납치한 유령이 나룻배를 이끌며 오페라하우스 지하호수를 이동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다. 호수 위로 자욱하게 깔린 안개 사이로 흔들리며 빛나는 281개 촛불들이 으스스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제곡 <The Phantom of the Opera>를 부르는 두 배우의 마성이 꼭 어우러진 이 신에선 웬만한 목석이 아니고서야 홀리지 않고 배겨낼 도리가 없다. 유령은 ‘역대 최연소 유령’으로 중저음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일품인 조나단 록스머스가 연기한다. 크리스틴 역은 지난 내한 때 활약했던 클레어 라이언이 다시 맡았다. 2월까지는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공연하지만, 3월부터는 서울에서도 볼 수 있다.

2 <위대한 개츠비> 영국 공연 장면.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1920년대 화려한 파티 속으로 <위대한 개츠비> 2019. 12. 21~2020. 2. 28, 그레뱅뮤지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0년대 미국은 유럽의 ‘벨 에포크’에 비견할 만한 황금기를 맞이한다. 유럽과 달리 산업시설 피해가 거의 없었던 미국은 막강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자동차와 건설, 전기 산업을 발전시키며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다. 이런 물질적 기반이 자유와 쾌락을 원하는 전후의 사회적 욕구와 만나 향락의 극치를 추구하는 ‘재즈 시대’를 만들어냈다.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는 이 시대 밀주업을 통해 돈을 번 부자 개츠비, 그가 사랑하는 데이지,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인물들 간의 사랑과 갈등, 그리고 죽음에 대해 다룬 작품으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관객이 연기를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극 속에 적극 참여하는 이머시브 시어터(관객 참여형 공연)로서, 1920년대 화려한 재즈 파티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이 덕분에 2015년 요크의 한 펍에서 처음 상연한 이래 영국에서 꾸준한 인기를 이어왔으며, 벨기에, 아일랜드, 호주 등에서도 공연했다. 아시아 국가들 중에선 한국이 첫 무대다.
큰 홀과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그레뱅뮤지엄 2층 전체가 ‘개츠비 저택’으로 활용된다. 관객은 개츠비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된 손님이라는 설정으로, 1920년대로 돌아가 배우들과 찰스턴 댄스를 추며 재즈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이 밖에도 개츠비와 데이지를 이어줄 티파티 준비 등을 도우며 여러 장면에서 함께 극을 만들어나간다.
다양한 버전으로 작품을 체험하는 것도 가능하다. 개츠비의 친구 닉 캐러웨이의 눈으로 본 단 한 가지 서사만 존재하는 원작과 달리 공연에선 선택에 따라 인물들의 다양한 얘기를 들어볼 수 있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손을 내밀며 자신만의 공간으로 그들을 인도한다. 그곳에서 원작에선 접할 수 없었던 내밀한 속사정을 털어놓는다. 이 덕분에 같은 시간 같은 공연을 봤더라도 관객들이 접하는 ‘위대한 개츠비’는 각양각색이다.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작품을 맛볼 수 있다. 연출진에 따르면 크게 구분되는 버전만 최소 7가지다.

글 서정원_매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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