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사실 알리바이는 충분했다. 광장의 역사성, 사람 중심의 보행환경, 시민민주주의를 회복해 서울시민의 삶과 도시의 운명을 바꾸자며 서울시는 지난 3년간 약 100회에 걸쳐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에 대한 시민 논의를 축적했다. 단일 프로젝트로는 유례없는 긴 소통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시민이 아니라고 하자, 시민이 들은 바 없다고 하자, 시민이 논의가 충분하지 않다고 하자 박원순 시장은 원점 재검토를 결정했다.
이후 박 시장은 ‘소통 대장정’에 나섰다. 연말까지 4차례의 공개 토론회와 4차례의 전문가 토론회 그리고 2차례의 시민대토론회에 두루 참석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 자리를 지켰다. 이 중 11월 26일 광화문광장 에어돔에서 열린 광화문시민위원회 문화분과 위원들이 주최한 토론회와 11월 2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공개 토론회에 참석했다.(이날은 토론자로 참석했다.)
현장의 목소리는 뜨거웠다. 광화문광장과의 거리에 따라 재구조화 사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지척에 두고 생활하는 주민에게는 시위 군중의 소음에 관한 문제였고, 주말에 나들이를 오는 시민에게는 향유 공간에 관한 문제였고, 멀리 있는 일반 국민에게는 국가 대표 광장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였다. 각자 선 위치에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문제를 바라봤고 자신의 생각을 박 시장에게 가감 없이 표출했다.
1 광화문광장 에어돔.
2 광화문광장 에어돔에서 열린 광화문광장 문화포럼(2019년 11월 26일).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포럼
가장 인상적인 토론회는 광화문시민위원회 문화분과 위원들이 준비한 광화문광장 문화포럼이었다. 이 포럼은 시민들에게 광화문광장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설계되었다. ‘광화문광장, 우리는 ( )를 희망한다’라는 질문으로 비움과 채움의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광화문광장에서, 나는 ( )를 하고 싶다’라는 질문으로 일상과 일탈의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광화문광장은, 아이들에게 ( )이어야 한다’라는 질문으로 현재와 미래의 역할을 물었다.
광화문광장 문화포럼에서 돋보인 것은 발언권이었다. 보통 이런 토론회는 발제자가 있고 이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토론자가 있다. 토론회 대부분의 시간은 이들 사이에서 진행되고 객석의 청중에게는 양념처럼 마이크가 쥐어질 뿐이다. 그리고 기자들이 논점과 쟁점을 정리해서 기사를 작성해 시민들에게 전달하는데, 이는 시민의 시선이 아니라 언론사의 관점에 따라 정리된 것이다. 이 모형에서 시민은 철저하게 소외된다.
마이크를 누가 쥐느냐가 핵심이다. 매년 연말 토크콘서트 매진 사례를 기록하는 방송인 김제동 씨는 마이크에 대한 소신을 가지고 있다. “마이크는 권력이다. 마이크를 청중에게 주는 것은 권력을 청중에게 주는 것을 의미한다. 행사에 가보면 내외빈만 인사를 시킨다. 그들에게만 발언권을 주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별건가? 발언권을 나눠주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는 토크콘서트에서 열심히 마이크를 청중들에게 전달한다.
광화문광장 문화포럼의 발제자는 일반 시민이었다. ‘광장이 담아야 할 가치와 새로운 광장이 문화적 공간으로 이용되기 위한 방안’을 시민으로부터 직접 들어 영상으로 촬영해 이를 토론회 발제로 활용했다. 사회자는 시민 발제자의 영상 발제가 끝난 뒤에 곧바로 객석의 시민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포럼을 구현한 것이다. 이날 토론에는 전문가들도 시민들 사이에 껴서 동일하게 발언권을 가졌으며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가했다.
이런 영상 발제가 단순한 쇼는 아니었다. 준비 기간이 있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광화문광장 홈페이지 등에 온라인 발언대를 11월 13일부터 22일까지 운영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11월 18일부터 22일까지는 광화문광장 해치마당에 현장 시민발언대를 마련하고 직접 발언하게 했다. 이런 폭넓은 의견 청취 과정을 바탕으로 시민의 목소리가 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개략적인 그림을 그렸다.
아직 부족하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논의를 위해서는 더 많은 목소리와 더 다양한 시각이 반영되어야 한다. 광화문광장 문화포럼에서 시도한 방식을 좀 더 확장해서 빅데이터 분석이 가능할 정도로 방대한 의견을 구해야 한다. ‘행정의 진화’를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다. 기술과 민주주의의 접점을 찾기 위해 서울시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 글 고재열_시사I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