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네마냐 니콜리치> 전시 전경.
시각예술과 영상언어의 결합 <네마냐 니콜리치> 5. 17~6. 29, 갤러리ERD
용산 경리단길에서 살짝 비켜난 곳에 자리한 갤러리ERD는 세르비아 출신의 작가 네마냐 니콜리치(Nemanja Nikolić)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드로잉과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영감을 얻는 작가는 시각예술과 영상언어를 연결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전통적 드로잉 방식은 유지하면서, 움직이는 이미지들의 속성을 이용해 작품의 개념적 확장과 다듬기를 계속한다.
이번 전시에 나온 페인팅 작업들은 시각적으론 추상주의와 미니멀리즘의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붓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매끈한 색면들이 리드미컬하게 나열되어 일종의 도식적 코드처럼 읽히기도 한다. 작가는 어떤 영화에서 이 같은 작업들이 시작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간단한 이미지들은 “영화의 내러티브나 스토리가 아닌 프레임, 컷, 그리고 상호 간의 개조에서 나타나는 리듬과 같은 영화의 코드들”이라는게 작가의 설명이다. 맥락과 스토리로 영화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반복과 형식을 통해 영화를 이해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체한 것이다. 결과물은 이미 원본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레퍼런스와 멀어지며 독립된 시각물로 나타났다.
니콜리치의 드로잉은 페인팅보다 원작 이미지들과 연관성이 살아있다. 그러나 이것도 레퍼런스를 밝히지 않아 정확한 출처를 알기는 어렵다. 다만 서구 영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이미지들의 클리셰가 눈에 띈다. 작가에겐 영상물, 회화, 드로잉의 영역이 다르지 않다. ‘영상 이미지’라는 인생 테마를 풀어내는 다양한 방법일 뿐이다.
이미지의 홍수 속에 자라난 밀레니얼 세대의 한 풍경이다.
2 휴 스콧 더글라스 개인전 <하드 레인> 전시 전경.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오가며 장르의 경계를 허물다 <하드 레인> 5. 17~6. 19, 갤러리바톤
최근 다양한 문화예술 스폿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독서당로의 갤러리바톤은 휴 스콧 더글라스(Hugh Scott-Douglas)의 국내 첫 개인전 <하드 레인>(HARD RAIN)을 개최한다. 캐나다 출신의 더 글라스는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를 다각적 관점에서 환기시킨다. 인류세는 199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폴 크뤼천(Paul Crutzen)이 2000년에 처음 제안한 용어다. 인류의 활동으로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이에 따라 지구환경 체계가 급변한 시대를 뜻한다.
이번 전시에선 작가의 주요 시리즈 <무역풍>(Trade Winds)과 <자연사>(Natural History)를 소개한다. <무역풍> 연작은 해상 운송 추적 프로그램인 ‘플릿몬’(FleetMon)으로 얻어낸 바다의 기후 패턴을 활용한다. 해류와 풍류의 방향을 데이터화하면 이를 따라 인간의 경제적 가치, 무역항로, 화폐와 상품의 유통이 이뤄짐을 유추할 수 있다. 작가는 이렇게 얻어진 이미지를 조작해 스크린 프린팅하며, 이 위에 또다시 추출한 이미지를 인쇄해 실재하는 현실을 감춘다.
결국 관객이 만나는 결과물은 원본을 짐작할 수 없는 이미지들이다. 레이저 커팅, 잉크젯 프린트, 수치 데이터 등 광범위한 기법과 매체를 복합적으로 사용하며 아날로그와 디지털 생산 방식을 마음껏 오간다. 일반적 장르 구분으로는 규정조차 어려운 작업들이다.
작가는 “식민주의를 기반으로 했던 서구 열강의 경제 발전은 매핑(mapping: 지도화)에서부터 시작됐다. 항구는 자연에 대항한 인간의 구조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가 간의 정치·경제적 대항을 담아낸다”고 말한다. 부산, 서귀포 등 한국의 항구를 담은 8개 작업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전시의 또 다른 축인 <자연사> 연작은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밀스타인가 해양생물관에 전시된 야생 동식물 모형의 주변부를 촬영하고 그 사진을 활용해 작업한 프린트 회화다. <무역풍> 연작과 마찬가지로 여러 번 이미지를 조작하고 프린트하는 과정을 거쳤다. 실제의 자연을 인식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입맛대로 해석하는 인류세의 풍경이 작업의 바탕에 그대로 깔렸다.
- 글 김아미_헤럴드 문화사업팀 팀장, 헤럴드디자인포럼 디렉터
사진 제공 갤러리ERD, 갤러리바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