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정책으로 멍드는 동심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예술의전당 산하 어린이예술단은 지난 5월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정기공연에서 마지막 곡으로 <어린이날 노래>를 불렀다. 객석에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청중이 제법 있었다. 울음을 참으며 노래했던 아이들은 공연 후 한참 흐느꼈다고 한다.
이 무대가 어린이예술단의 마지막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산하 예술의전당의 유일한 전속 예술단체인 어린이예술단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은 2016년 말 어린예술단 창단 준비 공연을 했다.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초등학생 80여 명은 국악, 기악, 합창 부문으로 구성돼 있었다.
어린이예술단은 정기공연, 지역 순회공연, 예술의전당 기획공연 등 연 10여 회 공연했다.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한글날 행사 무대에 서기도 했다. 연말 성탄절 무료 공연은 티켓 신청 1시간 만에 동나 화제가 됐다. 그런데 예술의전당은 지난해 말 예술단 측에 지속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말한 뒤 올해 신규 단원을 모집하지 않았다.
4월 중순에는 어린이예술단 폐단을 확정했다고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통보했다. 학부모들은 4월 말 신임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과의 면담에서 재고를 요청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예술의전당 측은 “어린이예술단 파트 간 예술적 시너지가 크지 않고 예산 마련이 쉽지 않다”며 “인근 지역 어린이가 주로 단원으로 활동해 사회공헌 기능도 크지 않다고 판단해 폐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예술의전당은 창단 당시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예술 활동의 기회를 주고 화합과 소통의 문화에 기여하는 공익사업이라고 설명했다. 1억 5,000만 원 안팎의 운영 자금은 예술의전당과 후원회가 담당했다. 정부가 바뀐 뒤 새로운 사장이 선임되는 과정에서 전 사장이 시작한 사업이 모두 폐기되는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2016년 창단 때부터 합창 파트에서 활동해온 박솔범 군(고양 화수초 6)은 “음악으로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술단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정이 많이 들었는데 없어진다고 해서 너무 슬프다”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공공기관이 예술단을 갑자기 없애는 것은 무책임하다. 단원들이 오디션을 통해 다른 단체로 갈 수 있도록 최소한 올 연말까지라도 지속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이를 위해 예술의전당뿐만 아니라 문체부, 국회에도 민원을 제기했다. 예술의전당의 정책이 근시안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폐단 결정을 번복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간부는 “지난해 연말부터 분위기를 전달했고 예산 마련이 안 돼 더 이상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에 따라 어린이예술단은 5월 18일 폐단식을 끝으로 짧은 역사를 마감했다. 한 공연계 전문가는 “어린이 예술정책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세워야 하는데 전임자가 시작했다는 이유로 없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졸속 예술정책이 동심을 멍들게 한다는 지적이다.
예술의전당 산하 어린이예술단 어린이들이 지난 5월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마지막 정기공연에서 <어린이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린이예술단 제공)
‘엘 시스테마’는 먼 나라 이야기?
공영방송인 KBS는 올해 KBS어린이합창단의 단원 모집을 보류하기로 해 논란이 일었다. KBS는 지난 3월 말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올해 예정됐던 제27기 KBS어린이합창단 단원 공모를 유예한다”며 “어린이들의 새로운 음악과 문화에 부응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4월 말 제26기 KBS어린이합창단 수료식 이후 합창단의 공식 활동은 종료됐다.
1947년 창단된 KBS어린이합창단은 소프라노 신영옥 등이 어린 시절 활동했던 유서 깊은 합창단으로 2년마다 단원을 선발해왔다. KBS 측은 “확정된 바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폐단 수순이라는 관측이다. 어린이들의 예술 활동 기회가 드문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예술단체를 만들었다가 몇 년 만에 없애고 정기적으로 하던 단원 모집을 공청회 없이 갑자기 중단하는 것은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청년 대상 오케스트라도 폐단한다는 소식이다. 롯데문화재단은 지난해 창단한 ‘원 코리아 유스 오케스트라’를 폐단하기로 한 것으로 최근 알려졌다. 18~25세 청년들을 뽑아 젊고 실력 있는 전문 연주자를 양성한다는 목표로 세운 오케스트라였다. 음악감독을 맡았던 지휘자 정명훈이 지난 2월 더 이상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기 어렵다는 뜻을 재단 측에 전달하면서 폐단이 결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재단 측은 새로운 감독을 구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젊은 연주자들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
베네수엘라의 빈곤 아동 음악 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는 반세기 넘게 지속되면서 국경을 넘어 전 세계에 희망을 전하고 있다. 우리는 음악단체를 세웠다가 3년도 안 돼 슬그머니 없애고 있다. 이래서야 아이들이 예술의 꿈을 키울 수 있겠는가. 관계 기관 책임자들은 장기적으로 예술단체 운영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래 젊은 예술가들의 꿈은 계속 좌절될 것이다.
- 글 강주화_국민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