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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4월호

미투 운동에 대한 제언과 바람
미투 운동, 시스템화가 필요하다

metoo

얼마 전 여자후배 둘과 저녁을 했다. 한 명은 나보다 9살, 한 명은 15살 아래다. 요새 가까운 여자들과 모이는 자리에서는 대개 서로 ‘당했던’ 경험들을 이야기하게 된다. 나는 기자생활 초기에 선배로부터 성폭행당할 뻔했던 얘기를 이미 2000년에 책을 통해 공개한 적 있는데, 얼마 전 만난 후배들 역시 유사한 경험들이 있다는 데 놀랐다. 약간 아랫세대인 이 친구들은 좀 나은 여건에서 사회생활을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권력형 상습적 성폭력’의 전형들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의 문화를 ‘비포 애프터’로 확실히 가르게 될 것 같다. 정치권력뿐 아니라 성역할에서도 권위주의시대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할리우드의 미투 운동이 미라맥스 사장 하비 와인스타인에서 시작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연극연출가 이윤택으로부터 폭발했다. 와인스타인이나 이윤택이나 ‘권력형 상습적 성폭력’의 전형들이다.
영화나 연극에서 제작자와 연출자는 배우, 스태프의 ‘생계여탈권’을 쥐고 있고 특히 배우들의 경우는 무명으로 남느냐 스타로 뜨느냐에 따라 그 보상의 차이가 워낙 극단적이어서 그들을 선택하고 버리는 이들은 거의 제왕적인 권한을 누린다. 그런 권력으로 젊은 여배우들을 왕조시대 궁녀들처럼 부린 이윤택 같은 케이 스가 20년 동안 별 탈 없이 지탱되어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여배우에게 성노예 역할을 요구하고 그것을 거부하면 직업을 박탈하는 그의 경우는 거의 악마적이다.
검찰의 안태근도 이윤택과 닮은꼴이다. 성추행을 하고 그걸 문제 삼으면 특별감사로 털고 인사에서 물 먹이는 것, 권력형 상습적 성폭력의 전형이다. 예술계에서도 문학이나 미술처럼 개인작업을 하는 장르보다, 연극이나 영화처럼 집단작업을 하고 집단 안에 위계가 있는 장르는 이런 권력형 성폭력이 일상화되기 쉬운 구조다. 미투 운동은 성차별 문화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만 무엇보다 암암리에 성행했던 이런 권력형 상습적 성폭력을 세상에 드러내고 말려버리는 데 최우선의 목표를 두어야 한다.

metoo

정부는 직접 나서기보다 지원해야

지금 미투 운동이 개인적인 폭로로 시작되어 파상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지만, 조만간 가닥을 잡고 시스템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별적인 사례들이 걸러져서 공론화되는 여과장치가 필요하다. 어떤 한 개인의 폭로로 시작해 순식간에 SNS에서 재판이 끝나버리는 경우도 위험하다. 개인적으로 박재동 화백의 경우는, 30년 동안 가까이에서 보아온, 그의 됨됨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너무 안타깝다.
문화체육관광부나 여성가족부에서 일종의 성폭력 신고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센터를 만든다고도 한다. 그러나 정부나 산하기관은 민간에서 이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지, 직접 나서서 센터를 운영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공공기관에서는 간부급 직원으로 고충처리위원을 두는데, 사람에 따라 그리고 조직문화에 따라 고충무마위원이 되기도 하고 고충처리위원이 되기도 한다.
지금 가장 바람직한 사례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재정을 지원해 3월 1일자로 출범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공동대표 임순례, 심재명)인 것 같다. 영화계 개개인의 사례들을 여기로 가져가면 논의 과정을 거쳐 권력형 상습적 성폭력 유형을 골라내 공론화하거나, 모종의 법적 조치를 취하거나 하는 역할을 기대해본다. 직종별 그룹 인터뷰로 여자들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열어주어도 좋을 것 같다

글 조선희 <한겨레> 문화부 기자를 거쳐 <씨네21> 편집장을 지냈으며 한국영상자료원장,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역임했다.
장편소설 <열정과 불안>, <세 여자> 등을 펴냈다.
그림 박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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