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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1월호

풍자는 대안적 사회에 대한 상상력 혁명 위기일수록 비평 정신이 필요하다
지난 12월 9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날은 긍지(矜持)의 날이다. 시인 김수영이 쓴 어느 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피로(疲勞)도 내가 만드는 것 /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의 날>, 1955. 2)이라고 할 때,
12월 9일은 불인(不忍)한 권력에 맞서 싸워 우리 모두가 승리한 ‘긍지의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저 4·19가 그랬고,
6·10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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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비롯한 ‘11월 혁명’은 아직 진행형이다. 따라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2월 9일의 결과가 11월 혁명의 모든 성격을 규정한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0차에 이른 촛불시위는 대한민국의 백성들이 더 이상 권력자들의 ‘개·돼지’가 아니라 각성한 민중이 되었음을 선언하며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위대한 시민혁명의 과정이라고 보아야 옳다.
대통령 탄핵 이후 형성된 소위 ‘탄핵 정국’은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언명한 바 있는 ‘공위기(空位期, interregnum)’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민중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공위기라는 개념은 한 국왕이 사망하고 나서 후계자가 즉위하기까지의 시간적인 간격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람시가 <옥중수고>에서 “위기란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공위기에는 매우 다양한 병적인 징후들이 출현한다”라고 적어놓은 단상에서 비롯한다. 여기서 말하는 ‘병적인 징후들’이란 파시즘적 반동까지를 포함하는 의미임은 말할 나위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싸움은 광장의 열기에만 취하는 게 아니라, 나와 당신이 사는 일상의 리듬을 바꾸는 일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촛불시위의 현장은 광화문광장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일터에서, 삶터에서, ‘촛불’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촛불시위에서 확인한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다. 촛불시위는 좌우 진영 논리가 아니라, 상식과 몰상식의 싸움이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재확인하는 싸움의 과정이었다.
광화문 텐트촌에서 농성하는 문화예술인들을 비롯해 자발적 시민들이 연출한 무수한 비폭력 직접행동에서 그런 가치들을 재확인하고 모두가 직접민주주의를 학습하는 과정이었음을 잘 안다.
<독재에서 민주주의로>라는 책을 쓴 비폭력 직접행동 연구자인 진 샤프(Gene Sharp)는 말한다. “독재자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강력하지 않고, 민중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라고.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예감하는 상상력의 혁명

특히 촛불시위에서 확인한 풍자(satire)의 미학은 ‘예시적 정치’를 예감하게 하는 상상력 혁명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예술가-시민, 혹은 시민-예술가들이 스스로 연출하고 함께 즐기는 풍자의 양식은 자발적 불복종, 비협조, 비폭력의 저항 정신을 드러내는 동시에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경험을 느끼게 하는 사건으로 작용했다.
대의(代議)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를 넘어, 새로운 대안적 사회로의 전환을 예감하게 하는 상상력 혁명이라고 하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닌 것이다. 국왕 앞에 선 민중의 대표를 의미하는 대의(代議)민주주의를 넘어 내가 사는 삶터와 일터에서 어떻게 민주적 자기 조직화의 모델을 구현해야 할지에 대한 시적 사유와 직접적 실천이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리라.
다른 삶이 가능하고, 다른 사회가 가능하다는 점을 입으로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주말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드는 것으로 자족할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에서 책읽기 모임 같은 동아리를 만들고 텃밭을 함께 일구는 일 같은 다양한 ‘접촉면’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의 리듬을 바꾸는 일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위기’ 시대의 풍자는 일종의 호전적인 아이러니(irony)라는 점에 대해 더 숙고해야 할지 모르겠다. 국가의 실체란 결국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능력이고, 독재권력의 본질이란 우스꽝스러운 허구에 불과하다는 점에 대해 고민하고 예술적으로 폭로할 필요가 있다. 조짐은 좋다. 여성과 장애인을 비롯해 약자를 혐오하는 풍자가 시민들의 외면을 받는 것에서도 여실히 알 수 있다.
위기를 의미하는 크라이시스(crisis)는 그리스어 크리시스(krisis)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크리틱(critic, 비평)이라는 말도 바로 ‘크리시스’에서 파생되었다. 크리틱이란 본래 위기 상황과 깊은 친연성을 갖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헌법적 가치가 훼손되는 지금 같은 위기 상황일수록 크리틱 정신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 상황이 그렇다. 그러나 우리 모두 ‘긍지’를 잃지 말자. 긍지(矜持)라는 한자어는 내가 창(矛)을 지금(今) 지니고(持) 있다는 의미다. ‘11월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예술가-시민이여, 시민-예술가여, 우리 손에서 풍자라는 ‘창’을 아직은 놓지 말자. ‘나’들의 안전과 안녕을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안전과 안녕을 위해!문화+서울

글 고영직
문학평론가
그림 손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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