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막작, 카라보스의 <흐르는 불, 일렁이는 밤>(©vincent muteau).
2 폐막작, 예술불꽃화랑의 <길&Passage>.

원초적 소리와 울림을 통한 치유의 예술
불과 물을 소재로 한 작품들

올해의 축제 프로그램에는 유독 불과 물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불과 물이라는 기본적인 자연 요소가 가지고 있는 원시성과 상징성은 현대 예술 축제가 담아내야 하는 공동체적 가치와 위로의 제의적 오브제로 유효한 소재이며, 실제로 많은 축제가 특유의 축제성을 표현하기 위해 채택하고 있다.
이번 서울거리예술축제의 개막작으로 소개되는 설치형 퍼포먼스인 프랑스 카라보스(Carabosse)의 <흐르는 불, 일렁이는 밤>은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물길인 청계천을 따라 다양한 철제 구조물 및 와이어에 불꽃이 일렁이는 화(火) 1700여 개를 설치하는 작품으로, 불과 물을 동시에 활용하며 청계천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을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불이 지니는 원형성으로의 회귀와 물에 일렁이는 불빛의 환영은 아름다운 환상을 불어넣는다. 9월 30일(금)부터 10월 2일(일)까지 3일간,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청계천은 청계천이면서도 청계천이 아닌 장소, 그리고 일상과 환상의 경계이자 사색을 통한 힐링의 장소가 될 것이다.
한편 축제의 폐막작은 그동안 거리예술축제 현장에서 빠질 수 없었던 불꽃 효과를 주요 오브제로 다루는 작품이다. 한국의 예술불꽃화(花·火)랑과 프랑스의 카르나비흐(Karnavires)의 합작 <길&Passage>는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 공식 인증 작품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의 여정을 불꽃의 강렬한 이미지로 길(Passage) 위에 그려내는 이동형 거리극이다. 청계천에서 시작해 세종대로를 거쳐 서울광장에 이르는 이 공연은 인생길의 고비를 넘기듯 길을 따라 얽혀 있는 이야기를 배우들과 관객이 함께 걸으며 나눈다.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 나누는 하나의 길 위에 모두의 인생이 있고, 불꽃으로 표현되는 그 찬란한 삶의 여정을 뒤돌아보며 서로를 치유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10월 2일(일)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끝장대로’의 마지막 프로그램이다.
이외에도 불과 물이라는 요소가 갖는 원시성과 생명력, 치유의 힘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품을 더 만날 수 있다. <길&Passage>가 불꽃의 강렬하고 찬란한 이미지를 통해 죽음과 삶의 여정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사색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라면 스페인에서 온 데브루 벨트작(Deabru Beltzak)의 <불꽃 드럼>은 동네를 떠돌아다니는 소란스러운 불꽃 악마를 재치 있게 그려낸 공연이다. 스페인의 전통적인 불꽃 양식을 지니고 있으면서 원시적인 리듬의 드럼 연주가 더해져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또한 제주도 해녀들이 삶과 죽음의 한계에서 내뱉는 숨비소리에서 착안한 창작집단 숨비의 <물의 경계, 바람의 노래>는 투명한 물기둥 안에서 이어가는 위태로운 퍼포먼스로 현실과 꿈, 도시의 숨막히는 삶에서 깊은 호흡을 마시는 듯한 찰나의 생명력을 선사한다. 극단 노뜰은 도시민이 바쁘게 거니는 빌딩 숲 속에서 족욕을 하듯 편안하게 발을 담그고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하는 공연을 마련했다. <서울의 물>은 한국, 일본, 호주 3개국 공동 합작 작품으로 물을 통한 치유의 시간, 도시의 가속도 속에서 만나는 느림의 여유와 머무름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또한 불과 물 외에도 원초적 제의와 즉흥 소리내기로 공간의 에너지를 증폭시켜 관객과 사회를 치유하는 공연이 있다. 보이스씨어터몸MOM소리의 <도시소리동굴>과 스페인의 무용 단체 오가닉(Organik)의 <울음 섞인 외침>이 그것이다. 도시 곳곳 서로 다른 소리의 반향을 품고 있는 공간들을 찾아 이동하는 장소 특정형 보이스(voice) 공연인 <도시소리동굴>은 전자음이 배제된 소리와 공간의 울림만으로 솔직하고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서로가 만나서 공명하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다. <울음 섞인 외침>은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전통적인 소리와 움직임을 결합한 무용 공연으로 한숨에 내지르는 공격적이고, 공명이 있으며, 길게 유지되는 외침(소리)이 표현하는 소통의 힘에 집중한다.

3 국내 공식 초청작, 보이스씨어터 몸MOM소리의 <도시소리동굴>.
4 국내 공식 초청작, 극단 노뜰의 <서울의 물>.

5 해외 공식 초청작, 극단 KTO의 <눈먼 사람들>(©Marcin_Wozniak).
6 국내 공식 초청작, 극단 몸꼴의 <멀리있는 무덤>(©daiyoon lim).

거리에서 만나는 문학
문학을 원작으로 한 거리예술

거리예술을 종종 도시의 시(詩)라고도 한다. 각박한 도시의 일상 속 오아시스와 같은 감성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고, 도시의 일상을 상징과 은유를 통해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거리예술 공연이 탄생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과 시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다음 세 작품 역시 이번 축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수작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포르투갈의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거리예술 작품으로 재해석한 폴란드 극단 KTO의 <눈먼 사람들>은 문학을 베이스로 한 거리 예술 작품에서 강세를 보이는 폴란드의 거리예술 작품이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시력을 잃는다. 전염병처럼 퍼지는 이 증상에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눈이 멀고 세상은 혼란으로 뒤덮인다. 정부는 눈먼 이들을 병원에 가두고, 갇힌 사람들은 그 안에서 그들만의 사회를 형성한다. 눈먼 자들 사이에도 계급이 생겨난다. 그 안에 단 한 명의 눈멀지 않은 자가 존재한다… 결코 짧지 않은 문학적 텍스트를 거리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구현해낸 이 작품은 이번 축제의 필견 코스다.
같은 극단의 또 다른 작품 <순례자들>은 T. S. 엘리엇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모든 소지품을 하나의 트렁크에 담을 수 있는, 같은 스타일과 같은 얼굴의 순례자들은 집과 직장 사이에서 유예된 21세기의 새로운 인류, 즉 우리 자신의 모습을 풍자한 것이다. 또한 극단 몸꼴의 <멀리있는 무덤: 거리에서>는 김영태 시인의 <멀리있는 무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갈 곳 잃은 절망 속 행위하지 못하는 행렬, 그리고 그들을 막아서는 바람의 이야기를 깊이 있는 고찰과 새로운 무대 언어로 표현하는 공연이다. 이 두 작품이 표현하는 거리의 시(詩)는 축제 속 시공간의 맥락과 결합돼 새로운 의미를 가지며, 고전문학이 갖는 불멸의 보편성은 동시대성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재해석된다.

7 해외 공식 초청작, 서울거리예술착작센터의 <깃털병정>(©R_BENDER).
8 해외 공식 초청작, 창작중심 단디+스토커씨어터의 <시간의 변이>.

다국적, 무경계의 거리예술
한국 거리예술의 성장, 국제 공동 제작 작품

보통 축제의 공연은 해외팀과 국내팀의 프로그램으로 나뉘게 마련이다. 그런데 올해 축제의 프로그램에는 해외 작품과 국내 작품으로 나누기가 애매한 국제 공동 제작 작품이 다수 포진해 있다. 최근 공연예술의 추세가 국제 공동 제작으로 이루어지기에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결코 쉬운 작업 방식은 아니다. 국제 공동 제작 작품이 많다는 것은 한국 거리예술이 그만큼 많이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국제 공동 제작 작품 은 초연 이후가 더 중요하다. 이번 축제에서의 공연이 초연인 작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지만, 지난하고 힘든 과정을 거쳤을 국제 공동 제작이 어떤 결과물로 태어날지, 그리고 이후에 어떻게 자라날지 함께 지켜보는 것도 좋겠다.
<시간의 변이>는 호주의 신체극 단체 스토커시어터(Stalker Theatre)와 한국의 버티컬 공연팀 창작중심 단디, 서울시대표비보이단 드리프터즈크루가 함께 만들었다. 호주와 한국에서 2년여의 제작과정을 거쳐 마침내 태어나는 작품으로 버티컬 퍼포먼스, 현대무용, 그리고 비보이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영상 미디어 파사드와 인터랙티브 디지털 프로젝션 기술을 결합해 극적인 장면들을 연출해낸 신작이다. 역사의 위에 선 ‘나’와 미래가 될 ‘우리’의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으로 프레이밍하고, 기억이 변이하는 접점에서 피어나는 시적 환상으로 현대 도시의 신화를 그려낸다.
앞서 소개한 프랑스 카르나비흐와 한국의 예술불꽃화(花·火)랑이 함께 만든 작품이나 한국·일본·호주 합작의 <서울의 물> 외에도 국제 공동 제작 작품이 더 있다. 프랑스의 거리무용 안무가 얀 뢰르(Yann Lheureux)가 한국예술 종합학교 무용원 학생들과 함께 만드는 <레드 서클>, 프랑스 극단 오스모시스(Osmosis)의 안무가 알리 살미(Ali Salmi)가 한국 농촌에서 리서치를 마치고 농부들이 땅을 일구는 과정과 그 움직임으로부터 착안해 동작을 만들고 한국의 무용수와 배우가 출연하는 <내 땅의 땀으로부터>, 프랑스 서커스 연출가 뱅상 고메즈(Vincent Gomez)와의 서커스 창작 워크숍에서 배운 서커스 기예를 바탕으로 우리만의 서커스 움직임을 탐구하는 작품 <깃털병정>, 프랑스의 서커스와 한국의 파쿠르, 전통연희, 무술 등의 움직임으로 익숙한 도시의 에너지를 새로운 공간의 역동성으로 표현하는 창작그룹 노니의 <역:Station:驛> 등이다. 이 공연들은 축제에서 관람할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작품이다.

9 국내 공식 초청작, 창작그룹 노니의 <역:Station:驛>.
10, 11 해외 공식 초청작, 서크 후아주의 <소다드, 그리움>(©Fanny Broyelle).

현대 도시의 동화, 서커스를 조명하다
시각적인 경이로움과 스펙터클의 집합,
서커스예술

그동안 거리예술과 서커스예술은 가까운 사이로 지내왔고 지금도 그렇다. 수많은 거리예술축제에서 거리예술의 하부 장르로 서커스 공연을 다루고 있다. 물론 거리예술에 속하지 않는 서커스 공연도 있다. 그러나 예술 장르의 종속 관계를 떠나서 인간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시도는 서커스를 매력적인 장르로 만들었고, 특히 서커스예술이 갖는 시각적인 경이로움과 스펙터클이 도심 속 거리에서 관람객의 시야를 붙잡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상의 공간에서 놀라고 싶다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움직임에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도시의 수직적 구조를 넘어서는 해방감을 느끼고 싶다면, 서울거리예술축제의 서커스 공연을 관람하자.
축제 기간 중 서울광장의 잔디밭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바퀴 두 개가 줄로 연결돼 움직이는 장치가 설치된다. 이 장치는 프랑스의 공연 단체 서크 후아주(Cirque Rouages)의 공연 <소다드, 그리움>의 무대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추방당한 남자는 바닷가에 서 있다. 무심한 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그는 향수를 일으키는 달콤한 옛 추억을 회상한다. 마치 지속적으로 오가는 과거의 파도인 듯, 끊임없이 움직이는 두 줄의 케이블 위에서 네 개의 몸은 균형을 이루며 공중그네, 줄타기 등 다양한 움직임으로 굉장히 시적이고 서정적인 이야기를 보여준다.
호주 브리즈번의 촉망받는 젊은 서커스 공연 단체도 있다. 카서스 서커스(Casus Circus)의 <니딥>은 4명의 공연자가 서로의 몸을 밀고, 당기며, 치우치고, 실험하는 것을 반복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존재하지 않을 법한 몸의 결합이 경이롭게 만들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빌딩 숲 사이의 허공을 점유하는 이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섬세한 연기는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제목부터가 재미있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다)>는 프랑스의 서커스 단체 콜렉티브 드 라 바스쿨(Collectif De La Bascule)의 공연이다. 다섯 명의 아티스트와 한 개의 시소가 등장하는 이 공연은 높게 날기, 제어 불가능한 아크로바틱, 예측 불가능한 연쇄적인 움직임, 명쾌한 저글링을 함께 보여준다. 단순하지만 복잡하고, 우연인 듯하지만 섬세하게 짜인 연속적 움직임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올해 서울거리예술축제 자유참가작 공모 당시 특히 해외 단체의 반응이 뜨거웠다. 항공료를 부담하고서라도 서울거리예술축제에 오고 싶어 한 단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해외시장에서 서울거리예술축제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방증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해외 서커스 단체의 신청이 많았고, 규모는 크지 않지만 새로운 관점과 연출로 서커스를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거나 야외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공중 곡예를 시도하는 팀들이 선정되었다. 일상 속에서 작은 것의 위대함을 좁은 공간에서의 아크로바틱과 서커스 기술로 표현한 스페인 라 페케니아 빅토리아 센(La Peque a Victoria Cen)의 <거인>, 여성의 드레스를 부풀리는 데 사용되는 크리놀린과 함께하는 여정을 서커스적 움직임으로 표현한 이탈리아 마르티나 노바(Martina Nova)의 <크리놀린의 여정>, 영화 <미녀 삼총사>에서 따온 장난기 가득한 세 여자의 우정을 담은 핀란드 와이즈 풀스(Wise Fools)의 <찰리의 천사들>, 단정하고 섬세한 기교, 짧지만 아름다운 공중 서커스를 보여주는 캐나다 기욤 앤드 마리(Guillaume & Marie)의 <듀오트라페즈>는 신선한 실험과 젊은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서커스다.

12 해외 자유참가작, 와이즈 풀스의 <찰리의 천사들>.
13 해외 공식 초청작, 카서스의 <니 딥>(©Sean Young, SYC Studios).
14 해외 공식 초청작, 콜렉티브 드 라 바스쿨의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15 국내 공식 초청작, 앨리스킴의 <쉬크>.
16 국내 공식 초청작, 온앤오프 무용단의 <파란 운동화>.

다시 보고 싶은 거리극
한국 거리예술의 역사와 주요 작품

한국의 거리예술 단체들이 작품을 만들고 축제에서 소개한지 1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어떤 작품들은 단체의 레퍼토리가 되어 여러 차례 공연되기도 했고, 어떤 작품들은 초연 이후 공연할 기회가 없어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올해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는 한국 거리예술 역사를 정리하고 기록하기 위한 이동형 전시를 제작했고, 서울거리예술축제에서도 이 전시를 이어간다. 한국 거리예술의 역사를 정리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또한 그동안 한국의 거리예술축제에서 소개된 작품 중 다시 보고 싶은 거리극을 선정해 이번 축제에서 공연하니 놓치지 말자.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니 챙겨 보자.
2008년 과천한마당축제에서 공연한 이후, 2009년 프랑스 살롱 거리극축제, 프랑스 모를레 거리예술축제 ‘FAR’에 초청받아 공연한 앨리스킴의 <쉬크>는 외모 지상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여자의 모습을 절제된 언어와 마임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잡지, 찻잔, 잠옷, 욕조, 요리 도구 등 사회적 의미로 여성을 대표하는 오브제가 전하는 불편한 메시지는 아름답고, 늙지 않고, 날씬한 여배우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관객들을 조롱하며 무려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작품의 메시지가 유의미함을 강조한다. 온앤오프 무용단의 <파란 운동화>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파란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이 활기차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펼치는 거리무용 공연으로 2012년에 서울거리예술축제에서 소개된 작품이다. 이번에 다시 보고 싶은 거리극으로 선정되면서 일반 시민 30여 명과 워크숍을 통해 함께 만드는 시민참여형 공연으로 새롭게 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