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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3월호

무한한 창작, 무한한 상상력

쿼드의 자기소개서

옛 동숭아트센터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둔 핸드레일을 만지며 극장 입구까지 걸어가는 동안 이곳이 관객을 위한 배려가 가득한 극장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묵직한 출입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진입하는 순간, 그 생각이 바뀌었다.

“쿼드의 특징 중 하나는 장애인 관객뿐만 아니라 장애인 스태프까지 생각했다는 점이에요. 어차피 블랙박스이기 때문에 장애인 관객의 진입은 프로시니엄에 비해 수월해요. 하지만 갤러리까지 진입하기는 쉽지 않죠. 우리는 ‘만약 스태프가 장애인이라면?’이라고 가정했습니다. 다만 신축이 아니라 리모델링이라서 구조 전체를 변형할 수 없기에, 작은 리프트를 설치해 기능을 보완했습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스태프도 무대와 갤러리, 프론트 갤러리까지 모두 이동할 수 있도록 0레벨로 맞춘 것이죠.”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1-5번지. 대학로극장 쿼드의 옛 자리 번호다. 이 번호의 원래 주인은 1989년 문을 연, 국내 첫 민간 복합문화 공간 동숭아트센터였다. 지하에는 중극장 규모의 동숭홀, 지상 5층에는 소극장이 있었으며, 한때 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이었던 동숭시네마텍(하이퍼텍 나다)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던 곳. 그러했던 시절이 있을 터인데, 개관 20주년을 훌쩍 넘기고도 세월의 흐름은 이겨내기 어려웠던 듯싶다. 서울문화재단은 2016년 이곳을 매입해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플랜을 시작했다. 그렇게 동숭아트센터는 예술인을 위한 공간 ‘예술청’이자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로, 또 프로시니엄 극장이던 동숭홀은 ‘대학로극장 쿼드’로 재탄생했다.
이름이 달라졌고, 지번 주소는 도로명 주소로 바뀌었지만, 극장은 여전하다. 프로시니엄에서 블랙박스로의 변화는 드라마틱하지만,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숭홀의 단단하고 묵직한 기둥과 경사형 천장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눈 깜짝할 새 건물 하나가 사라지고 금세 버젓한 건물이 세워지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 요즘이지만, 쿼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곳에 스민 문화적 의미와, 사람과 예술에 새겨진 기억을 간직한 채 동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시절과 현재를 잇는 사람, 리노베이션 설계 단계부터 쿼드 준공과 현재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한 정태환 무대감독의 뒤를 따라 극장의 어둠을 누볐다.
쿼드는 기존의 프로시니엄 극장을 블랙박스로 만들기 위해 기본적으로 기존 구조를 모두 트고 0레벨로 평편하게 맞췄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이나 세종S씨어터 같은 여타 블랙박스 극장과 견주어볼 때 형태가 상대적으로 정방형에 가까워 가변형 극장으로 활용하기에 더 용이하다. 수납식 객석은 210석, 모듈로 움직이는 이동식 객석은 162석으로 전체 372개 객석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최대 관객 수는 260여 명으로 예상된다. 이동식 객석은 공연에 따라 프로시니엄형·런웨이형·아레나형·양방형·자유형 등 다양한 구성을 만들어낼 수 있고, 심지어 객석 공간을 무대로 삼고 반대편에 객석을 배치하는 역방향형도 가능하다.
기존 공연장의 건축 구조를 최대한 활용한 덕에 쿼드는 블랙박스 극장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시니엄 형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무대 옆으로 포켓(측면 준비 공간)이 있어 주어진 공간 전체에 객석을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또한 기존 극장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무대 상부 공간을 보존한 덕에 최신식 시스템으로 무대 그리드를 구성할 수 있고, 수납식 객석 위쪽의 천장부에도 호이스트와 트러스가 설치돼 있어 무대와 객석의 구분 없이 창작자가 원하는 무대 효과를 대부분 구현할 수 있다.
관객 또한 훤히 바라볼 수 있는 갤러리(무대 장치를 매달 수 있는 벽면 공간이자 통로)는 객석을 기준으로 1층에서 3층까지 계단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이곳은 스태프를 위한 공간이자 배우의 무대가 되기도 하고, 때때로 객석으로 사용된다. 난간과 각종 장치는 최대한 탈부착이 가능하도록 설계해 유동성을 확보했다. 이로써 쿼드는 블랙박스 극장 이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은 셈이다.
무대 바닥 곳곳에 존재하는 트랩도어와 무대 승하강 장치는 쿼드의 일등 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모난 모양으로 뚫려 있어 무대 아래로 연결되는 공간인데, 이곳으로 이동식 객석을 비롯한 무대 장치의 운송이 가능하며 출연자의 등퇴장 효과도 연출할 수 있다. 계단이나 리프트를 이용하면 캣워크부터 갤러리, 그리고 무대 피트까지 연결되는 셈이다.
이쯤 되니 쿼드를 그저 ‘블랙박스’라고 부르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다. 블랙박스의 얼굴을 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해주기를 바라며 예술가와 관객을 기다리는 21세기형 극장이라고나 할까. 앞으로 쿼드가 보여줄 변화는 무한하다.

“극장의 천장부와 기존의 프로시니엄 아치 상단부가 기울어 있다는 건 사실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이에요. 쿼드가 천장이 좀 높기도 하고 객석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 많은 분들이 느끼지는 못하지만, 제게는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죠. 그 점 역시 리모델링 단계에서 최대한 보완하고 여러 가지를 조정하면서 상·하수에서 모두 그리드에 진입할 수 있게끔 최대한 편의성을 확보했습니다.”

“공연장은 문이 많을수록 좋아요. 연출가와 배우들은 피할 수 있고, 숨을 수 있는 공간을 좋아하죠. 하지만 블랙박스는 대부분 벽으로 막혀 있어요. 막을 사용하거나 세트를 활용해 숨을 수는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구조적으로 그런 부분을 받쳐주면 창작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해서 훨씬 재밌게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설계 단계에서 극장 곳곳에 다양한 공간을 만든 거죠.”

“쿼드가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니 현재로서는 공간을 다양하게 사용해줄 팀을 기다리고 있어요. 어쨌든 이 공간을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만든 사람으로서 우선 다양하게 사용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제일 큽니다. 지금도 그런 작품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고요. ‘무대지기’로서 쿼드는 블랙박스지만 ‘다른 블랙박스 극장과 다르네?’ 하는 이야기가 나왔으면 하는 욕심이 있어요.”

김태희_[문화+서울]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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