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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3월호

최우람의 사람을 향한 확신

<작은 방주>, 2022, 폐종이 박스, 금속 재료, 기계 장치, 전자 장치(CPU 보드, 모터), 210x230x1272c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요즘 이 작가를 모르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있다. 미술계에서는 ‘최우람’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지난가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작은 방주》가 소셜미디어에서 전례 없이 뜨거운 화제를 모으면서 대중에게도 확실하게 이름을 각인했다. 특히 2013년 서울관 개관을 기념하는 현장 제작 설치 프로젝트 이후 같은 공간에서 꼬박 10년 만에 선보인 전시는 작가에게도 뜻깊은 의미가 있다. 전시가 막을 내리기 전부터 어느새 신작에 몰두하기 시작한 최우람 작가를 직접 만났다.

<검은 새>, 2022, 폐종이 박스, 금속 재료, 기계 장치, 전자 장치, 가변설치 (3),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원탁>, 2022, 알루미늄, 인조밀짚, 기계 장치, 동작 인식 카메라, 전자 장치, 110x450x450c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많은 사랑을 받은 전시를 마무리하며

“만감이 교차합니다. ‘현대차 시리즈’는 그동안 많이 기다렸던 기회예요. 미술관 전시에서만 할 수 있는 모험에 도전했는데 관람객의 과분한 사랑까지 받으니 저도 너무 좋습니다. 기간이 길어서 그런지 전시가 이제 거의 제 일상이나 다름없어요. 이번 전시는 저에게 하나의 밑거름이 됐어요. 그동안 작품을 제작하면서는 무언가 ‘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확신이 서지 않는 부분을 공허하게 채워 나가기도 했거든요. 그랬더니 오히려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항상 뚜렷한 확신을 갖고 작업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어요. 과거의 실마리가 풀렸다고나 할까요? 기존의 생각을 무리해서 덜어낼 필요는 없지만 표현 방식을 새롭게 확장하는 계기가 된 거죠. 덕분에 다음 작품을 위한 새로운 실험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최우람은 2022년 9월 전시가 개막한 후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전시장에 갔다. 신작의 반응도 궁금했지만, 복잡한 메커니즘을 지닌 작품이 문제없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 덕분에 많은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관람객의 반응이 좋으니까 기뻤죠. 결국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니까, 전시장에 관람객이 들어차면서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수많은 군중이 다 같이 작품을 둘러싸면서 비로소 작품과 전시가 온전히 완결에 이르는 순간을, 작가로서 많이 즐겼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평소 인간을 둘러싼 갖가지 주제를 탐구하는 작가에게는 또 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실제로 제 작품 자체가 관람객을 모으는 건지 궁금했어요. 요즘 소셜미디어에서 굉장히 많은 현상이 일어나요. 제 작품을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전시장을 찾아오신 분들도 많았고요. 그런데 아무리 소문난 맛집이라도 직접 가보고 실망하기도 하잖아요. 단지 소셜미디어에서 유명한 사례만 보고 전시장에 왔다가 타인의 욕망이 자신에게도 투영돼 덩달아 좋다고 느끼는 건 아닌지, 주관적 시각으로 대상을 마주하기보다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감정에 도취하는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이런 이야기가 전시 주제 중 하나예요. 사람들이 살면서 자신의 욕망을 따라가는가 혹은 자신의 욕망이 존재하는가 하는 근원적 물음이요. 하지만 현실의 문제를 뒤로하면, 제 작품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자 경험이었어요.”
작품을 보려고 줄까지 선 관람객의 모습은 작가의 작품 중 하나이자 전시 제목인 <작은 방주>2022를 연상케 했다. “방주에는 모든 사람을 다 태울 수 없다는 전제 조건이 있잖아요. 방주에 탈 수 있는 정원은 한정적이고 그 사람들만 재난에서 벗어나죠. 전시장에 관람객이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만원 버스 같았어요. 이번에도 관람객분들 덕분에 비로소 방주가 완결에 이르렀죠. 사람들이 가득한 전시장에서 관람객이 느낄 감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마치 방주에 타려고 하는 것처럼 관람객의 밀도가 높아지고 전시장 안이 붐비고 온도가 올랐어요. 그러면서 조금씩 불편함을 느끼는 군중의 감정 또한 작품의 요소 중 하나로 자리했죠.”
특히 전시장의 메인 홀인 서울박스에 설치된 <원탁>2022과 <검은 새>2022 작품이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거대하고 특징적인 공간을 채우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을 터. 최우람은 공간을 구성할 때부터 작품이 어떻게 보일지, 어느 방향에서 관람객이 들어와 작품을 마주할지, 작품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점과 높이는 어떨지 수많은 요소를 미리 철저하게 계산했다. “딱 1년 전에 전시를 제안받았어요. 신작으로 채워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죠. 제 작품은 하나 만드는 데도 1년이 걸리니까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현대차 시리즈’는 그동안 기다리던 기회였거든요. 또 평소에 꿈꾸던, 대형 프로젝트로 공간을 장악해보자는 결심이 서서 전시를 수락했어요. 조각가는 큼직한 프로젝트에 대한 열망이 있거든요. 그때부터는 과거에 실현하지 못한 디자인까지 다 꺼내서 고민하고, 구상 단계부터 전시장 도면을 옆에 두고 진행하면서 VR로 3차원 드로잉을 했어요. 공간의 분위기, 높은 천장과 거대한 크기에서 오는 느낌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했습니다.”
거대한 규모도 한몫했지만, 재료가 주는 임팩트도 컸다. 그의 작품에서는 폐종이 박스, 방호복 천, 폐자동차 부품 등 일상 재료가 첨단 기술과 극적으로 어우러진다. 특히 작품 <원탁>에 쓴 지푸라기가 작품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종합적 연구로 태어난 산물이에요. 처음에는 인형을 대체 무슨 형태로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사람 모양이지만 영혼은 없어야 하고, 머리 없이 육체만 남겨야 하는 등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허수아비가 떠올랐는데. ‘살아 있지 않은 인간 인형’에 딱 맞는 거예요. 소재는 지푸라기로 결정했죠. 지푸라기 인형 하면 흔히 저주 인형이 떠오르잖아요. 영혼을 잠시 깃들게 했다는 주술적 의미도 있고, 영어로 지푸라기 인형strawman에서 온 ‘Strawman Arguments’라는 심리학 용어도 있어요. 다행히 스토리텔링 면에서도 잘 맞아떨어진 재료예요.”

사람의 힘으로 완성하는 기술

최우람의 작품은 정교한 움직임만 봐도 알 수 있듯 섬세한 제작 과정이 필요하다. 작업에 참여하는 인원도 많다. “일단 제 작업실에서 저 포함 세 명이 고정적으로 움직여요. 설계, 콘셉트 구상, 작업 공정 총괄, 전시 디자인 등을 맡죠. 제가 작품의 아이디어와 움직임을 설계하면, 그 안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이슈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결하고요. 혼자서는 절대 다 못 해요.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서 로봇공학 박사님 팀, 음악가, 작가 등 다양한 인원의 도움을 받았어요. 넓게 보면 모터나 부품을 만들어주는 공장 관계자분들도 있고 한 작품마다 20~30명은 반드시 결부돼 있죠. 운 좋게 좋은 팀을 꾸려서 점점 확장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기술적인 몫을 확실히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저는 조금 더 감각적인 데 치중하고 싶은데,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참 어려워요. 이번에는 적시에 좋은 사람들과 긴밀하게 협업하면서 작품을 완성해냈어요.”
기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제작 과정이 까다로울 것 같다. “일단 지금 뭘 하고 싶은지 찾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구체적인 아이디어 스케치가 나오면 설계를 시작하죠. 하지만 원하는 모습을 바로 표현하기는 어려우니까 끊임없이 실험을 거듭해요. 하드웨어를 고안하고, 움직이게 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작업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죠. 조립 과정, 세부 표현이나 마무리하는 시간도 필요하고요. <원탁>의 지푸라기 인형이 최대한 가볍게 움직이면서도 동시에 기나긴 전시 기간을 잘 버텨낼 수 있도록 견고해야 하니까 계속 실험을 거쳤어요. 뼈대를 넣고 사람의 평균 키, 관절 길이를 전부 계산해서 사람처럼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3개였다가 공간에 맞춰 18개로 늘렸어요.”
<작은 방주>도 마찬가지다. “방주의 날개가 70개인데요, 한꺼번에 다 만드는 게 아니라 처음에는 하나만 만들어서 세 달 정도 계속 구동, 연구, 수정한 다음 확신이 생기면 여러 개를 만들죠. 원탁은 모터를 제어하는 PID 컨트롤이라는 기술을 썼어요. 제 작품이 굉장히 기술적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기술이 먼저는 아니에요. 제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을 관람객과 공유할 확신이 들면 기술은 그다음이에요. 작품의 재료고 중요한 수단이죠.”
그렇다면 설계부터 구현까지 지난한 과정 속 어려움이 닥쳐 방향을 틀어야 한 적은 없을까? “아무래도 새 장치를 만드니까 기술 오류를 피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해결해요. 처음에 떠올린 작품의 외형이나 움직임, 느낌 등은 끝까지 가져가요. 작품 방향을 바꾸거나 기술적으로 수정하더라도 어떻게든 될 때까지 해내려고 노력합니다. 집착에 가깝죠.”
이처럼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꼭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최우람이지만, 처음에는 <원탁> 작품의 위를 굴러다니는 공(머리통)이 균형을 못 잡아 애를 먹었다. 원래 공이 테이블 위에서 계속 움직이면서 떨어질 듯 절대 떨어지지 않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공이 굴러갈 방향이나 위치를 계산했는데, 수학적·물리적 세계와 현실은 달랐다. 전시 중에 어쩔 수 없이 공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겼다. 그런데 이런 변수가 전시에서 오히려 극적인 효과를 낳았다. 테이블에서 공이 떨어지는 장면을 직접 본 관람객의 반응이 오히려 뜨거웠던 것.
“관람객 덕분에 오히려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했어요. 원래 공이 떨어지면 테이블이 멈추도록 설계했거든요. 하나의 게임이 멈추는 거죠. 그때 공을 주워서 다시 테이블에 올리는 관람객이 게임의 주최자가 된다는 색다른 의미가 생겼어요. 그래서 처음 의도와 다르게 공이 떨어졌는데도 그대로 두기로 했죠. 또 가끔 테이블이 부르르 떨리는데 사실 기계 자체로 보면 별로 좋지 않은 이슈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떠는 모습이 마치 작품이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더군요. 공이 자기 앞에 떨어지면 로또를 산다거나 전시를 보러 간 날 공이 떨어지지 않으면 실망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은 의미 없이 살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기도 했고요.”

반걸음 앞서 상상하는 사람

이런 무수한 반응을 낳은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무엇보다 작가의 상상력의 원천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 스스로는 다른 사람보다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지 저는 직업상 떠오르는 장면을 스케치해보고 그걸 실제로 구현하는 사람이에요. 이번 전시에 많은 사람이 공감한 건 다들 머릿속에 이미 상상하던 장면이기 때문일 거예요. 현실에 있을 법한 장면이거나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모두의 머릿속에 한 번쯤 스쳐 지나간 장면을 제가 분명하게 현실 앞에 실물로 드러낸 것뿐이에요. <원탁>을 보는 관람객을 보고 ‘공감’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어요. 저는 단지 무언가 실현하기를 좋아해요. 모든 작가가 그래요. 언젠가 스쳐 지나간 장면을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만들듯이 저도 작품으로 만들어요.”
하지만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고민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소설이 영화화되면 실망하기도 하잖아요. 언어의 틈을 본인의 상상으로 채워나가다가 구체적 영상을 만났는데 상상보다 못해서요. 관람객이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감각으로 상상력을 펼쳐나갈 기회가 있을 텐데 제 작품은 이미 움직이고 있으니까 어쩌면 상상력을 차단할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기계에 움직임과 생명력을 주고 여러 내러티브를 담아서 그다음을 상상하게 하는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언제나 반걸음 더 나아가는 게 재미있어요.”
그렇다면 이 집요한 키네틱 조각과 기계 연구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이제는 최우람의 다음 전시를 손꼽아 기다릴 사람들이 많다. “저도 모르겠어요. 알면 재미없죠. 이제 다음 전시는 어떻게 더 재밌게 해 볼까 고민해요. 그것보다 멀리 바라본 적은 없어요. 지금은 내년 겨울에 삿포로에서 열리는 삿포로 인터내셔널 아트 페스티벌Sapporo International Art Festival에 출품할 신작을 준비하고 있어요. 페스티벌 주제인 ‘Last Snow’를 생각하며 구상하고 있고요. 이번에 감사하게도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자신감이 생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실망하게 할까 봐 두렵기도 해요. 하지만 그런 걸로 고민하면 안 되겠죠? 저질러야죠. 앞으로도 실험하고 싶은 작품이 많으니 용감하게 준비해보겠습니다.”

글 아트나우 수석 에디터 백아영

사진 Studio K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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