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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5월호

산업의 골목에서 문화의 골목까지, 문래동 문래예술공장

문래예술공장은 2010년에 개관했다. 문래동 철공소 거리의 옛 철재상가 자리에 ‘예술공장’이라는 재미있는 타이틀의 창작공간이 들어선 이유는 이곳 문래동에 철을 깎고 용접하고 구부리는 작은 공장, 그리고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문래창작촌이 공존하는 데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공장지대였던 영등포의 지역적 정체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예술 창작 활동의 전초기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이곳 문래예술공장인 셈이다.

문래예술공장은 장르의 경계를 넘어 동시대의 자유로운 실험예술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음악·사운드아트 등 다양한 분야의 국내외 창작자, 기획자, 비평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한다. 구로세무서 바로 뒤편, 영등포화교소학교 옆에 자리 잡은 문래예술공장을 방문한 4월 중순에는 1층의 갤러리M30에서 <고요한 반항(Silent Rebellion)>이라는 제목의 사진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문래예술공장에는 갤러리 외에도 2층의 박스씨어터, 3층의 포켓갤러리·녹음실·영상편집실·회의실, 4층 세미나실·예술가 호스텔 등의 시설이 있다.
문래예술공장의 주요 사업은 데뷔 10년 이하의 예술가 및 단체를 지원하는 ‘비넥스트BENXT’, 음악·사운드아트 분야의 특화 사업인 ‘사운즈 온Sounds On’ 등으로 구성돼 있다. 문래예술공장이 보유한 창작 발표 공간을 활용해 예술인과 예술단체의 연습, 리허설, 발표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할 뿐만 아니라 멘토링, 워크숍, 세미나, 공유회 등 창작 역량 강화와 작품 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철공소와 창작촌의 독특한 공존

오랜만에 문래동을 찾았다. 나는 몇 년 전 이곳 문래동의 아파트형 공장에 있는 사무실의 한쪽 구석을 얻어 친구와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한 적이 있다. 일이 늘 바쁜 것은 아니어서 여유가 좀 있는 볕 좋은 오후가 되면 일없이 문래동의 철공소 골목을 어슬렁거리곤 했다. 그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문래동 골목을 다시 찾았다. 문래역 7번 출구를 나와 며칠 사이 몰라보게 따뜻해진 길을 걸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겨울의 매섭던 바람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작은 벚꽃 잎들은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땅으로 살포시 내려앉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낯익은 골목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문래동 철공소 골목, 사람들은 이곳을 ‘문래창작촌’이라고도 부른다.
예술적 감수성이 충만한 거리 풍경을 기대하고 문래창작촌을 처음 찾은 사람들은 다소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평일 낮에 보는 이곳의 거리는 문래창작촌이라는 이름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기름 냄새와 용접 불꽃이 난무한 ‘체험, 삶의 현장’과도 같은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거대한 철판과 각종 금속파이프가 골목 곳곳을 채우고 있는 틈틈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울긋불긋한 벽화와 독특한 철제 조형물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창작촌’이기도 하다. 문래동 철공소 골목에 늘어선 건물 2, 3층에는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찾아온 예술가들의 공간이 있고, 1층에는 철판을 구부리고 자르고 용접하는 철공소가 있다.
예전 방림방적 자리에 들어선 아파트형 공장의 사무실과 철공소 골목이 바로 지척이었던 관계로 나는 이곳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하거나, 일찍 퇴근하는 날에 일부러 빙 돌아 철공소 골목을 지나 지하철역으로 가곤 했다. 금속 장인들의 끈적한 땀 냄새가 가득한 골목에는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색다른 느낌의 카페나 식당이 숨어 있었다. 너무나도 다른, 공존이 어려워 보이는 두 개의 영역이 어깨를 붙이고 같은 골목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렇게나 생뚱맞은 조합이 극적으로 어울리는 곳이 바로 문래동이다.

기술과 예술의 상호 존중

문래동의 철공소 장인들은 이곳의 변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표정으로 묵묵히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는 일도, 생각도 다른 기술자들과 예술가들이 공존하는 방식에는 서로의 일과 삶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 그것은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곳 문래창작촌이 지속하기 위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봄볕이 따뜻한 4월의 월요일 오후, 문래동의 작은 공장 사이로 색다른 느낌의 몇몇 식당이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문래창작촌을 나와 문래공원 교차로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가면 사람들이 ‘오백채마을’이라고 부르는 오래된 골목이 나타난다. 1940년대 일제강점기, 전쟁의 병참기지 역할을 했던 영등포 공장지대에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 조선주택영단(대한주택공사 전신)이 대규모로 지은 영단주택이 500채나 됐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고치고 덧대고 용도가 바뀌어 예전의 흔적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조성된 바둑판 같은 길을 품은 키 작은 마을이 주변의 아파트단지에 둘러싸여 흡사 섬처럼 남아 있는 모습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문래동의 많은 대형 공장은 지금은 거의 다 사라지고 아파트단지, 아파트형 공장, 대형마트, 오피스텔로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문래동의 골목에서는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어렵사리 찾을 수 있다. 문래동의 골목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시간의 골목이다. 개발 시대에 한국의 2차산업을 책임졌던 산업의 골목이고, 21세기 도시의 부활을 이끄는 현재진행형인 문화의 골목이다. 이번 주말, 문래동 골목에서 분위기 좋은 카페와 맛집도 탐방하고 시간의 흔적도 찾아보는 여행을 해보는 것 어떨까?

글·그림 정연석_《서울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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