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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2월호

마음이 글이 되는 공간 편지 가게 ‘글월’

편지 가게 글월은 손 편지의 가치를 기억한다. 받는 이의 안부를 묻는 일, 종이에 글씨를 새기는 일,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편지를 읽을 사람을 생각하며 무엇을 적을까 고민하는 일, 어떤 답변이 올까 기대 혹은 걱정하는 일. 편지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 글월이 모두 간직하고 있다.

원목 서랍을 열면 편지 세트가 보인다.

편지의 가치와 정신을 이어갑니다

“글월은 ‘편지’를 뜻하는 순우리말이자, 편지를 높여서 부르는 말입니다. 서울을 기반으로 편지 가게를 운영하며, 편지와 관련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안합니다. 편지 쓰기를 동시대의 문화로 만들기 위한 즐거운 시도를 함께해 주세요. 글월은 편지의 가치와 정신을 이어갑니다.”
2019년 여름, 문주희 대표는 편지 가게 글월을 열었다. 서대문구에 있는 연화아파트의 따뜻한 분위기에 매료돼 아파트가 보이는 맞은편 건물 4층을 택했다. 1975년부터 볕을 받아 바랜 연보라색의 연화아파트 외관과 어울리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그는 글월의 벽을 살구색으로 칠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의 계단을 올라 403호 철문을 열면 살구색 벽, 편지지를 담은 원목 서랍, 두 사람이 앉아 편지를 쓸 수 있는 의자와 책상, 그리고 창문 바깥으로 연보라색 외관의 연화아파트가 보인다. 글월이 주로 다루는 편지는 발신자 한 명이 수신자 한 명을 생각하며 쓴 손 편지다. 문주희 대표는 이전에 잡지 에디터로 일하며 인터뷰를 진행하고 기사를 작성했다.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인터뷰 기사를 정리할 때마다 인터뷰이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유명 인사나 전문가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을 인터뷰하며 대화를 나눠도 같은 매력을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그에게는 한 사람을 위한 편지를 작성할 공간이 필요했다. 글월은 어디에도 발표하지 않는 인터뷰 편지를 작성하는 곳으로 시작됐다.
‘레터 서비스’가 글월이 제안한 첫 편지 서비스다. 일반인 손님이 주제를 선택하면 질문을 준비해 1시간 정도 인터뷰하고, 대화한 내용을 바탕으로 편지를 작성해 한 달 뒤에 보낸다. 사업자 입장에서 효율 좋은 서비스는 아니다. 녹취를 반복하고 정리하고 작성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을 하며 그는 고민했다. “나는 레터 서비스를 왜 계속하고, 이 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효율은 낮을지라도 “자신의 이야기가 어떻게 정리됐을지 가장 궁금할 사람에게 글을 주자”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고 말한다.
인터뷰 내용을 편지 형식으로 작성하니 편지지와 봉투가 필요했고, 직접 만들어 판매도 하는 글월이 됐다. 연화아파트의 바랜 연보라색을 편지지와 봉투에 입히거나 편지 세트 시리즈를 구상해 대표가 직접 그린 그림을 덧댄다. 한 예로 그는 ‘과일 시리즈’의 첫 번째 과일 납작복숭아를 그려 편지 세트를 꾸몄다. 이를 위해 1년 동안 매주 일요일에 화실에서 수채 보태니컬 그림을 배웠다. 이외에도 도서?만년필?엽서?우표를 비롯해 편지와 관련된 여러 제품을 판매한다.

인터뷰하거나 편지 쓰고 싶은 손님을 위한 의자와 책상

편지 쓰기를 동시대 문화로 만들기 위한 노력

글월의 소개 글에 쓰여 있듯 편지 쓰기를 동시대 문화로 만들기 위한 시도는 다양했다. 1월에 새해 다짐이나 목표, 혹은 자신에게 전하는 위로와 응원을 편지에 적으면 6월에 작성자 본인에게 보내는 서비스도 있었다. 도서를 출간하고, 전시에 참여하거나, 편지 주간을 기획하고, 글월의 직접 시도는 아니지만 가수 존박의 두 번째 미니 앨범을 소개하는 영상에 촬영 장소로 제공했다. 펜팔 서비스를 신청하면 글월을 방문하는 얼굴 모르는 사람과 일대일로 편지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문주희 대표가 만든 출판사 봉투북스의 첫 책은 《조금 더 쓰면 울어버릴 것 같다, 내일 또 쓰지》이다. 글쓴이 남하의 두 딸이 부모님 결혼 27주년을 맞아 아빠 남하가 엄마 희에게 쓴 연애편지 50통을 엮어 만들었다. 글월 인스타그램에 적힌 소개 글을 그대로 옮긴다. “사랑과 애틋함이 뚝뚝 흐르는 편지들이 그 시절의 연애를 상상하게 하고 어쩐지 마음을 뭉클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나도 이처럼 편지로 마음을 남기고, 어디 우리 부모님 연애편지도 이럴까 궁금하게 만드는 귀한 기록입니다.” 아담한 공간을 방문한 많은 사람이 편지에 쓴 내밀한 글이 얼마나 무수히 오고갔을까. 문주희 대표는 글월을 열고 한 달이 지난 시점에 인스타그램에 소회를 밝혔다. “편지 쓰는 일이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 달여 가게를 운영하니 제 상상보다 편지 쓰는 분이 여전히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쓰는 것을 좋아하고 펜을 가까이하는, 그리고 무엇보다 편지 쓰기를 주저하지 않는 많은 분과 글월에서 만났습니다. 편지는 사람을 사랑하게 하고, 사랑받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런 ‘편지의 가치’를 사라지게 두지 않고 지키고자 합니다. 겨우 한 달이지만 여러분 덕분에 이 가게를 열기 잘했다고 느낍니다. 더울 때 오픈해 해가 쨍쨍할 때 맞이했습니다. 뜨거운 여름에도 4층 계단을 올라 땀 흘려 찾아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합니다. 편지 가게로서 보여드릴 수 있는 여러 모습으로 만나겠습니다.” 겨울에도 편지 가게는 열려 있다.

편지 가게 글월

주소 서울 서대문구 증가로 10 403호 | 운영 월~토 오후 1시~6시

문의 02-333-1016 | 누리집geulwoll.kr

장영수 객원 기자 | 사진 제공 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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