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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6월호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다크투어의 의미를 돌아보는 시간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라고 시인은 읊었지만, 서울에는 읊을 기억이 별반 없다. 연식은 2000년을 넘겼으나 마일리지는 60년에 불과한 후진국형 신생 도시로 강제 성형수술을 당했기 때문이다. 서울은 16~17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란을 겪고서 인구가 10만 명에서 4만 명으로 줄었지만, 18세기 후반 들어 30만 명이 사는 당대 세계 최대급의 도시로 회생했다. 6·25전쟁으로 도시의 4분의1이 파괴돼 폐허가 됐다가 6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초현대도시로 탈바꿈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억의 대부분이 사라졌다. 서울은 역사도시의 향기를 잃었다.

다크 투어리즘이란?

우리는 흔히 좋은 곳, 빛나는 것만 찾아다니는 ‘그랜드투어’를 즐긴다. 하지만 어두운 역사 속으로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가는 ‘다크투어’의 울림도 만만찮다. 돌이켜 보면 인간과 자연이 남긴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을 어지간히 찾아다녔다. 필자에겐 하와이 진주만, 뉴욕 그라운드 제로, 히로시마 원폭돔, 사이판 반자이 절벽, 폼페이 화산 폭발 유적이 기억에 남으며, 국내를 꼽자면 비무장지대(DMZ)와 거제 포로수용소, 제주 4·3평화공원이 그렇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란 영국 글래스고 칼레도니언 대학의 말콤 폴리와 존 레넌이 1996년에 발표한 <JFK와 다크 투어리즘(JFK and Dark Tourism)>이라는 논문에서 처음 등장했다. 사람들이 저격당한 케네디 대통령을 기리고자 댈러스에 방문하는 이유를 분석한 논문이다. 저자들은 2000년 이 논문을 바탕으로 《다크 투어리즘: 죽음과 재난의 매력》이라는 책을 펴냈다. 용어의 기원에서 알 수 있듯이 다크투어는 전쟁이나 학살, 자연재해 같은 역사의 어두운 현장을 찾아가는 시공간 여행이다.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애도 관광이나 역사교훈 관광쯤으로 부를 수 있다. 다크투어의 유형은 전쟁, 묘지, 식민, 대학살, 감옥, 유령, 자연재해 등 7가지 테마로 분류된다. 그러나 지금은 암살, 슬럼, 유배, 순례, 표류 등으로 폭이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용산 전쟁기념관과 대전차방호시설인 도봉산 평화문화진지, 용산 미군기지가 7가지 테마 분류법 중 ‘전쟁’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서대문형무소가 ‘감옥’에 해당한다. 국립현충원과 장충단공원, 망우리공원,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 절두산 순교성지 등은 ‘묘지’에 포함될 것이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난 경복궁 건청궁, 김구 암살의 현장인 경교장, 여운형이 암살당한 혜화동 로터리, 박정희 대통령이 저격당한 옛 궁정동 안가 터는 ‘암살’이라는 테마로 묶인다. 아직도 서대문독립공원 등 청산되지 않은 일제 잔재가 숱하다. 군사독재와 민주화 과정의 비극적 장소로는 남산 옛 중앙정보부 터와 남영동 대공분실이 대표적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일어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도 인간이 낳은 자연재해, 즉 인재의 현장에 속한다.

서울, 가슴 아픈 기억의 도시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서울은 가히 다크투어의 도시라고 할 만하다. 서울에는 근현대사의 비극적 상황이 압축적이고 집중적으로 새겨져 있으며 비극의 흉터가 부지기수다. 가깝게는 개항기의 혼돈과 식민지, 전쟁과 분단의 참극 그리고 산업화의 상처가 남아 있으며, 또 건축물로, 터와 표석으로 층층이 얼룩져 있다. 도시 전체를 다크투어의 대상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중 서울의 양대 랜드마크인 ‘경복궁과 남산’ 일대는 서울 최대의 다크투어 코스다. 조선의 태조는 경복궁을 창건하고, 정문인 광화문과 동·서십자각을 세워 대궐을 완성했다. 이후 서울의 법궁인 경복궁을 비롯한 5대 궁은 식민지 수난사로 얼룩졌다. 역사소설이나 사극에 등장하는 구중궁궐은 1923년 서십자각의 철거와 함께 역사소설 속으로 사라졌다. 일제강점기, 구중궁궐인 경복궁 해체는 수순에 따라 진행됐다.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연다면서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 홍례문을 헐어낸 뒤 전시관을 짓고, 잔디를 깔았다. 각종 명목으로 모두 6차례의 엑스포가 경복궁에서 열렸다. 경복궁 전각과 문, 누정이 철거된 뒤 경매를 통해 요정과 별장으로 팔려나갔다. 500개 동이 넘던 경복궁 전각의 90% 이상이 사라졌다. 1927년 조선총독부 건물이 완공되자 총독부를 가린다며 광화문을 지금의 건춘문 자리로 쫓아냈다. 경복궁 안은 엑스포장을 꾸민다면서 헐고, 경복궁 밖은 전차 선로를 놓는다면서 뭉갰다. 이때 광화문의 월대, 궁궐 담장, 서십자각, 영추문, 해태상이 뜯겨 나가거나 붕괴되거나 옮겨지거나 사라졌다. 사대문 중 숭례문(남대문)과 흥인지문(동대문)의 성곽은 전차가 다니기 비좁다면서 헐어냈고, 돈의문(서대문)은 아예 없앴다.
남산길은 나라 잃은 부끄러움과 인권유린의 기억이 겹겹이 버물린 영욕의 다크투어 장소다. 남산골한옥마을(옛 청학동, 조선헌병대사령부)~서울소방재난본부(중앙정보부 유치장)~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옛 녹천정, 통감관저·총독관저)~문학의 집(중앙정보부장 공관)~서울유스호스텔(중앙정보부 남산본관)~서울애니메이션센터(통감부·총독부)~남산원(노기신사)~한양공원비(왜성대공원)~백범광장(조선신궁)~안중근의사기념관(조선신궁)까지 이어진다. 식민 지배의 상처를 씻어내지 못한 채 광복과 6·25전쟁 그리고 분단, 산업화 과정에서 거듭 훼손된 남산은 흉터투성이다. 경성호국신사(용산동 2가) 자리에 해방촌이 들어섰고, 적산 처리 과정에서 동국대, 서울중앙방송국, 숭의학원, 미군 통신부대, 외인주택 등 각종 정부기관과 학교, 군 및 종교단체가 파고들어 잠식당했다. 동상과 기념물, 터널과 남산타워는 남북 체제 경쟁과 정치 이데올로기의 상징물이다.
남산 옛 조선통감 관저 터에 ‘위안부 기억의 터’가 조성돼 있다. 한일병탄조약이 체결된 치욕의 통감관저 터에 <대지의 눈> <세상의 배꼽>(임옥상 화백의 작품)을 세웠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이 아픈 역사가 잊히는 것이다”라는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말씀이 새겨져 있다. 한국어·영어·중국어·일본어로는 또 이렇게 적혀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이젠 드러내야 한다. 우리도 본격적인 다크투어에 나설 때가 됐다. 망각하지 않을 심산이라면 ‘국치 투어’라고 이름 붙여도 무방할 듯하다. 바야흐로 다크투어의 시간이다.

글 노주석_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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