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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4월호

더 나아가기 위한 멈춤 재난의 위기 속 문화예술 길 찾기
순식간에 전 세계로 번져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우리 사회가 위축됐다. 이 전쟁은 언제 끝날지, 위축된 심리가 얼마나 빨리 회복될지 가늠할 수 없다.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지만 희망을 잊지 말자. 14세기 유럽을 덮친 흑사병은 당시 인구의 3분의 1 이상을 죽음으로 몰고 갔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서막을 여는 계기가 됐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바우하우스’로 디자인 혁명이 일어났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추상미술의 새로운 움직임이 번져갔다. 전염병이나 전쟁 같은 재난이 일순간 문화계를 위축시키지만 그것을 거름 삼아 예술은 새로운 꽃을 피워낸다.

‘방구석 1열’로 모여드는 관객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하기 전에 문화계가 먼저 패닉(공황 상태)을 경험했다. 예정됐던 내한 공연과 대규모 행사는 줄줄이 취소됐고 지난 2월 23일 국가 위기경보 단계가 최고 수준의 ‘심각’으로 격상된 것을 기점으로 공연장·미술관·박물관 등 문화시설들은 일제히 문을 닫았다.
황망했다. 예술가들을 비롯해 관계자들은 오랜 시간 준비한 공연을 접어야 했고, 계획된 전시는 중단이 불가피했으며, 그 와중에도 개막을 강행한 문화행사들은 ‘무관객’을 감수해야 했다. 사람이 많은 공간에 가는 것을 자제하는 분위기에 서점마저 텅 비었다.
속수무책이었다. 예술인복지재단 등 정부 기관에서 예술인 긴급 지원에 나섰고, 서울문화재단을 비롯한 문화재단들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예술가들에게 활동비를 우선 지급하는 등 대책을 마련했다.
고육지책이라도 짜내야 했다. 문화 수요자들을 공연장·전시장으로 끌어낼 수 없다면 예술 콘텐츠를 집 안에서 즐길 수 있게 하자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매장 방문 고객이 줄어든 대신 배달·배송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늘었으며, 영화관을 찾지 않는 대신 집에서 즐기는 VOD 매출이 급등한 것을 문화계에도 접목한 것이다.
직접 전시장이나 공연장을 방문하는 게 어려워진 사람들은 온라인 생중계로 공연을 즐기고, 가상현실(VR)로 전시를 관람한다. 공연은 무대 위의 열기를 느껴야 생생하고, 전시는 직접 대면해 공감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지만, ‘방구석 문화생활’에 대해 관객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코로나19로 조기 폐막한 전시를 ‘온라인 전시투어’로 재포장해 SNS에 게시했고 조회 수는 일주일 만에 1만 4,000회를 넘겼다. 이는 미술관이 SNS 계정을 개설한 지 6년 만에 거둔 최다 조회 기록이었고 호평이 잇따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온라인 소장품전과 VR관람을 마련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 국·공·사립박물관 263곳의 소장품 178만 건을 공개하는 ‘e뮤지엄(emuseum.go.kr)’을 활용해 일반인이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기획 공모전도 진행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서울시 ‘잠시 멈춤’ 캠페인의 일환으로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영웅’을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1시간가량 생중계했다. 평일 낮이었지만 유튜브 실시간 접속자 수는 2,800여 명, 페이스북 실시간 접속자 수는 350여 명에 달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무용 작품 <히트 앤 런(Hit&Run)>의 경우 현장은 ‘무관중’이었지만 네이버 생중계로 공개돼 긍정적인 댓글이 잇따랐다. “실제로 보고 싶다” “극장에서 보고 싶은데 아쉽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지금은 문화예술 생태계가 붕괴를 우려할 정도로 위기에 직면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코로나19가 촉매로 작용해 문화 콘텐츠를 VR·AR과 접목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등 문화의 새로운 장(場)이 열릴 것이라는 ‘청신호’가 포착되는 지점이다.

안드레아 만테냐 <성 세바스티아누스>. 1480년 작. 루브르 박물관 소장

질병을 앓고 나면 면역력이 생기듯

지난 역사를 살펴보자. 미술사학자인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흑사병 시대를 선례로 들며 “예술적 성과가 일순간 후퇴하고 창의력의 원천인 여행이 막히면서 예술가들의 활동도 멈췄지만, 질병 극복을 위해 의학과 과학이 발달하는 이성주의 시대와 함께 르네상스가 열렸다”고 설명한다. 몸이 검게 타들어 간다고 해서 흑사병(Black Death)이라 불린 페스트는 1347년에 유럽 전역을 강타했고 90%대의 치사율로 당시 유럽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중세 사람들은 신에게 의지하고 기도를 약 삼아 버텼지만 오히려 혼란의 시대가 이어졌다. 병이 보이지 않는 화살처럼 몸을 파고든다고 생각한 중세인들은 화살로 처형당했다 살아난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그림을 걸어놓고 치유를 염원하거나, 성당이 아닌 시장 안에까지 ‘성모자상’을 그려놓는 등 심리적 의지처를 갈구했다. 물론 그림이 병을 낫게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럽을 휩쓴 전염병은 “피렌체 도시 자체가 거대한 무덤이었다”고 한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1351) 같은 문학작품, 의학의 일종인 해부학을 연구해 인물화에 접목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거장의 활약에 상당한 자극제가 된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6·25 전쟁이 삶의 근간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와중에도 예술가들이 새로운 미래를 꿈꿨다. 먹고 살 길 막막하던 시절 김환기·유영국 등의 화가들은 모던아트협회나 신사실파 등을 결성했고, 부산에 모여 작업하면서 한국 현대미술의 물꼬를 틔웠다. 전장에 뛰어든 종군화가들은 전쟁 기록화만 남긴 게 아니라 전쟁의 고통을 승화한 새 경향의 작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질병 이후에는 상흔만 남는 게 아니라 ‘면역력’이 더해진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는 “현대미술이 어떻게 상실을 극복하고 사회적 상처까지도 어루만지는지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현대의 많은 미술가들은 재난을 거치며 잃어버린 것들, 사랑하는 이들과 사회에 대한 믿음 등 소중한 것들을 ‘올바르게’ 기억하기 위해 작업했고 관객 및 대중과 이를 공유했다”고 강조했다. 잠시 멈춤의 상태인 지금이 다가올 미래를 준비할 기회다.

글 조상인_서울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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