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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4월호

작가의 방
‘작가의 방’에서는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를 선정해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본 게시글은 한겨레신문의 <서울&>에 소개되는 ‘사람in예술’에 동시에 게재됩니다.
강은일 해금 연주자 모든 딸을 위한 해금 연주

“세상은 지금까지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어요.”

두 줄의 선율로 전통음악의 세계화에 앞장선 해금 연주자 강은일 씨는 2월 22~2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 <오래된 미래: 내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를 제작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이 공연은 자신의 딸부터 엄마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네 세대를 넘나드는 여성들의 대서사시다. 원래는 신라 경덕왕 때, 죽은 누이를 그리워하는 ‘제망매가(祭亡妹歌)’에서 착안했는데, 엄마와 할머니가 겪었던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부제를 ‘제망모가(祭亡母歌)’로 정했단다. “태어날 때 아들인 줄 알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강 감독은 손자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부엌에서 홀로 드시는 할머니를 보고서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한국 전통음악의 선두주자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그였지만 때로는 세상이 던지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여성으로서 꿈을 펼치기 쉽지 않았다고 했다. 4대에 걸친 여성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연에 각자의 영역에서 명성을 떨치는 네 작곡가가 참여했다. 우선 잉태를 주제로 하와이와 제주도의 민요 느낌을 살린 도널드 워맥, 스페인 카탈루냐 내전과 한국의 내전을 교차해 전쟁과 여성을 표현한 모이세스 베르트란, 미국 이주민 당사자로 사회적 차별에 힘들어 했던 우디 박과 밝은 여성상의 희망을 던지는 김성국까지. 이들이 들려주는 네 공연은 현대음악, 클래식 음악, 전자음악(EDM), 전통까지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음악이 차례로 이어진다. 거기에 공연의 마지막은 강 씨의 제자들로 구성된 10명의 딸이 출연하는데, “이제는 자신감을 갖고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세상의 모든 딸에게 전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은일은 한양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했다. KBS국악관현악단 단원, 경기도립국악단 해금 수석, 서울예술대학교 한국음악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단국대학교 국악과 교수, 해금연구회 이사, 해금 앙상블 활 예술감독, 강은일해금플러스 대표, 서울돈화문국악당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동아국악콩쿠르(1998), KBS국악대상(2004),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06),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2019) 등을 수상했다.

한태숙 연출가 극한 상황 속 인간성 찾기

“진정한 인간다움은 무엇일까?”

“주변의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는 인간의 이중적 잣대를 드러낸 <대신 목자>(3월 6~15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의 한태숙 연출가의 말이다. 동물원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버려서는 안 될 것을 버린 것에 대한 동조와 자책을 일깨우는 심리극이다. 어린이의 팔을 물어뜯은 늑대가 조사 도중에 우리를 탈출하는 소동이 발생한다. 늑대를 죽이라는 여론의 압박을 받는 사육사가 늑대를 풀어줬다고 의심받는다. 심지어 수사관도 승진에서 배제된 채 자기 극복을 하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이다. 남자에게 배신 당한 어머니는 아들을 버린 과거가 있다. 그 남자도 자식을 잃은 상처를 안고 있다. 이처럼 등장하는 모든 배역이 ‘세상에 버려진 것들’로 가득 채워졌다. 무엇이 이들을 극한으로 내몰았을까. “집 앞 야트막한 산자락에서 마주친 길고양이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꼈어요. 인간에게 내쫓긴 동물이 하찮은 존재로 인식되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을 더해 인간의 비정한 단면을 그려낸 설정은 40년 이상 이어온 한 연출가의 경력에서도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첫 희곡이자 대표작 <서안화차>, 근친상간 때문에 죽음으로 귀결되는 <오이디푸스>도 내밀한 심리 상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40년 전 일간지 신춘문예 희곡으로 등단했지만 기계적으로 반복된 방송작가 일에 상실감을 느껴 12년 만에 연극계로 돌아왔다. 컴백작도 자매의 경쟁심으로 범죄에 이르는 심리 스릴러로 정했다. “내가 원치 않던 삶에서 보여도 보지 않고, 그동안 우리 사회에 당면한 상황을 외면하면서 살아왔던 인간의 부끄러움이 숨어 있어요. 우리가 스스로 정한 인간다움의 기준에 정답이 없어요. 연극을 본 모든 관객이 이런 인간 모습의 다양성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한태숙은 서울예대에서 극작을 전공했다.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자장자장 자>(1981)가 당선된 뒤 12년 만에 뒤늦게 연극계에 돌아왔다. <레이디 맥베스>로 서울연극제 작품상·연출상, <서안화차>로 김상열연극상과 동아연극상 작품상·연출상, <오이디푸스>로 이해랑연극상, <대학살의 신>으로 대한민국 연극대상 연출상을 받았다. 현재는 극단 물리 대표와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배삼식 극작가소소한 것들, 사람 냄새 나는 것들

“한국의 셰익스피어, 배삼식”

국립극장 개관 70주년 기념공연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국립극단(예술감독 이성열)이 올해의 첫 공연으로 선정한 <화전가>(당초 2월 28일~3월 22일 공연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잠정 중단)의 원작자를 이렇게 소개했다. 국립극단이 배 작가에게 삼고초려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이니, 여기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가늠할 만하다. “처음엔 고사했지만, 70주년이 주는 무게에 짓눌리기보다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죠.” 작품은 공교롭게 국립극장이 개관한 1950년이 배경이다. 6·25를 앞두고 오직 서로에 의지한 채 살아가는 여인들의 이야기. ‘화전가’는 원래 여인들이 꽃잎으로 전을 부쳐 먹으면서 하루를 즐기는 봄꽃놀이다. 무대엔 엄마와 딸, 며느리 등 규방 여인들만 9명이 등장한다. 당시의 남자들은 독립운동을 위해 집을 나갔기 때문에. 어머니의 환갑 잔치를 위해 모인 여인들이 하룻밤 사이에 벌이는 수다인데, 일제 강점기엔 할 수 없었던 마지막 화전놀이의 추억을 딸과 며느리에 심어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을 전한 것이다. 작품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역사적으로 풀지 않았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로 시간을 채웠다. 이것은 배 작가가 평소에 “사람 냄새가 나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밝힌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요즘은 너무 많은 의미에 치이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 소소한 기쁨은 놓치고 있죠.” 남자들이 대의를 위해 떠난 것에 대비해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작은 즐거움을 표현했다. 그는 연극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예술은 그 자체만으로도 배가 부르지도, 갈증을 달래주지도 않아요. 극 중 어머니가 허망한 아름다운 순간을 딸과 며느리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처럼 연극도 그런 역할이 아닐까요? 누군가에겐 무의미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거든요.”

배삼식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로,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하얀 동그라미 이야기>(1998)를 시작으로 번역극과 창작극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정극과 마당놀이, 음악극에 이르기까지 여러 무대예술 장르의 밑그림을 빼어난 솜씨로 그려내고 있다. 제15회 대산문학상 희곡부문(2007), <열하일기만보>로 동아연극상 희곡상(2007), <하얀앵두>로 동아연극상 희곡상(2009)을 수상했다.

김서령 소설가 소설과 일러스트의 만남

“보수적인 한국 문학계에 이런 시도가 괜찮을까?”

등단한 지 17년이 지났지만 새로운 것을 고민한 김서령 소설가는 2012년 이후 네 번째 소설 《연애의 결말》을 내놓았다. 페이스북 프로필에 ‘소설, 에세이, 번역도 하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소개하지만 소설가 말고는 되고 싶은 것이 없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소설은 그에게 숙명이었다. 지난해엔 직접 출판사를 차려 등단 유무에 상관없이 좋은 작가를 발굴하는 일도 시작했다. 이렇게 나온 책은 출판사의 이름을 내건 ‘폴앤니나 소설시리즈’. 지난해 10월, 회사를 시작하면서 발간한 첫 번째 소설 《달콤한 밤 되세요》(노정 저, 드로잉메리 그림)는 마케팅을 위해 텀블벅에서 모금을 했는데 목표액의 5배가 넘었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이어 2월 12일에 발간한 두 번째 《애비로드》(최예지 저, 살구 그림)와 세 번째 그의 작품엔 공통점이 보인다. 소설과 일러스트의 만남. 지금까지 걸어온 한국문학과 전혀 다른 길을 나서는 이유가 뭘까. 여기에 김 작가는 따분하고 어두운 문학계에서 “어떻게 하면 독자의 손에 책을 쥐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기 때문이란다. 만화를 찢고 나올 듯한 표지는 소설의 책장을 넘기고픈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는 이미 포털사이트에서 고정 팬을 확보한 일러스트 작가 제딧을 섭외해 그림을 부탁했다. 출판사 이름도 자신이 ‘애정하며’ 즐겨 봤던 만화 <이상한 나라의 폴>의 두 주인공에서 따왔다. “단지 원고만 던져주고 교정본이 나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기성 출판사 방식이 아니에요.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해요. 제가 좋아서 입에 달고 살았던 주제곡처럼 저만의 방식으로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발간하는 책마다 화제를 몰고 오는 스타 작가이지만 남들이 걷지 않은 길을 선택한 그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독자를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에 있지 않을까.

김서령은 포항에서 태어나 ≪현대문학≫ 신인상(2003)으로 데뷔했다. 소설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어디로 갈까요≫, 장편소설 ≪티타티타≫, 산문집 ≪우리에겐 일요일이 필요해≫ ≪에이, 뭘 사랑까지 하고 그래≫, 번역 출판 ≪빨강머리 앤≫ ≪에이번리의 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두 번째 이야기≫, 공저 ≪피크≫ ≪캣캣캣≫ ≪무민은 채식주의자≫가 있다. 현재는 도서출판 폴앤니나에서 책을 만들고 있다.

주철환 프로듀서 스타 PD의 인생 후반전

“재미있게 살다가 의미 있게 죽자.”

TV에서 수많은 히트 프로그램을 기획·연출한 프로듀서(PD)였던 주철환은 공석이든 사석이든 인생의 좌우명을 이렇게 되새겼다. ‘열심히 살기’보다 ‘즐겁게 살기’를 강조하던 그였기에 전혀 색다른 것도 아니다. 지금은 나영석·김태호 등 이름이 제법 알려진 예능 피디(PD)들이 있지만 스타 피디의 원조가 주철환이라는 데 이견을 제시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15권의 책을 발간할 정도로 독자와 소통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국어교사로 시작해 국문학 박사로 오랫동안 글을 써온 그는 출판계에서도 편집자가 가장 좋아하는 필자로 정평이 나 있다. 틈날 때마다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신문이나 각종 지면을 통해 펼쳐온 그가 지난 2월 28일에 자신의 좌우명으로 제목을 붙인 에세이집 《재미있게 살다가 의미 있게 죽자》를 펴냈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근무하는 문화재단의 대표로 그가 일하는 스타일을 2년간 바로 옆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평소에 ‘더다이즘’을 자주 이야기하는데 이는 예술의 생활화를 통해 ‘더’ 새롭고 ‘다’ 행복하게 살자는 뜻을 담고 있다. 2020년 봄 학기를 마지막으로 방송사와 학교를 오가던 40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자유인이 되는 그에게 이번 신간은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선언이자 다짐이다. 속이 상하면 겉도 상한다고 믿는 그에게 사실 정년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한마디로 영원한 청년이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며 쓴 즐거운 출사표다. 영원히 현역일 것 같은 그에게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넉넉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17, 18번째 책도 준비 중입니다. 문화예술 현장 보고서인 ‘주철환의 더다이즘’부터 대중가요의 가사로 인생을 관찰, 통찰하는 노래 채집가의 이야기 ‘주철환의 음악동네’까지 우리가 인생에서 발견, 발굴해야 할 즐거움의 요소는 끝이 없죠.”

주철환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동북중고 교사로 시작해 문화방송(MBC)에서 <장학퀴즈> <일요일 일요일밤에> <우정의 무대> 등 수많은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그 후 이화여대 교수, OBS경인TV 사장, JTBC 대PD,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2015), ≪더 좋은 날들은 지금부터다≫(2013) 등이 있다.

조숙현 큐레이터 겸 미술비평가 ‘현장 속 큐레이터’ 소개

“기존의 책이 현장의 생생함을 살리지 못했어요.”

편집자 출신의 큐레이터이자 미술비평가인 조숙현 씨가 최근 번역서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큐레이터 되기(Ways of Curating)》를 발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브리스트가 누구인가. 70년 전통을 가진 영국의 예술매체 《아트리뷰》에서 매년 발표하는 ‘현대예술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두 차례나 1위에 오를 정도로 큐레이터의 전설로 꼽히는 인물이다. 지금까지 큐레이터에 대한 번역서가 몇 권 나왔지만 그마저 2015년에 국내에 도입된 일이라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말했다. 조 씨는 졸업 이후 4년 동안 독립 큐레이터 및 월간지 편집자로 일하면서 “생각보다 현대미술 서적의 종류가 많지 않아 책에서 영감을 얻을 기회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한 어느 대학원의 큐레이터과에선 지원자가 급감해 수업이 취소될 정도로 수요가 적은 것도 현실이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대중이 오해하고 있던 ‘큐레이터’를 정확히 알리고 싶어 오브리스트의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은 그의 개인적 매력보다는 학구적 콘텐츠에 집중했으며, 큐레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큐레이터는 단순히 작품을 섭외해 공간에 배치하는 것이 아니에요. 큐레이팅의 모든 과정을 통해 전시 주제에 부합하는 작가 발굴과 연구까지 폭넓은 의미를 갖고 있죠.” 이는 “전시 아카이빙의 역사는 깊은데 큐레이팅과 관련된 도서는 부족하다”고 말한 오브리스트 말처럼 조 씨는 현장에서 겪은 아쉬움을 덜어내고자 지난해 현대미술 전문 출판사인 아트북프레스(ArtBookPress)를 설립했다. “인프라 비용을 줄여서 전문가에게 외주를 맡긴 독립출판사입니다. 발간을 기념하면서 기획자, 번역가, 공간 대표 등 현장의 전문가들과 함께 전시도 열었어요. 모든 답은 현장에서 나오거든요.”

조숙현은 홍익대학교 경영학과에서 학사, 연세대학교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필름2.0≫과 ≪퍼블릭아트≫에서 취재기자로 일했다. 큐레이터 경력으로는 강원국제비엔날레2018 <악의 사전>, 인천문화재단2018 <바로 오늘>이 있고, 김기라×김형규 <X-사랑>에서 디렉터로, 인천아트플랫폼(2020) 입주기획자로 참여했다. 저서로는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2015), ≪서울 인디 예술 공간≫(2016)이 있다. ≪아트인컬처≫에서 2020 YoungPower111로 선정됐다.

글 이규승_서울문화재단 홍보IT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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