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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월호

백진 개인전 <파편>과 박광수 개인전 <영영 없으리> 흑백의 겨울 왕국으로의 초대
코끝이 찡할 정도로 알싸한 찬 기운, 두툼한 패딩과 목도리 없이는 밖에 나가기 두려운 계절, 겨울이다. 삼한사온이 아니라 ‘삼한사미’(3일 춥고 4일 미세먼지)라고 하지만 여전히 겨울의 로망은 쨍하게 맑은 공기와 눈이다. 새로운 결심으로 가득한 1월, 맑고 투명한 겨울을 닮은 전시를 뽑아봤다. 서설(瑞雪)이 내리는 날 찾아보면 좋을 전시다.

1 백진 개인전 <파편> 설치 전경.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제공)

도자로 만들어낸 겨울 숲 백진 개인전 <파편>(Fragment) 2019. 12. 13~2020. 3. 8,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얇은 종이가 층층이 쌓여 기둥을 이뤘다. 그러나 이것은 종이가 아니다. 얇디얇게 빚어낸 도자기다. 종이의 숲이 아니라 도자의 숲이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는 도자라는 전통매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다양한 작업으로 선보이는 작가 백진의 개인전 <파편>(Fragment)을 개최한다. 그의 작업은 꾸준한 실험의 결정체다. 얇은 도자는 쉽게 깨질 것처럼 보이나, 생각보다 견고하다. 1,200℃까지 올라가는 전기가마에서 두세 번 구워냈다. 굽는 과정에서 절반 정도는 깨지지만, 남은 것들은 더욱 단단해진다. 종이나 천처럼 부드럽고 가벼워 보인다.
수많은 흰색 도자 파편을 마치 퍼즐을 맞추듯 화면에 배열한 <공(空)> 시리즈, 긴 띠가 서로 엉켜 형상을 이룬 <간(間)> 시리즈는 마치 회화처럼 보인다. 유약을 발라 구워 만들어낸 푸르스름한 흰색은 맑고 깨끗하게 다가온다. 그림자가 도드라져 조각의 굽음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이라이트는 기다란 도자 파편을 기둥처럼 높이 쌓아올린 <무제>다. 자신만의 ‘레시피’로 제조한 백토(白土)물을 굳혀 만든 얇은 판을 일정한 간격으로 잘라낸 후, 이를 구부리거나 동그랗게 말아 전기가마에서 구워냈다. 벌어지고 깨지고 휘고 덜 휜 파편을 잘 골라내 차근히 쌓아올렸다. 겨울을 맞아 앙상한 가지만 남은 자작나무들이 전시장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무제>는 현재 여의도 서울국제금융센터(IFC Seoul)에 설치되어 있는 작품 <화이트>(Whites, 2012)에 이어 작가가 두 번째로 시도한 3차원 설치 작업이다. 당시엔 도자는 무거울 것이라는 무게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천장에 매달았다면, 이번엔 높이 쌓아올렸다.
작가의 바람처럼 흙이 얼마나 유연할 수 있는지, 다양하게 변할 수 있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미술관 측은 “도자라는 매체가 갖는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2 <깊이 - 사슴 연못>(Depth - Deer’s Pond),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116.8×80.3cm. (학고재갤러리 제공)

디지털 시대의 회화 박광수 개인전 <영영 없으리> 2019. 12. 11~2020. 1. 12,
학고재갤러리 신관

회화작가 박광수의 그림은 ‘숨은그림찾기’ 같다. 하얀 캔버스 위 단순한 검은 선으로 형상을 만들어내는데, 전체 형상의 어딘가에 주인공이 숨어 있다. 이를테면 연못이 있는 산의 풍경을 그린 <깊이사슴 연못>엔 정말 사슴이 있고, <두루미의 숲>에는 두루미가, <부엉이의 밤>에는 부엉이가 있다.
신작인 <깊이?스티커>(2019)는 인물의 형상이 도드라진다. 기억을 더듬어 끄집어낸 듯 희미하고도 거대한 인물 그림자가 정면을 응시, 관객과 시선이 맞닿는다. 내가 그림을 바라보는지, 그림이 나를 바라보는지 모호하다. 흐릿한 원경의 인물과 대조적으로 근경의 도형들은 작고 또렷하다. +, -, × 등 수많은 수학 기호와 부호들, 숫자들, 알 수 없는 알파벳과 한글이 뒤섞여 흘러내린다. 작가는 “거울 표면에 붙은 스티커에 초점을 맞춰 바라보자 뒤에 비친 사람의 형상이 흐릿해진 것에 착안했다”고 말했다. 거울 표면과 그것이 투영한 인물의 환영은 겹칠 듯 가까이 있지만 닿을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다. 하나가 선명해지면 다른 하나는 흐릿해진다. 마치 어릴 적 하고 놀던 ‘매직아이’처럼.
대작인 <큰 여울의 깊이>(2019)는 고향인 철원의 한탄강을 주제로 제작했다. ‘큰 여울’은 한탄강의 옛 이름이다. 겉은 잔잔해 보이나 유속은 매우 빠른 한탄강은 실제 많은 인명사고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작가는 유속이 빠른 한탄강을 모티브로 거대한 도시를 만들어냈다. 일상의 풍경이 사라지고 공상의 세계로 넘어가면서 화면 속 세계가 확장된다. 사람의 얼굴, 철도, 아파트 등 빠른 유속을 타고 확장하며 또 사라진다. 디지털 시대의 회화다.

글 이한빛_헤럴드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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