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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4월호

극작가 한아름
역사를 통해 현재를 말하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역사를 향한 관심이 뜨거운 이때, 공연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한아름 극작가가 아닐까.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와 <영웅>을 비롯한 역사 소재 작품으로 잘 알려진 그다. 인터뷰를 통해 역사물의 매력과 의미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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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달을 쏘다.>와 <영웅>은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으며 여러 차례 공연됐지만, 지금 이 시기에 다시 공연되는 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동시에 공연돼 더욱 그렇다. <윤동주, 달을 쏘다.>는 초연한 지 7년이 됐고, <영웅>은 10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의 뮤지컬 관객 수는 한정돼 있고, 유행에 민감하며 빠르게 변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좋아도 롱런하기 힘든데, 두 작품이 이렇게 오랫동안 공연 될 수 있어서 무척 기쁘다. 제작사의 의지가 강한 덕이고, 두 작품의 관객층이 폭넓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전히 뮤지컬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이 보러 오지만, 평소에 뮤지컬을 잘 안 보던 사람들도 많이 오더라. 아들, 딸을 데리고 오는 가족 단위 관객들이 많고, 군인과 학생, 입시생들도 많다. 입시에 꼭 등장하는 부분이다 보니. 이제는 이 작품들이 그 자체로 브랜드화돼 관객 저변이 넓어진 것 같다. 작가로서는 무척 고맙고 뿌듯한 일이다.

원래부터 역사를 좋아했다고 들었다.

고조선이나 조선 초·중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근대를 소재로한 작품을 많이 하다 보니 자료를 많이 봤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더 관심을 갖게 되더라. 작업을 시작한 초반에는 연도를 굳이 특정하지 않은 작품을 많이 썼다. <왕세자 실종 사건>이나 <죽도록 달린다>, <청춘 18대 1> 같은 작품은 특정한 시대나 실존 인물을 배경으로 하지 않았다. 이후 쓴 <영웅>과 <윤동주, 달을 쏘다.>, <외솔>, <만덕>은 시대와 실존 인물이 정확히 명시된 작품이다.

역사가 어떤 점에서 흥미를 끄나?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많이 하지 않나. 그런 점에서 역사적 인물들에게 흥미를 느낀다. 시대나 상황이 다를 뿐, 인간의 본성과 본능은 거의 같다.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가상의 인물이나 외국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조금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 실재한 인물의 이야기는 좀 더 가깝게 와닿는다. 그리고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덜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요즘은 가르치려 들면 싫어하지 않나.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역사를 빌려서 이야기하면 덜 부대낀다. 아이들에게 아껴써라, 공부 열심히 해라, 라고 말하는 것보다 위인전을 통해 들려주면 효과가 있는 것처럼. 게다가 작가 입장에서는 역사가 고전 같은 느낌이다.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또 드라마라는 게 궁극적으로는 인물의 선택이다. 어떤 성격과 배경의 주인공이 어떤 성장기를 거쳐서 어떤 고난과 역경을 딛고 무엇을 성취했으며 어떻게 평가받았는지, 역사에는 이미 한 인물의 선택과 결과가 모두 나와있다. 이렇게 재미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역사에서 소재를 취해 작품을 쓰게 된다.

역사 중에서도 특별히 더 마음이 가는 이야기가 있나?

그때그때 다르다. 보통은 정사에 가까운 이야기를 좋아하고, 간혹 야사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하기도 한다. 궁궐에 있었던 권력층의 이야기도 좋아하고, 서민의 이야기도 좋다. 하지만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면, 주로 역사를 통해 변질된 인물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 어떤 계기로 인해 변화하곤 한다.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변화한 인물의 삶은 낙폭이 크니까 극적이다. 그런 인물들은 지위나 배경 상관없이 흥미롭다.

역사 소재 작품을 쓸 때, 다른 창작물을 작업할 때와 차이가 있나?

역사에서 소재를 취해도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극화하는거라서, 사료에 기초하건 새로운 인물을 만들건 같다. 다만 역사에 기초하는 내용은 고증을 많이 해야 한다. 내가 늘 하는 이야기지만, 어제도 역사다. 역사를 멀게만 생각하는데, 지나온 모든 시간이 역사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시각에서 정리가 안 된 부분이 많다. 근대사뿐만 아니라 조선, 고조선도 마찬가지고.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개인과 집단, 시대에 따라 무척 다르기 때문에 가장 보편적인 것을 찾는다.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가 그렇듯이, 역사에서도 보편적인 가치를 찾느냐 못 찾느냐에 따라 관객의 마음에 와닿을 수도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사료에 기초한 역사적 인물을 이야기하든 가상의 인물을 이야기하든 극작에서는 그다지 차이가 없다.

고증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자료를 많이 찾는 편인데, 뮤지컬 <만덕>을 쓸 때 만덕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었다. 제주라는 지역에 대한 것이나 시대상도 마찬가지였고, 자료가 빈약했다. 만덕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만덕의 삶뿐만 아니라 당시의 상거래 문화, 상단에 대한 정보도 필요했다. 사료에 기반을 두고 썼지만 그 사료가 모두 맞는지 알 수도 없고, 제주에 사시는 분들은 정보가 틀렸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시대별, 지역별로 교수님들께 자문을 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분들은 편하게 쓰라고 말씀하신다. 그걸 뭐라고 명명하느냐는 다를 수 있지만,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의미다. 인간의 도리나 상식, 이윤을 내기 위해 장사하는 건 언제든 같다. 자료로 남아 있지 않은 부분은 상상을 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상식에 기반해 쓴다. 하지만 자료가 있다면 최대한 찾아보는데, 공부하다 보면 자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또 다른 사료를 찾아보곤 한다.

그렇게 인물과 사실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고 그것이 작품에 반영되기도 할 것 같다.

보통 이토 히로부미를 쏘았다는 큰 사건을 제외하고는 안중근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 그에 대해 공부하면서 놀랐던 게 동양평화론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걸 읽는 순간, 안중근이 사상가이면서 경제학자, 굉장히 뛰어난 미래학자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양평화론은 관념적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었다. 지금 EU의 경제공동체는 이미 안중근이 제안한 것이더라. 한·중·일이 같은 화폐를 쓰고 서로의 장점을 공유해 살자는 내용이다. 이걸 <영웅>에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면 내용이 너무 방대해진다. 고민 끝에 '작은 평화 큰 평화가 어찌 다를 수 있겠는가'라는 가사를 통해 표현했다. 오순도순 앉아서 밥을 먹는 행복한 일상이 깨지지 않는 것처럼, 더 나아가 한·중·일의 동양평화가 지속되는 게 그의 꿈이라는 내용을 <동양평화>라는 제목의 노래에 넣었다. 누군가는 이 내용을 좀 더 찾아보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안중근의 사상가다운 면모를 꼭 보여주고 싶었던 것처럼, 윤동주의 경우에는 서정시인의 모습을 벗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동안 교과서를 통해 그를 서정시인으로 배웠다. 그런데 윤동주의 자료를 다시 열어보니 그는 서정시인이 아니라 저항시인으로 봐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시를 아름답게만 해석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분노를 토하며 시를 읽어내려가는 윤동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관객들이 그의 시가 그렇게 처절한지 몰랐다고 말할 때, 평가절하되었던 윤동주를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에도 가상의 인물이나 사건이 들어가기도 한다.

<영웅>에는 설희라는 가상의 인물이 나온다. 지금은 역사 소재 작품에 여자가 자주 등장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역사는 거의 다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사회적인 활동에 제약이 있긴 했지만 나라를 잃은 슬픔이 남녀가 다르지 않은데, 정말 여자가 없었을까? 여자 중에 지식인이 될 만한 인물이 누구일까 고민한 결과, 궁녀가 떠올랐다. 궁녀들은 공부도 많이 했고 지금으로 치면 고위직 공무원인 셈이니까. 그리고 윤동주가 좋아했던 것 같다고 쓰인 한 줄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선화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 그를 통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 윤동주가 시를 쓰는 데 회의를 느끼고 시인임을 부끄러워할 때, 이선화가 계속 시는 창피한 게 아니라는 말을 해준다. 이 시대의 우리가 윤동주에게 해주는 위로랄까.

역사 소재 작품들을 많이 작업하면서 느끼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우리에게 역사 교육은 입시의 도구 같은 것이 되었다. 우리는 흔히 연애를 교과서로 배웠다고 하면 웃는다. 그런데 사실 역사를 교과서로 배웠다는 것도 웃긴 얘기다.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면,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다. 그런데 공연을 보고 나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재미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또는 이 장면이 좋더라,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느꼈다 등. 뭐든 역사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가 가장 좋은 것 같다. 공연을 본 후 그와 관련된 책이나 자료를 더 찾아볼 수도 있다. 역사에 대한 사실은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지만, 역사의식은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공연과 같은 픽션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역사라는 건 늘 정반합의 과정에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하나일 수 없고, 하나여서도 안 된다.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 나는 <영웅>과 <윤동주, 달을 쏘다.> 말고도 또 다른 안중근과 윤동주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다. 다른 작가들이 다른 시선에서 쓴 작품을 다른 제작사와 다른 배우를 통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다양성이 존재할 때, 인물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이해와 시각이 생긴다.

많은 장점과 의미, 매력이 있지만 어려운 부분과 고민되는 지점도 있을 것 같다.

역사이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유족은 물론이고 역사학자, 일반 관객까지 생각해 굉장히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다뤄야 하는 부분이 어렵다. 사실이지만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 차이도 생긴다. 또 어려운 점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해도 제작사들이 잘 안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역사 소재를 다루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배우들 입장에서도 외국 작품들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한복을 입으면 왠지 촌스러워 보인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여러 면에서 어렵지만 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 거창하게 말하면, 그게 내 몫이고 소명인 것 같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위인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뤄달라고. 그래서 지방에서 공연하든 관이 주체로 하는 것이든, 기회가 된다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가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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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금 또 말을 걸어오는 인물이 있나? 준비 중인 역사 소재 작품이 있는가?

국립발레단의 신작 <호이 랑>을 준비하고 있다. 조선판 <뮬란>이라고 할 수 있다. 효심으로 군인이 된 여성의 이야기다. 전 세계 사람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생각해 제안한 인물로, 국립발레단에서도 흔쾌히 받아줬다. 흔히 발레에서 볼 수 있는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를 벗어나 진취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여성이지만 남성적인 춤을 춰야 한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라. 색다른 발레 공연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서울예술단과 함께 <신과 함께-이승편> 작업도 하고 있다. 아직은 공개하기 어려운 다른 작품들도 있고. 차범석 희곡상을 받은 후, 학교도 그만두고 전업 작가를 선언했다. 예술가로서든 한 사람으로서든, 지금이 경험과 아이디어가 교차하는 좋은 시점인 것 같다. 젊어서는 파격적인 아이디어에 천착했고, 나이가 더 많이 들면 기술만 남을 수도 있다. 그사이에 있는 40대 예술가로서 좋은 작품을 쓰고 싶고 남기고 싶다. 연극과 뮤지컬, 발레는 물론 다른 분야에도 도전하고 싶다. 작가로서 좋은 시기를 굉장히 재밌고 즐겁게 보내고 있으니, 더 많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글 이민선_자유기고가
사진 손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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