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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3월호

책 <서울 백년 가게>와 <1784 유만주의 한양> 서울 유람의 두 가지 방법
서울은 밤낮으로 달린다. 자동차도, 인터넷도, 집값 상승도 하나같이 속도가 빠르니 하루치 뉴스만 놓쳐도 지난밤 사건사고 소식으로부터 저만치 밀려나버린다. 때문에 외국에선 서울을 ‘젊은 도시’라 평하기도 한다. 지난해 봄, 공중보행로 서울로 7017에서 만난 그리스 출신 여행작가는 “느릿한 내 고향 산토리니보다, 빠른 네 고향 서울이 미래도시 같아 좋다”며 찬양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속도에 대한 피로일까. 요즘 들어 ‘변치 않은 옛것’, 이른바 ‘새로운 복고’를 찾아 서울 유람에 나서는 이들이 부쩍 늘어난 낌새다. 속력과 방향을 거슬러 오르는 것들은 연어 비늘처럼 도도한 빛이 난다. 저항과 반발이 만든 빛은 후세대의 영감이 된다. 새것이 지천인 서울에서, 아래 두 권의 책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공간과 인간을 멋지게 낚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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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빚은 단단한 고집들 <서울 백년 가게> 이인우 지음, 꼼지락

얼마 전 을지로 골목 속 무명의 건물들이 지도에서 삭제됐다. 반면 홍대 대로변에는 순식간에 새 건물이 추가됐다. <서울 백년 가게>는 개발 물결에 함부로 동요하지 않고 ‘반세기 이상의 연륜을 쌓아온’ 24곳의 가게를 조명한다. 31년 차 글쟁이이자 <한겨레> 금요 섹션지 <서울&>의 선임기자인 이인우가 ‘가게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성공에 관한 이야기’를 1년 가까이 취재했다.
혜화동 ‘학림다방’에서 커피 향을 타고 시작된 여정은 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난 ‘보안여관’, 하루 1,000그릇의 냉면을 파는 ‘을밀대’, 3대가 쇠를 벼리는 ‘동명대장간’, 인사동의 오래된 문방구 ‘구하산방’, 최초의 재즈클럽 ‘올댓재즈’ 등을 거치며 서울을 지그재그로 가로지른다. 가게의 서사는 그대로 서울 풍속사가 되고, 한국 통사가 된다. 책을 읽는 맛이다. 독서 후 1932년 종로구 자하문로에 문을 연 추탕집 ‘용금옥’에서 추어탕 한 그릇을 주문해보면 안다. 한양 각설이패들이 들이켰던 해장국의 온기가 떠오르고, 경성 거리를 걷다가 해방과 분단을 맞고, 6·25 휴전회담과 부산한 시절을 거쳐, 부리나케 밥상 앞으로 돌아온다.
책은 오래된 모든 것들을 우러른다.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시대에 적합하게 계승하고 확장하는’ 쇄신의 노력을 기록한다. 우리네 인생이 경험과 감정으로 채워지는 것이라면, 시간이 쌓인 가게에서 오감을 채우는 일은 유익하다. 이런 면에서 음반·고서점 ‘클림트’를 두고 평한 저자의 말은 삶의 한 비밀을 흘리는 듯하다. “오늘도 숱한 양서들이 파지가 되는 치욕을 겪으며 사라져가겠지만, 변변한 간판조차 달지 않은 지하상가의 헌책방에는 강물이 흐르듯 책이 흐르고 있다.” 고집이 묘수가 되고, 묘수가 철학이 된 서울 백년 가게들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건실한 땀과 노동의 이야기가 이정표로 다가온다. ‘여행 리스트’가 생기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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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선비의 ‘소확행’ 일기 <1784 유만주의 한양> 서울역사박물관

여기 ‘일기 쓰기’에 천착한 조선시대 청년이 있다. 21세기 서울, 본인의 일기가 이토록 널리 공개될 줄 알았더라면, 18세기의 한양 선비 유만주는 과연 일기 쓰기를 멈추었을까, 이어갔을까?
서울역사박물관의 기획전 <1784 유만주의 한양>(2016. 11. 25~2017. 2. 26)의 전시 도록으로 출발한, 단단하고 재밌는 책을 소개한다. <1784 유만주의 한양>은 전시가 끝난 후에도 ‘유만주’를 기억하려는 이들에게 오래도록 회자됐던 책이다.
유만주는 34살의 짧은 생을 살았다. 큰 벼슬을 하거나 명문을 쓴다는 이유로 역사책에 오르진 못했지만, 21살 때부터 죽기 한 해 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는 근성이 있었다. 그는 일기장에 <흠영>이란 이름을 붙였다. ‘책 속에서 만나는 인간의 아름다운 정신을 흠모한다’는 뜻이라 한다. 책은 30살을 맞은 유만주가 1784년의 한양 살이를 쓴 일기를 정리했다.
“백면서생에 소심했다”는 평도 있지만, 그의 일기를 읽다 보면 요즘 말로 ‘소확행’을 실천한 시대에 앞선 인물 같기도 하다. 유만주는 정월이면 새벽까지 친구들과 달밤을 걷고, 춘삼월에는 정릉으로 꽃구경을 갔다.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제사를 줄여도 된다고 여겼고, 서실 창문에도 이름을 붙이는 자유가 있었다. 하지만 가세가 기울고 과거에 번번이 낙방하며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눈병과 온갖 질병에도 시달렸다. “밤에 서적을 내루에 옮겨두고 깨끗이 정리하다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잤다.” 그럼에도 읽기와 걷기,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무명 청년이 남긴 일기장이 18세기 후반 한양 풍속사를 증언하게 된건 이 ‘기록병’ 덕이다. 유만주는 “<흠영>은 제가 완성하지 못한 글이니 불태워주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무슨 일인지 전 권이 후대에 전해진다. 230여 년 후 누군가 당신의 일기장을 발견하게 된다면, 당신은 오늘 어디를 걷고 어떤 한 줄을 쓰겠는가. 책은 서울시민청에 있는 ‘서울책방’에서 판매한다.

글 전현주_프리랜스 기자. 한겨레 금요 섹션지 <1784 서울&>의 객원기자로 서울 여행과 역사, 문화 소식을 쓰고 있다. 기획연재물 ‘3대 사진가의 서울’, ‘우리동네 3·1운동’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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