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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2월호

북촌탁구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서 한다
서울 토박이들이 주로 사는 북촌 계동길에 자리 잡은 ‘북촌탁구’는 평소 탁구장이었다가 주말에는 공연장으로 변신한다. 문을 연 지 이제 겨우 1년이 지난, 20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이지만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 ‘책과 음악이 있는 북촌탁구’로 시작해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북촌탁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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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촌탁구 입구.

2 북촌탁구 내부.

3 공연장으로 변신한 모습.

탁구장과 공연장의 편안한 동거

이 공간의 최대 매력은 탁구장과 공연장의 공존이다. 탁구대는 2대뿐이지만 회원은 30여 명으로, 엄연한 탁구장이다. 연회원과 월회원은 자유롭게 이용하고 비회원은 시간당 이용한다. 북촌탁구 박현정 관장은 청량리에서 100평 규모의 탁구장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오빠가 하던 탁구장을 인수해 4년 넘게 하다가 어머니가 암투병 끝에 돌아가시면서 1년 6개월 정도를 쉬었다. 그러던 중 상암동 ‘북바이북’에 지인들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비슷한 공간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연고는 없지만 좋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북촌에 공간을 알아보다 이 자리를 소개받았다. 직접 와서 보니 작지만 예쁘고 좋았다. “알아보니 이 동네에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더라고요. 탁구는 재미있고 좋은 운동이에요. 혼자 하는 운동과 같이하는 운동은 다르거든요. 탁구대를 놓고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탁구대는 이동과 보관이 쉽고 때에 따라 대형 테이블로도 사용할 수 있어 여러모로 유용하다. 공연이나 행사는 ‘토요일은 이웃북촌’이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열린다. 기타 연주회, 북촌 싱어송라이터 합동공연, 책 낭독회, 와인 강의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박 관장은 이제 탁구장에서 공연장으로 전환하는 데 선수다. 탁구대는 접어서 벽에 밀어놓은 후 바닥에 방석을 깔고 간식거리도 준비한다. 평균 20~30명 정도 오고 50명 넘게 들어온 적도 있다.
탁구는 그렇다 치고 공연기획은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 “쉬면서 서울시 50플러스재단 서부캠퍼스에서 ‘인생학교’를 이수했어요. 공간을 오픈하고는 문화기획 전문가 과정도 수강했고요. 동기와 선생님들은 롤모델이라고 응원해주세요. 여기를 보고 용기 내서 시작한 분도 있고요.” 동기들과 만든 ‘오플밴드’의 연습과 공연도 북촌탁구에서 한다. 박 관장은 밴드에서 우쿨렐레 베이스를 연주한다. 또 다른 한 축은 박관장이 10년째 활동 중인 고(故) 김광석 팬클럽 ‘둥근소리’의 인맥이다. 북촌에 사는 회원들을 중심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도움을 준다. 무대 배경은 임종진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이다. 음향을 전담하는 전문가가 있고, 포스터를 만들어주는 전속 디자이너도 있다. 시인이기도 한 마음의숲 출판사 권대웅 대표도 그중 한 명이다. 출판사에서 기증한 책이 한쪽 벽면에 가지런히 꽂혀 있다. 공연 관람객들에게 책을 선물로 주기도 한다.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종호는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이웃식당 ‘대구삼촌’을 위해 월세돕기 자선콘서트를 열었다. 박관장은 고마운 마음에 탁구장을 평생 연습실로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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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연습 중인 오플밴드.

5 북촌탁구의 입간판.

6 탁구장 한쪽 벽의 장식.

서울 한복판에서 보기 드문 동네문화

동네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북촌탁구는 자연스럽게 주민 플랫폼이자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주민들끼리 음식을 나눠 먹고 관장이 없을 때도 스스럼없이 들락거린다. 팬클럽 회원의 자녀들을 통해 인근 재동초등학교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아이들은 방과 후에 와서 굳이 탁구를 치지 않아도 마룻바닥에서 뒹굴며 논다. 그림을 그려 마음대로 벽에 붙여놓기도 한다. 아이들을 위해 마술 수업을 열었고, 요즘은 수요일 오전에 건반, 오후에 기타 수업을 한다. “북촌에는 연세 드신 분들과 젊은 부모들이 많이 살아요. 유해환경 없는 청정 지역이라 그런지 이사를 안 가고 아이들도 맑아요.” 동네주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박 관장은 ‘1년 되었는데 5년 된 것 같은’ 친화력을 발휘 중이다. 사람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공연 포스터가 나오면 동네식당에 제일 먼저 붙인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윗집과 옆집 카페도 덩달아 북적인다. 이웃의 북촌문화센터와 북촌마을서재와도 가깝게 지낸다. “센터에서 시민 강좌를 기획한다고 해서 출산 후 경력이 단절된 뮤지컬 배우를 소개했어요. 희곡 읽기 강의를 했는데 인기가 많았다고 해요. 이후 뮤지컬 <달빛요정과 소녀>에 캐스팅되어 활동을 시작했고요. 강의를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제자들하고 같이 첫 공연을 보고 왔어요.” 이야기를 하면서 박 관장이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좋다’였다. 북촌 탁구가 잘 굴러가고 있는 것도 주변 사람들에게 공을 돌렸다. “북촌이 참 좋아요. 다 좋은 분들이에요. 제가 복이 많죠. 사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많이 아팠거든요. 여기 와서 아픈 게 싹 나았어요. 이전 탁구장은 제가 주인이어도 제 공간 같지 않았거든요. 여긴 특별히 기획하지 않아도 일이 계속 생겨요. 가끔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을 정도예요. (웃음) 그냥 동네에서 문화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계속해 보려고요.” 북촌탁구를 나오면서 길목에 놓인 입간판의 낙서를 보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솔직히 여기 너무 좋음’.

글 전민정 객원 편집위원
사진 제공 북촌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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