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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2월호

작가의 방
서울문화재단은 다양한 장르에 걸쳐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합니다.
‘작가의 방’에서는 지원작가들 가운데 눈에 띄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작가를 선정해 소개합니다.
차승언 작가 직물을 캔버스 삼아

차승언 작가

“한때 후회했던 것에 용서를 구하고 싶었어요.”

작가 차승언은 12월 15일부터 1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온그라운드 지상소에서 진행한 전시 <+ebony+ivory+>에서 ‘직조’를 회화에 접목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대학에서 섬유미술을 전공했는데, “한때는 섬유보다 회화를 동경했다”고 한다. 직조, 즉 천을 만드는 과정에서 씨실과 날실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를 그때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라 고백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총 26점의 캔버스가 종이가 아닌 직물인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직조를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이유를 “남들에겐 캔버스가 그림을 그리는 도구에 불과하지만, 내겐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작업”이라 답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동대문시장에서 여러 종류의 실을 사는 것에서 시작된다. 붓과 물감이 아니라 조선시대의 풍속화에서나 볼 법한 베틀로 천을 짜며 추상화를 그린다. 그는 이를 ‘직조회화’라 이른다. <+ebony+ivory+>는 작가에게 영감을 준 세 명의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직조 추상화의 어머니로 알려진 애니 앨버스(1899~1994)를 비롯해 2007년과 2008년 이중섭 미술상을 연이어 받은 서양화가 홍승혜(서울과학기술대 교수)와 섬유미술가 정경연(홍익대 교수)이다.
작가의 작업실에는 오색실로 가득 찬 베틀이 세 대 놓여 있다. 직조기에 앉아 한 올의 씨실과 날실을 촘촘하게 맞물리는 인고의 노동을 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동안 미술 안에서 충분히 얘기되지 못한 주제입니다. 분명히 더 오래 두고 봐야 할 것인데, 순간 지나쳐가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한때 다른 장르를 연모했던 한 예술가의 ‘혼돈’이 하이브리드(혼합·공존) 시대인 지금, 사라져갈 수도 있는 한 장르를 굳건히 지키는 ‘정체성’으로 변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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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언은 홍익대와 동 대학원에서 섬유미술을, 시카고예술대에서 회화와 드로잉을 공부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시카고 설리번 갤러리 등에서 그룹전을 열었고, <아그네스와 승환스>(2014), <성자 헬렌>(2017) 등 7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난지 미술창작스튜디오, 경기창작센터에 입주했으며, 현재는 금천예술공장 9기 입주작가이다.

서해영 조각가카미유 클로델과의 대화

서해영 조각가

“섬처럼 고립된 여성 작가들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어요.”

조각가 서해영은 프로젝트를 해오면서 다양한 상황에 있는 여성 작가에게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일지 고민했다. 그는 1월 7일까지 탈영역 우정국에서 열린 <여성 조각가를 위한 행동풍부화>전(사진)의 취지를 이렇게 밝혔다. “미대를 나온 수많은 여성들은 작업을 이어가려 애쓰지만, 몇 가지 이유로 중단할 수밖에 없어요.” 자신도 매 순간 ‘여성의 삶’과 ‘작가의 삶’ 사이에서 고민한다며, ‘언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런 경력단절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압박과 미래에 대한 불안, 고립감 때문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제목으로 언급된 ‘행동풍부화’는 원래 “야생동물이 단조로운 동물원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이상행동을 줄이고, 본능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를 무료한 환경에 갇힌 여성 작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했다. 여기에 두 여성을 전시장 안으로 불렀다. 프랑스의 천재 조각가였지만 로댕(1840~1917)의 연인으로 기억된 카미유 클로델(1864~1943)과 작가 자신이다. “조각을 처음 배웠을 때부터 그가 살아온 길이 저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촉망 받는 조각가였지만 원치 않는 이유로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100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단다. 그래서 작가는 두 여성의 삶과 작업을 인터뷰로 풀어냈다.
서 작가는 만약 카미유 클로델을 만난다면 무엇을 묻고 싶은지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조각가로 살아온 것을 후회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어요. 작업을 계속하고 싶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또 경제·심리·환경적 요인으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를 반면교사 삼아 어떻게 하면 활동을 ‘잘’할 수 있을지 알고 싶어요.”
전시장에 놓인 다양한 오브제와 조각은 그가 이 시대 여성 예술인들에게 전해주고픈 ‘꼭 필요한 것’과 ‘해주고 싶은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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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영은 서울대와 동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최근에는 여성의 조건과 상황에 맞는 작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 <여성 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를 진행했다. 2013~2014년에 소마미술관 드로잉센터의 아카이브 작가로 등록됐다.

최병석 입체미술가 ‘만들기 만렙’ 도전

최병석 입체미술가

“만들기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요?”

입체미술가 최병석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지난해 12월 14일부터 지난 1월 10일까지 전시 <바쁜 손 느린 마음 비워지는 선반>을 연 이유를 이렇게 답했다. 드라마 <맥가이버>의 주인공처럼 작가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잡동사니로 무언가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런 행위들이 예술로 발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최근 몇 년간 해온 작업의 결과물에 대한 전시를 1년 넘게 준비하면서 느꼈던 심정을 전시 제목으로 정했다. “쉴 틈 없이 만들기만 했던 것들이 작업실 선반에 쌓이니 이제는 비워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캠핑을 좋아하는 작가는 숲속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전시한 첫 개인전 <숲속 생활 연구소>(송은아트큐브, 2015) 이후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는 변화를 겪었다. 이후 ‘예술가의 고민’과 ‘가장의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두 번째 전시 <더 큰 물과 배>(금호미술관, 2017)도 열었다. “결혼 전에는 작업에만 몰두했는데, 아버지가 되니까 생계에 대한 고민을 떨쳐낼 수 없더라고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고민에서 벗어나 “제 자신이 메이커인지 예술가인지를 시험하는 갈림길에 서 있어요”라며 전시 취지를 설명했다.
실제로 전시장에서는 형태와 기능을 그대로 보여주는 85점의 작품과 사진이 선반을 가득 채웠다. 커터날을 안전하게 자를 수 없을지 생각하다 만든 <커터칼 커터>와 먹다 남은 와사비를 신선하게 보존하고 싶어서 만든 <와사비 냉장고>는 머릿속에만 있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앞으론 3D 작품을 실현 가능한 물건으로 만들어보는 목업(mockup: 실물 모형) 작업에 열중할 것이라며, 자신의 미래를 이렇게 기대했다. “게임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올라갈 레벨이 없는 것을 두고 ‘만렙’이라고 하잖아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만들기의 만렙’으로 유명한 예술가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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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석은 대구가톨릭대 조소과를 나온 뒤, 홍익대 대학원 조소과를 수료했다. 서울문화재단의 ‘바람난 미술’(2016), 문래예술공장 MEET(2017), 유망예술지원사업(2017~2018)의 선정작가였다. 단체전 <빛공간>, 유망예술지원사업 선정작가 쇼케이스전 등에 함께했다.

김충재 작가 관객 앞에서 그리기 퍼포먼스 ‘전시’ 열다

김충재 작가

“이 공간에서 전시 기간 동안 작업을 합니다.”

지난해 11월 29일부터 지난 1월 19일까지 갤러리 이알디(ERD)에서 열린 제품 디자이너 김충재의 <[Vice versa] : the other way around> 전시장 벽면에는 이 문구가 씌어 있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잘생긴 미대 오빠’로 유명해졌지만 알고 보면 2016년부터 단체전에 꾸준히 참가해 이름을 알렸다. 이번에는 ‘낯설게 보기’라는 주제를 내세워 첫 개인전을 열었다. ‘거꾸로, 반대로 해도 같다’는 뜻이 담긴 전시 제목은 “서로 상반된 두 요소를 나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새롭게 구상한 것”이라 한다. 기하학적인 직선의 교차점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 했던 기존 작품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싶은 열망을 뜻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관객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펼쳐 주목받았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이 빈 캔버스를 사면 작가가 거기에 그림을 그려줬다. 굳이 왜 전시장에서까지 작업을 할까. “지금껏 여러 전시에 참여했지만 막상 개막하면 갤러리에 나오지 않게 돼요. 그림을 그려준다고 약속하면 조금이라도 현장에 나오지 않을까요?” 그림 그리는 과정은 인터넷에서 ‘라이브 스트리밍’으로도 볼 수 있었다. 최근 주목받는 미디어 크리에이터로 작가의 역할을 넓힌 것일까. 그는 “이런 과정도 일반적인 그림 구매 과정과는 다른 ‘낯선 풍경’ 아니겠어요?”라며 반문했다.
상업 디자이너로 알려진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다채로운 색으로 채워진 그림도 공개했다. 그동안 이어왔던 디자인에서 영역을 확장했는지 물었다. “원래 서양화를 전공했고 꾸준히 그려왔는데 몰라보네요.(웃음) 상업예술과 순수예술, 회화와 제품, 가상과 현실 등 서로 대비되는 경계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낯설게 보기’의 연장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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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재는 추계예술대에서 서양화를, 홍익대 국제디자인대학원에서 제품디자인을 전공했다. <도쿄디자인위크 그룹전>(2015), <서울디자인페스티벌>(2016), <부산디자인페스티벌>(2016), <공예트랜드페어 신진 공예작가 전시>(2017), <루나파크 전: 디자인 아일랜드>(2018)에 참여했다.

장사익 음악인 고희 맞은 소리꾼

장사익 음악인

“이번 생은 광대처럼 사는 게 임무인 것 같아요.”

가장 ‘한국적인 대중가수’이자 ‘대중적인 소리꾼’으로 불리는 장사익은 1월 16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열린 <마포문화재단 신년 음악회>를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일흔 살에도 공연할 수 있다는 것을 두고 “실패하더라도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을 원없이 하고 가는 게 멋진 인생”이라고 한다. 수없이 무대에 올랐지만 어김없이 하얀 두루마기를 챙겨 입는 것을 잊지 않는다.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애국가를 불렀고, 연말연시에 전국 주요 공연장에서 이어진 콘서트는 연일 매진을 기록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꽃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열 개가 넘는 직업을 전전하다, 마흔여섯 살에 늦깎이로 데뷔한 그는 “수많은 직업은 제 길이 아니었을 뿐,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서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한다. 한때는 포기하고 싶었지만 놓지 않았던 것이 ‘국악’이었고,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활동할 때가 “세상에서 제일 걱정 없던 시기”라고 기억한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되는 대로 살아온 인생”이라고 하는데, 가장 힘들 때 국악을 접하면서 늘 대중음악과의 조화를 염두에 뒀다고 한다. 그렇게 그의 음악엔 대중음악, 팝을 포함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이 녹아 있다. 그랬던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2년전 성대에서 혹이 발견된 것이다. 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1년 가까이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지금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한다. 수술 전후의 목소리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란다. 그는 “지금부터 사는 삶은 덤”이라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원 없이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기대한단다. 광대답다.
“사계절에 가을만 있으면 행복할까요? 멋지고 화려해서 인생이 아니라 애환이 있어서 인생이죠. 노래는 그것을 위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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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익은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94년 장사익 소리판 ‘하늘가는 길’로 데뷔했다. 지금까지 11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100회가 넘는 공연을 진행했다. 국회 대중문화 미디어대상 국악상(2006), KBS 국악대상(1995, 1996),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수상(1993, 1994)했다.

허성임 안무가 내 몸에 대한 고찰

허성임 안무가

“케이팝을 하는 여성은 왜 섹시함을 강요받고 보여주려 할까요?”

‘201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안무가 허성임은 1월 18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선보인 <넛크러셔>(Nutcrusher)를 만들면서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성 무용수와 동양계 이민자로 살아온 그는 이 작품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상품화되고, 도구화되는지를 보여줬다.
‘호두 분쇄기’로 직역되는 <넛크러셔>엔 어떤 뜻이 숨어 있을까.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보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왜 작품 속 발레리나는 깃털처럼 가볍고, 발레리노와는 역할이 구분되는지 의문이 생겼어요.”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동하는 그는 다양한 국가 출신의 연출자들과 작업해왔는데, 그들은 늘 동양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하게 박혀 있었다. “왜 아시아 여성들에게서 순수, 섹시, 청순, 젊음을 보고 싶어 할까요?”
공연은 여성의 몸을 외부의 제삼자가 ‘바라보는 몸’, 의도와 상관없이 ‘보이는 몸’, 자신의 의도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몸’ 등 서로 다른 시각으로 조명했다. 허성임은 대만, 그리스의 여성 무용수와 함께 직접 무용수로 출연해 50분 동안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선보였다. 거기엔 “섹시한 뒷모습, 긴 생머리, 반짝이는 엉덩이로 대변되는” 익숙해져버린 대상화된 여성의 모습과 함께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저항과 갈등도 담았다. 허 안무가는 “공연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여자의 몸, 그리고 자유’”라 말한다.
“이 공연은 남성과 여성을 갈라놓는 부정적인 작업이 아닙니다. 사회가 바라는 여성의 몸으로부터 잠시나마 외출을 꿈꾸는 것이랄까요? 이 작은 숨구멍이 언젠가 더 커지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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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임은 벨기에 파츠(P.A.R.T.S) 안무자 과정을 졸업했다. <모다페>(2008), <한팩 솔로이스트>(2013), <서울국제공연예술제>(2013) 등에 참여했으며 2014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해외 초청작 <머쉬룸>의 무용수로 내한했다. 2015년 벨기에 아바토와 페르메 극단과의 합작은 춤비평가협회 ‘올해의 베스트 작품상’을 받았다. 현재 벨기에 니드컴퍼니의 객원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글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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