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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12월호

예술계 펀드레이징 활성화를 위한 제안 바람직한 기부관계 형성을 위하여
최근 ‘이영학 사건’, ‘불우아동 기부금 횡령 사건’ 등 기부금과 관련된 불쾌한 소식들이 이어졌다. 금액과 상관없이 소중한 기부금을 흔쾌히 제공해왔던 기부자들의 신뢰를 짓밟는 사건들이다. 브라질에서의 나비 날갯짓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를 일으킨다는 나비효과처럼, 모금 영역의 신뢰 위기는 예술계 펀드레이징에 있어서도 큰 타격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모금에 관심을 두었던 예술단체들은 앞으로 예술계 기부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술계 기부의 장벽

당장의 어려움과는 별개로 근본적으로 예술계에는 펀드레이징의 한계가 존재한다. 기부자가 기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심리적 요인 중 하나인 공감(empathy)의 측면에서 볼 때, 예술계가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공감을 얻기 힘든 장벽이 있다. 그 장벽은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예술가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예술가의 자발적 선택’이라는 인식이다. 경제구조의 문제라든가 사회안전망의 미비 등으로 기존 질서에서 밀려나와 어쩔 수 없이 예술을 하게 된 건 아니다. 예술가 본인이 좋아서 선택한 일이고 그로 인해서 겪는 어려움은 당연히 당사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판단이다.
둘째, 설령 도와주려고 해도 예술계 내에 너무 큰 편차가 존재한다. 부유한 장르, 가난한 장르가 있는가 하면, 같은 장르에서도 성공해서 부유하게 사는 예술가가 있는 반면에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예술가도 있다. 어느 분야, 어떤 예술가를 도와줘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노숙인은 큰 편차 없이 도와줄 만한 대상으로 인식된다. 외제차를 모는 노숙인이 있고 지하도에서 잠을 자야 하는 노숙인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셋째, 예술계에 대한 공공지원이 이미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정책적으로 예술을 보호·육성의 대상으로 천명하고 있고, 국가 등 공공영역에서 예술계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개인이나 기업이 별도로 기부금을 내야 하는가이다.
넷째, 예술계에 대한 지원이 불우이웃, 환경보호, 재난 등의 영역만큼 절박하지 않다. 개인이나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기부할 수 있는 재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긴급하고 절실한 영역이 우선되어야 하며, 예술계는 그 순위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상호 연관되어 있는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예술에 대한 기부를 얘기할 때 공감보다는 싸늘한 반응을 만나게 된다.
이렇다 보니 예술계는 공공의 지원금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모금영역에서 개인, 기업을 포함하여 정부 등 공공영역도 당연히 모금의 대상에 들어간다. 따라서 예술계가 정책적으로 후원하고자 하는 정부(지자체 포함) 등 공공영역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기업으로부터 기부금 유치에 성공한 28개의 예술단체를 직접 인터뷰해보니 대부분의 예술단체 대표들은 공공영역의 지원을 가장 필요로 하고 우선시했다. 공공영역은 지원을 받은 후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공모 요건에 맞춰 지원 신청을 해 선정만 된다면, 그 후에는 예술적인 면에만 집중하면 된다. 반면에 기부금을 유치하는 과정에서는 구걸하는 느낌이 들거나, 신세를 지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이 기부 요청을 하지만, 공공지원금만 확보되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만큼 기부금 유치에 대해 부담스러워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노력하려는 의지도 없었다. 또한 기부금에 대한 단원들과의 의견 차이로 내부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었다.

테마 토크 관련 이미지 1, 2 작년 12월에 열린 ‘서울문화재단 예술 후원의 밤’.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의 가치, 기부로 이어지다

그렇다면 굳이 예술계가 개인이나 기업에 대해 기부 유치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공공의 지원금도 한계에 달하고 있어 지원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실적이 없으면 지원금을 받을 수 없어 진입장벽도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공공영역의 지원만 바라보고 있다면 예술계에서의 생존은 담보되지 않는다. 더구나 정부 등 공공영역은 당해 연도에만 지원되기 때문에 예술단체 입장에서는 매년 보장되지 않는 공모에 지원해야 한다. 그것도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그나마 그 해에 한 가지 사업을 할 수 있고, 선정되지 않으면 그 해 사업은 접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반면에 개인이나 기업과 기부를 통해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지속적인 지원이 가능하다. 개인이나 기업 입장에서도 기부의 효과가 지속적이기를 바라는 기대가 있으므로 한 번의 기부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지원하던 단체를 별다른 이유 없이 바꿀 가능성도 낮다. 지속적으로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예술단체들이 공공영역의 지원금 외에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의 기부에 관심을 두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예술계가 여러 형태로 재원 조성과 관련된 교육이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예술 분야 공공기관에서도 포럼과 같은 공동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예술계의 재원 조성 노력이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좀 더 세밀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이미 성공적인 사례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월드비전이나 세이브더칠드런 등과 같은 모금단체들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물론 맹목적으로 따라 하기보다는 이미 언급한 예술계의 제한적 요소를 감안하여 기업이나 대중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예술 자체의 가치를 계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예술계 펀드레이징을 돕고 있는 모금영역의 전문가들에게 ‘예술계가 갖고 있는 장벽’을 이해시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모금영역 전문가들의 컨설팅이 예술계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전혀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 어려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고 이를 통한 모금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예술계 내부도 ‘이제는 공공영역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라는 인식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기부관계만 형성된다면 개인이나 기업은 공공영역에 비해서 훨씬 예측 가능하며, 재원의 다변화라는 측면에서도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업이든 개인이든 간에 우리 주변에 누가 있는가, 그리고 그 잠재 기부자들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꾸준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기부 요청은 결코 구걸이 아니며, 잠재 기부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모금의 본질적 특성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술의 가치 자체를 인정하면서 예술을 사랑하는 개인이나 기업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글 김홍남_ 서울문화재단 제휴협력실장, CFRE(국제공인기금조성전문가)
사진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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