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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상담소

1월호

별자리 운세도 신통치 않을 때 예술적으로 상담해드립니다
“똑똑똑… 여기가 ‘예술적 상담소’ 맞나요?”
여러분의 어떤 고민도 예술적으로 상담해드리는 ‘예술적 상담소’
페이스북 탭으로 별도 공간을 마련해 고민 상담을 위한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올려주신 고민에 대한 예술적 대책을 찾아 답변을 달아드리니 페이스북 탭에 자주 방문해주세요!
다른 사람의 고민에 댓글을 달 수도 있답니다.
채택된 질문은 [문화+서울]에 게재되며, 소정의 상품을 발송해드립니다.

이미지오혜승

편독하는 습관을 버리고 싶어요!

저는 30대 중반이 되어서도 편독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철학이나 인문학 책을 읽어야 사고의 폭도 넓어지고 대화 할 주제도 많아지는데 소설만 읽게 됩니다. 출퇴근 시간에 주로 책을 읽는 터라 일부러 인문학 책을 들고 출근했다가 몇 페이지 읽지 못하고 포기하곤 합니다.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니지만, 직업상 일목요연하게 글을 정리하고 의사를 잘 전달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어요. 오히려 소설책만 읽어서 그런지 점점 망상만 심해지는 느낌 입니다. 또, 책을 읽고 나중에 생각해보면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을 못 하거나 내용이 뒤죽박죽 섞여 생각날때도 있습니다. 정독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일까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술적 상담소

우리는 어떻게, 왜 책을 읽을까요

근본적인 질문을 한번 해볼까요? 왜 책을 읽으세요? 책을 읽어서 좋은 점은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데서만 찾아봐도 책을 읽으면 사고의 폭도 넓어지고, 대화할 주제도 많아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좋은 점이야 무궁무진합니다. 굳이 질문할 필요도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중요합니다.
책이 독자와 만나 작동하는 방식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죠. 물을 마시면 갈증이 가십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다고 책의 좋은 점이 독자에게 금방 옮아가지 않습니다. 활자가 박힌 이 평면적이고 네모난 책이라는 물건과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인 독자 사이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한 과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읽는다’는 것이죠. 읽는다는 것은 문자를 눈으로 보고, 문자의 뜻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문자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뜻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가능할까요?

예술적 상담소

내 마음에 착! 달라붙을 책의 조건은 역시 ‘재미’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안 읽히면’ 끝입니다. 설령 힘겹게 간신히 끝까지 페이지를 넘겨도, 그 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안 읽힌’ 책입니다. 그렇게 100권을 넘겨보세요. 사고의 폭도 대화의 주제도 여전히 빈약할 따름입니다. 책과 독자인 나 사이에 꼭 필요한 작용이 일어나지 않은 탓입니다.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죠. 그 작용이 일어나려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재미’ 있어야 합니다. 재미는 나와 책을 일단 이어줍니다. 다리가 있어야 건너오든 건너가든하지요. ‘재미’는 책과 나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이자, 책을 나에게 붙이는 접착제입니다. ‘재미’라는 빨판을 가지고 책은 내게 달라붙습니다. 책에 정신없이 빠져드는 그 순간, 독자인 나는 책의 재미를 맛본 것입니다. 그때부터 책이 ‘읽힙니다’. 책의 내용이 솔솔 내게 흘러들어와 형태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오해가 발생합니다. 소설=재미있는 책, 인문서=재미없는 책, 하는 식으로 나누고, ‘재미없는 책을 잘 읽어야 사고의 폭도 넓어지고 대화의 주제도 풍부해질 텐데, 재미있는 책만 읽으려 해서 문제야’ 라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천만에요. 내가 어떤 책에 재미를 느낄 수 있는지는 책의 장르보다는 내 상태와 훨씬 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지루하고 심심한 소설이 있는가 하면, 몰입도 최고의 흥미진진한 철학서도있죠. 하찮은 심심풀이 소설에서 인생 최고의 교훈을 건질 수도 있고, 어렵게 어렵게 읽어낸 책이 한 구절도 생각나지 않아 결국 ‘나 그거 읽었는데…’밖에 안 남을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재미있는 책을 찾아가봅시다

좋아요. 그렇다면 ‘나에게’ 어떤 책이 재미있을지, 어떻게 알수 있나요? 내가 좋아하는 맛인지 아닌지 먹어보지 않으면 알수 없잖아요. 재미는 책 속에 초콜릿처럼 숨어 있다가 턱, 주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마음가짐보다는 관심사의 문제입니다.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을 떠올려보세요. 소설이었다고 칩시다. 그 소설의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을까요? 시대 배경이 흥미진진했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역사책을 한번 찾아볼까요?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필력이 마음에 쏙 들었다면 그 작가의 전작을 읽겠다고 계획을 세워보아도 좋아요. 그 책에 참고도서가 있었나요? 제일 먼저 살펴보아야 할 목록입니다. 그런책들 중에 ‘재미있는’ 책을 만날 가능성이 높거든요.
그렇듯이 지금 읽는 책에서 조금씩 의도적으로 확장해나가는 것도 좋고요,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관심사를 뒤적거려보는 것도 좋아요. 요즘 셰프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면 후안 모레노의 <날것의 인생, 매혹의 요리사>를 보는건 어떨까요? 얼마 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에 들어가면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눈여겨보았다면 화쟁위원회 위원장인 도법스님의 <지금, 당장>을 읽어볼 때일지도 모릅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자꾸 거슬린다면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재밌게 읽으실지도 모르겠네요. 장르에 대한 구애 없이 내 관심사를 기준으로 삼아보세요. 오직 나에게 ‘재미있는 책’을 찾아내는 안목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높아질 겁니다.
책이 재미있다면 내용도 쏙쏙 들어오고 많은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보는 것은 읽은 책을 정리해서 기억하는 데 아주 좋은 습관이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재미있는 책은 쉽게 잊히지 않아요. 그러므로 ‘왜 책을 읽으세요?’라는 질문에, 한 줄만 남기세요. “재미있으니까.” 재미있는 책을 만난다면 나머지는 고구마줄기 잡아당기듯 줄줄줄 따라올 거에요. ‘읽어야 한다’는 당위만으로는 책을 내 것으로 할 수 없습니다. 재미, 오로지 재미를 탐하며 읽으세요.문화+서울

답변 박사
북칼럼니스트. TV와 라디오에 출연하여 책과 문화를 소개해왔으며, 현재 SBS <책하고놀자>, EBS <라디오북카페>, 경북교통방송 <스튜디오1035>에서 책 소개 중. 저서로는 <지도는 지구보다크다> <도시수집가> <나에게 여행을> <여행자의 로망백서>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나의 빈칸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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